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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7 (일)

    이슈 질병과 위생관리

    고품질 주장한 ‘이경실 달걀’ 어미 닭의 삶…“A4보다 좁은 궤짝서 낳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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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공장식 밀집 닭장인 ‘배터리 케이지’에서 사육되는 산란계들. 동물자유연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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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인 이경실씨가 자신의 브랜드로 내놓은 달걀이 최근 “난각 번호가 4번인데도 너무 비싸다”는 논란에 휩싸였는데, 이에 대한 이경실씨의 해명이 열악한 산란계 동물복지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난각 번호 4번’은 닭 한 마리에 A4용지 한장보다 좁은 사육 환경이 주어진다는 것을 뜻하는데, 이씨가 그저 “품질이 좋다”고만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물보호단체 ‘동물자유연대’ 조희경 대표는 지난 20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이경실씨 달걀 논란에 대해 “‘(난각 번호) 4번 달걀’은 법에서도 허용하지 않는다. 다만 2027년 8월까지 (사육면적 확대 법 적용을) 유예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2018년 개정된 축산법 시행령은 산란계 1마리당 사육 기준 면적을 0.05㎡에서 0.075㎡로 확대했는데, 단지 그 시행이 2027년으로 미뤄진 상태라는 사실을 말한 것이다.



    이어 조 대표는 “(이경실씨가 내놓은) ‘우아란’ 4번 달걀은 마리당 사육 면적이 A4용지 한장도 안된다. 궤짝에 갇혀 출산만 하는 삶을 상상해봤나. 그런 삶을 품질로 비교하는 것이 가능한가”라고 반문했다.



    ‘우아란’은 이경실씨가 내놓은 달걀 브랜드로, 난각 번호가 4번인데도 난각 번호가 1번인 달걀과 비슷한 수준에 판매되어 논란이 일었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달걀 껍데기에는 산란일자(4자리)+농장고유번호(5자리)+사육환경(1자리)를 표시한 10자리 숫자(난각 번호)가 새겨진다. 이중 닭들이 길러지는 사육환경은 마지막 한 자리에 네 가지 숫자로 표시되는데, 자유 방사는 1번, 축사 내 방사(평사)는 2번, 개선 케이지는 3번, 기존 케이지는 4번 등 숫자가 높아질수록 사육환경이 열악하다는 것을 뜻한다. 기존 케이지는 닭 한 마리가 차지하는 최소 면적이 0.05㎡, 개선 케이지는 0.075㎡다. 즉, A4용지 한장에도 못 미치는 비좁은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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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인 이경실씨가 자신의 브랜드에서 내놓은 달걀이 ‘고가 논란’에 휩싸인 뒤 내놓은 해명이 열악한 산란계 사육 환경은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소셜미디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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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각 번호 1번 달걀은 보통 30구에 1만5000원~2만원 수준인데, 4번인 우아란 역시 비슷한 가격에 판매됐다. 이를 두고 논란이 일자 이씨는 “우아란이 높은 가격을 유지하는 이유는 사육환경이 아닌 원료와 사육 방식의 차이”라면서 “강황과 동충하초 등 고가 원료를 급여하고 있으며 농장의 위생관리, 질병 관리 등을 통해 달걀의 품질과 신선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해명을 내놨다.



    문제는 이씨가 해명에서조차 품질만 말할 뿐 동물복지는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3~4번 사육환경 아래에서 닭들은 ‘배터리 케이지’라 불리는 좁은 철망 속 몸도 돌리지 못하는 좁은 공간에 갇혀 진드기나 질병 등을 이겨내야 한다. 이 때문에 일부 농장에서는 닭에게 항생제와 진드기 퇴치제 등을 사용해왔는데, 지난 2017년 8월 달걀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되면서 이러한 공장식 밀집 사육 환경에 개선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정부가 축산법 시행령을 고쳐 사육면적을 기존 마리당 0.05㎡에서 0.075㎡로 확대하기로 한 배경이다. 단지 농가와 업계의 요청, 달걀 가격 폭등 우려 등으로 기존 사업자들에게는 시행 시기만 2년 뒤인 2027년 8월로 유예했을 뿐이다.



    조희경 대표는 “유예라는 말은 행정적 조치일 뿐, 엄격히 말하면 (4번 달걀은) 법적으로 더는 허용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기존 농장들 일부는) 더 많은 투자를 해 법을 따르면서 동물복지 기준을 준수하려고 한다. 개정법이 지향하는 바를 따르지 않는 기업에서 (동물복지 농장과 같은) 달걀 값을 제시하는 것은 소비자를 기만하고 법 질서를 흔드는 것과 다름 없다”고 비판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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