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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4 (일)

    “폐공장, 고철값도 못 건져 철거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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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업 도시가 무너진다] <2>

    ‘철강의 심장’ 경북 포항 산단

    조선일보

    지난 9월 30일 포스코 포항제철소 1제강 공장에서 김진일(59) 전 부공장장이 가동을 멈춘 공장 내부를 바라보고 있다. 포스코는 지난해 7월 세계 철강 경기 불황, 중국산 저가 공세, 설비 노후화 등을 이유로 이 공장 폐쇄를 결정했다. 쇳물에서 불순물을 제거하고 성분을 조절했던 주요 설비들은 모두 꺼졌고, 열기로 가득했던 공장은 차갑게 식었다./ 김동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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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30일 오후 3시 경북 포항시 철강산업단지에 위치한 강관(鋼管) 제조 기업 미주제강. 푸른 작업복을 입은 직원 30여 명이 공장을 마지막으로 청소하고 침울한 표정으로 조기 퇴근했다. 이날은 그들의 마지막 근무일이었다. 2년 넘게 이어진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이날 공장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미주제강은 1947년 동방제강소로 출발한 78년 역사의 철강 강소(强小)기업이다. 산업용 강관(금속 파이프)을 만들어 건설·자동차 업계에 공급해왔다. 호황을 누렸던 2000년대엔 매월 7000t 규모의 강관을 생산해 연매출이 3400억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2020년 이후 중국산 저가(低價) 제품이 밀려오면서 사세(社勢)가 급속히 기울었다. 중국산이 철강 가격을 끌어내리자 국내 업체끼리 ‘출혈경쟁’이 벌어졌다. 국내 건설 경기마저 침체해 핵심 수요처인 건설사발 주문도 얼어붙었다. 이윤진 공장장은 “주요 고객사들도 ‘소모성 부품에 굳이 국산 철강을 고집하지 않겠다’며 중국산을 택하는 상황이 심화됐다”고 말했다.

    미주제강은 순천에 있던 공장을 매각하며 버텼지만,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보는 상황이 이어졌다. 강관 값은 떨어졌고 각종 비용은 늘면서 원가율이 100%를 넘어섰다. 올 3분기까지 10분기 연속 적자를 봤다. 80년 가까이 철강업을 지켜온 포항 철강 업계의 터줏대감도 버틸 재간이 없었다.

    미주제강은 그나마 공장은 한 중소 중공업 회사가 인수해, 고철로 팔리는 신세는 면했다. 포항 산단 내 폐쇄된 공장들을 관리하는 한 직원은 “공장을 팔려고 해도 설비 과잉이라며 사 주는 데가 없고, 철거해 고철값이라도 건지려니 철거 인력 인건비가 고철값보다 더 들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한국 철강 산업의 심장인 포항 산단이 무너지고 있다. 대기업과 중견·중소기업 할 것 없이 가동 중단, 폐업 사례가 줄을 잇고 있다. 중국산의 공세와 내수 침체, 그리고 미국발 50% 철강 관세까지, 몰아치는 삼각 파도 앞에 한국 산업의 자존심이었던 강철 도시는 이제 녹슨 ‘러스트 벨트(rust belt)’로 추락하고 있다.

    [포항=이영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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