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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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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코파이 절도 사건' 항소심 무죄…"나도 먹었다" 동료들 증언에 뒤집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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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판부 "동료 직원들도 새벽에 꺼내 먹어
    그간 문제 안 돼… 위법성 인식 어려워"
    피고인 "동료와 명예 회복하게 돼 다행"
    검찰 "판결문 본 뒤 상고 검토할 계획"


    한국일보

    초코파이.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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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회사 사무실 냉장고에서 1,050원어치 간식을 가져간 혐의로 1심에서 벌금 5만 원이 선고된 40대 보안업체 직원이 항소심에서 혐의를 벗었다. "관행적으로 먹었다"는 동료 직원 수십 명의 증언이 무죄 판결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전주지법 제2형사부(부장 김도형)는 27일 절도 혐의로 기소된 A(41)씨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원심(벌금 5만 원)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초코파이 등을 꺼내 먹은 행위가 위법성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동료 직원들의 증언에 주목했다. 전 탁송기사 B씨는 지난달 30일 항소심 증인신문에 출석해 "새벽에 근무하는 탁송업체 직원들이 출입문 개방 시간인 오전 4시 이전에 출근하면 보안업체 직원들이 대기하지 않도록 미리 출입문을 열어준다"며 "이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보안업체 직원들에게 간식을 제공하는 일이 종종 있었고, 물류업체 사무실에 근무하는 여직원들도 출출하면 사무실에 있는 간식을 가져다 먹으라고 이야기했다"고 증언했다.

    보안업체 직원 C씨도 증인으로 출석해 "오전 4시 이후 순찰을 돌다가 냉장고에 든 음료수와 간식을 먹은 적이 한 번씩 총 두 번 있고, 다른 보안업체 직원들도 그랬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수사 단계에서 제출된 보안업체 직원 39명의 진술서도 무죄 근거로 삼았다. 진술서에는 "탁송기사들이 배고프면 사무실에서 간식을 가져다 먹으라고 해서 먹은 적이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동료 직원들 "탁송기사가 먹으라고 해"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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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전주시 덕진구 전주지법 전경.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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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서 물류업체 소장 D씨는 1심 재판에서 "탁송기사들도 냉장고를 함부로 열지 않고, 사무실 직원의 허락을 받고 간식을 꺼내간다"고 진술했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A씨의 주장에 더 신빙성이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사무공간과 탁송기사 대기 공간이 책상을 통해 분리돼 있긴 하나 상당한 간격이 있어 접근이 일체 금지된 구역으로 보기 어렵다"며 "사무실 직원들이 출근 전에 탁송기사들에게 냉장고의 간식을 직접 제공하거나, 허락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냉장고에 있는 간식의 용도와 그 가격, 물류업체 사무직원과 탁송기사, 보안업체 직원들의 근무 형태, 업무 내용 등에 비춰보면 피고인으로서는 탁송기사들이 사무실 냉장고 안에 들어 있던 간식을 제공할 권한이 있다고 충분히 오해할 수 있다"며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냉장고에 있는 물건을 꺼내는 범의(범죄 행위인지 알면서도 그 행위를 하려는 의사)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A씨 "수십 년 관행 한순간에 범죄로… 고통받는 노동자 없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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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코파이 절도 사건'의 항소심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한 27일 피고인 측 박정교 변호사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전주=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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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씨 측 박정교 변호사는 판결 직후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피고인이 새벽에 배가 고파서 초코파이 하나 먹은 것 때문에 재판까지 받게 돼 주변 사람들이 알게 되는 걸 너무 창피해했다"며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줘서 결과가 잘 나오게 된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민경 민주노총 전북본부장은 "비정상이 정상이 된 당연한 판결"이라고 환영의 뜻을 밝혔다.

    피고인 A씨도 금속노조 현대차 전북비정규직지회를 통해 입장을 전했다. A씨는 "재판부의 온정과 모두의 관심과 염려 덕에 무죄 선고를 받게 됐다"며 "저를 포함해 동료 직원들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게 돼 다행"이라고 밝혔다. 이어 "상호 호의를 기반으로 한 수십 년 관행이 한순간에 범죄가 된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며 "다시는 이와 같은 일로 고통받는 노동자가 없기를 간절히 소망한다"고 전했다.

    A씨는 지난해 1월 18일 오전 4시 6분 완주군 한 물류업체 사무실 냉장고에서 초코파이(450원)와 카스타드(600원) 등 1,050원어치 간식을 가져간 혐의로 D씨에게 고소를 당했다. 경찰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A씨를 벌금 50만 원에 약식기소했고, 법원은 벌금 5만 원의 약식명령을 내렸다. 이에 A씨는 무죄를 주장하며 정식 재판을 청구했고, 1심 재판부는 "절도의 고의성이 있다"며 벌금 5만 원을 선고했다. A씨는 사실오인과 법리오해,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했다.

    전주지검은 판결문을 본 뒤 상고 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다. 앞서 전주지검은 이 사건과 관련해 "무리한 기소" "현대판 장발장" 등 사회적 논란이 커지자 항소심 단계에서 검찰시민위원회 의견을 듣고 이를 반영해 선고유예를 구형했다.

    전주= 김혜지 기자 fo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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