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공식품이 전통적인 신선식품 또는 최소 가공식품을 대체하면서 식단의 질을 떨어뜨리고 여러 만성 질환 위험을 높이고 있다는 기존의 가설을 확인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랜싯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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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공식품(UPF)이란 이름은 2009년 브라질의 카를로스 몬테이로 박사(영양보건학)가 식품 가공 정도를 기준으로 만든 식품분류체계(NOVA)에서 처음 등장했다. 그는 이를 기준으로 식품을 비가공식품, 가공식재료, 가공식품, 초가공식품(UPF) 네 가지로 나눴다.
초가공식품은 가공 정도가 가장 심한 식품이다. 통곡물을 포함한 자연식재료 함량이 낮거나 전혀 없이 저렴한 재료로 만든 시판용 식품을 말한다. 자연 식재료에서 추출한 물질을 가열, 발효 등 여러 화학적 변형 과정을 거친 뒤 맛이나 식감 등을 높이기 위해 감미료나 방부제, 색소 등 각종 첨가물을 넣은 식품이다. 라면, 햄, 과자류, 아이스크림, 시리얼, 탄산음료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전 세계 전문가 43명이 초가공식품(UPF)과 관련한 기존 연구를 종합 분석한 결과, 공중 보건을 위협할 정도로 섭취량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며 전 세계적인 정책 대응을 촉구하는 논문 3편을 의학분야 국제학술지 랜싯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초가공식품이 전통적인 신선식품 또는 최소 가공식품을 대체하면서 식단의 질을 떨어뜨리고 여러 만성 질환 위험을 높이고 있다는 기존의 가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이 한국을 포함한 36개국의 식품 섭취량을 분석한 결과, 초가공식품의 평균 점유율(총 에너지 섭취량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9%(이란)에서 60%(미국)까지 다양했다.
연구진은 이런 차이는 소득 수준과 상관관계가 있지만 문화적 요인이나 식품 시스템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예컨대 남부유럽과 아시아 고소득 국가에서는 대체로 초가공식품 비중이 30%를 밑돌지만, 미국과 영국, 캐나다 등 서유럽 국가에서는 40~50%를 웃돈다.
스페인의 경우 지난 30년 동안 하루 섭취하는 식품에서 초가공식품이 차지하는 비중(총열량 기준)이 11.0%에서 31.7%로 3배 높아졌다. 중국은 1997~2011년 사이에 3.5%에서 10.4%으로 각각 3배가 높아졌다.
한국도 비슷하다. 1998~2018년 사이에 초가공식품 비중이 12.9%에서 32.6%로 2.5배 높아졌다. 브라질과 멕시코도 40년 동안 10%에서 23%로 2배 이상 높아졌다. 이미 오래 전에 초가공식품 비중이 50%를 넘은 미국과 영국은 증가율은 미미하지만 섭취율은 세계 최고 수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초가공식품 판매량은 저소득국가일수록 증가세가 가팔랐다. 2007년부터 2022년까지 저소득국인 우간다에서는 연간 1인당 초가공식품 판매량이 20.3kg에서 32.2kg으로 60% 늘었다. 저중소득국에서는 45.3kg에서 63.3kg으로 40%, 고중소득 국가에서는 104.0kg에서 121.6kg으로 약 20% 증가했다. 가당음료, 제빵류, 단 스낵, 즉석식품, 짭짤한 스낵, 유제품, 소스 및 드레싱, 재구성 육류 제품, 기타 고형 식품 등 10가지 초가공식품 유형 모두에서 1인당 판매량이 증가했다.
한국은 초가공식품 비중 증가율이 가장 큰 나라 가운데 하나다. 랜싯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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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공식품 비중 높을수록 칼로리 섭취량 많아
연구진은 한국을 포함한 13개국 설문조사에 대한 메타분석 결과, 초가공식품 비율이 높은 식단은 만성 질환 위험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유리당, 포화지방 등의 함량이 더 높았다고 밝혔다. 반면 식이섬유, 단백질 등 만성 질환 위험 감소와 관련한 영양소 함량은 더 낮았다. 또 초가공식품 비율이 10% 증가할 때마다 총 일일 열량섭취량이 34.7칼로리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가공식품 섭취는 유해 화학 물질과 첨가물 섭취량 증가와도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초가공식품으로 인한 식단의 질 저하는 위장관, 호흡기, 신장, 간, 담낭, 관절, 대사, 정신 질환 등 만성 질환 위험 증가와도 관련이 있을까?
연구진은 2016~2024년에 발표된 104개 연구를 검토한 결과, 92개 연구에서 초가공식품 섭취는 하나 이상의 만성 질환 위험 증가와 관련이 있다는 걸 확인했다고 밝혔다. 비만, 당뇨병, 심혈관 질환, 우울증을 포함한 12가지 건강 상태와 유의미한 연관성을 보였다. 연구진은 92건 연구 중 78건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연관성을 보고했다고 덧붙였다.
연구진은 초가공식품 섭취량을 줄이는 식단 개선은 소비자에게만 맡겨서는 달성할 수 없으며 초가공식품의 생산, 마케팅, 소비를 줄이는 동시에 건강한 음식을 더 쉽게 접할 수 있는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진은 브라질을 하나의 성공 사례로 꼽았다. 브라질은 학교 급식에서 초가공식품을 제외하고, 2026년까지 식품의 90%를 신선식품 또는 최소 가공식품으로 의무화하기로 할 예정이다.
초가공식품 산업의 정치적 영향력 네트워크를 표현한 그림. 원의 크기는 연결 수, 흰색 원은 초가공식품 기업, 빨간색 원은 일반적인 기업 단체, 노란색 원은 광고 관련 단체, 초록색 원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 관련 단체, 파란색 원은 식품관련 단체, 보라색 원은 영양 관련 단체다. 랜싯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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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 산업에서 가장 수익성 좋은 사업
연구진은 이어 초가공식품은 영양이나 지속가능성이 아닌 기업 이윤에 의해 움직이는 식품 경제의 산물인 만큼 전 세계적인 협력 대응만이 기업들의 전략에 맞설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연구진에 따르면 전 세계 매출이 연간 1조9천억달러(약 2800조원)에 이르는 초가공식품은 가장 수익성이 높은 식품 분야다. 1962년 이후 상장된 모든 식품 기업의 주주 배당금 2조9천억달러 중 절반 이상을 초가공식품 제조업체가 차지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위트워터스랜드대의 카렌 호프만 교수는 “수십년 전 담배 산업에 맞섰던 것처럼, 지금 우리에게는 초가공식품 기업들의 과도한 권력을 억제하고 사람들의 건강과 웰빙을 우선시하는 식량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과감하고 조율된 국제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형진 서울대 교수(뇌인지과학·해부학)는 “지나치게 쾌락적이고 중독적인 초가공식품들은 음식중독을 유발하고, 과식과 지나친 영양공급으로 비만과 대사질환을 직접적으로 유발한다”며 정책적 대응을 통해 초가공식품 문제를 해결해갈 것을 제안했다. 최 교수는 정책 대응의 성공사례로 담배를 꼽고 “담배 관련 문제로 학계와 의료계, 법조인들과 정책 당국이 협력했던 것처럼 범사회적 논의와 실질적 대책이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초가공식품의 섭취와 질병 발생률의 상관관계를 분석하는 것만으로는 인과관계를 증명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픽사베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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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상관관계…과학적 근거 부족 지적도
그러나 이번 연구의 결론을 뒷받침하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고, 가공식품의 불가피성과 긍정적 기능을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김대수 카이스트 교수(뇌인지과학)는 “장기 무작위시험 부족, 식품분류체계 ‘노바’의 모호성, 노인·저소득국 등 특정집단 연구 부족이라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특히 “한국처럼 고령 1인 가구가 많고 증가 추세인 나라에서 가공식품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며 “규제가 과도하면 영양건강식·고령층용 건강 편의식 같은 ‘필요한 가공식품’의 혁신과 저가 공급을 위축시킬 위험도 있다"고 말했다.
영국 셰필드할람대 조던 보몬트 수석강사(식품영양학)는 “개념 자체가 논쟁적인 초가공식품의 섭취와 질병 발생률의 상관관계를 분석하는 것만으로는 인과관계를 증명할 수 없다”며 “초가공식품이 본질적으로 건강에 해롭다는 설득력 있는 양질의 증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영국 레딩대 귄터 쿤레 교수(식품과학)는 “초가공식품의 건강 영향에 대한 주장은 대부분 관찰 데이터에 기반하며 영양 연구의 표준인 무작위 임상 시험에서는 우려점이 발견되지 않았다”며 “일부 초가공식품이 과다 섭취를 유발할 수 있다는 건 입증되었지만, 현재의 식이 지침을 따르는 초가공식품 식단은 건강에 해롭지 않다는 사실도 보여줬다”고 말했다.
*논문 정보
Ultra-processed foods and human health: the main thesis and the evidence.
https://doi.org/10.1016/S0140-6736(25)01565-X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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