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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5 (금)

    AI 전환 물결 거센데…디지털 인프라도 없는 중소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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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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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의 한 특수부품 생산업체는 지난 5월 정부 지원으로 기업 컨설팅을 받았다. 설비 자동화와 인공지능(AI)을 도입해 장시간 노동을 유발하는 노동집약적 공정을 개선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컨설팅을 받아보니, 당장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가 충분히 축적돼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인공지능이 스스로 학습하고 판단하기 위해서는 축적된 데이터가 필수인데, 이 업체가 보유한 데이터의 양과 질, 종류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회사 관계자는 “많은 중소기업 상황이 우리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며 “정부 차원에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인공지능에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가 무엇이고 어떻게 관련 데이터를 모으는지를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부와 주요 기업이 미국 엔비디아의 인공지능 핵심 칩인 그래픽처리장치(GPU) 26만장을 확보한 가운데, 최근 초도 물량 일부인 1만3천장을 국내로 들여오면서 인공지능 전환(AX) 움직임에 속도가 붙고 있다. 하지만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은 지피유 수혜는 물론, 인공지능을 학습시킬 데이터와 전문 인력, 관련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어서 혁신의 과실이 소수 대기업에만 쏠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데이터와 자본, 인력을 갖춘 대기업은 인공지능을 활용해 생산성과 비용 효율을 높이며 시장 지배력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보이지만, 중소기업은 인공지능 전환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산업 생태계의 승자독식 구조와 양극화는 더욱 심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인공지능 기술혁명이라는 변혁의 파고 앞에 선 중소기업의 위태로운 현실은 통계에서도 나타난다. 대다수 중소기업은 인공지능 적용에 앞서 기본적인 디지털 인프라조차 갖춰지지 않은 곳이 많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지난 4월 발표한 ‘제1차 스마트제조혁신 실태조사’를 보면, 중소기업의 지능형(스마트) 공장 도입률은 18.6%로 집계됐다. 대기업은 관련 조사를 벌이지 않아 정확한 실태를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조사에서 중견기업의 지능형 공장 도입률이 85.7%였다는 점과 “지능형 공장 도입률은 기업 규모가 클수록 높아진다”는 중기부 설명에 비춰 보면, 대기업 대부분은 지능형 공장을 도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능형 공장이란 제조 전 과정에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해 실시간 데이터를 기반으로 최소 비용·시간으로 맞춤형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을 말한다. 이 공장은 설비 곳곳에 센서를 붙여 공정 데이터를 디지털 형태로 수집하고 통합해 관리하는데, 이와 같은 디지털 전환은 인공지능 전환의 토대가 된다.



    이런 조건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중소기업의 인공지능 전환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데이터를 안정적으로 축적해야 인공지능을 학습시켜 공정을 최적화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단계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지피유 자원이 중소기업에까지 분산 할당되더라도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는 조건인 셈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달 19일 발표한 ‘기업의 인공지능 전환 실태와 개선방안’ 보고서를 보면, 생산·물류·운영 영역에서 중소기업의 인공지능 활용도는 4.2%로 대기업(49.2%)에 크게 못 미쳤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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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 인력이 부족한 점도 중소기업의 인공지능 전환에 발목을 잡는 요인이다. 경북 포항의 제철용 부자재 전문 기업인 스톨베르그&삼일㈜은 일찍부터 지능형 공장 도입을 위한 기술 투자에 집중했다. 2015년 지능형 공장을 처음 도입한 데 이어, 2022~2023년에는 지능형 공장 고도화 작업을 거쳐 생산성 향상, 불량률 감소, 에너지 절감 등의 성과를 냈다. 지금은 정부의 실증지원사업에 선정돼 설비 예지보전(설비 데이터를 분석해 이상 징후를 사전에 파악하고 조처하는 방법)과 배합비를 최적화하기 위한 인공지능 알고리즘 도입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기술 투자 초기에는 ‘쓴맛’을 봤다. 지역에서 인공지능 엔지니어 등 전문 인력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회사 관계자는 “회사에 정보·통신(IT) 인력이 있다 해도 인공지능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인공지능을 구동하기 위해선 어떤 데이터가 필요한지,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초기에 실패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여러 실패를 경험한 뒤, 회사 담당자가 인공지능 관련 분야 학위 과정을 밟으며 인공지능 전환의 방향성을 서서히 잡아왔다.



    유지·관리 비용도 중소기업에는 부담이다. 인공지능 전환은 일회성 설비 구축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공정과 환경 변화에 맞춰 지속적인 재학습과 성능 보정이 필요하다. 스톨베르그&삼일㈜ 관계자는 “조건이 달라지면 다시 학습시키고 (알고리즘을) 업그레이드해야 하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며 “연 매출 300억원대의 회사가 설비가 아닌 소프트웨어에 연간 2억~3억원씩 투자하기란 쉽지 않다”고 했다. 정부 지원이 있더라도 대부분 스마트공장 구축·도입 단계에 치중돼, 그 이후 단계에 필요한 유지·관리 비용은 기업이 감당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정부 지원사업이 단기 성과 중심으로 이뤄지는 점은 기업 입장에서 특히 아쉬운 대목이다. 경남 지역의 한 자동차용 초정밀 부품 가공·조립 업체는 10년 전부터 인공지능을 공정에 접목할 방안을 고민해왔다. 2020년부터는 산학연 협력을 통해 자동화와 인공지능 기술을 실제 공정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이 업체 관계자는 “연구·개발 성과가 현장에서 효과를 내기까지는 10년 넘게 걸리기도 하는데, 정부 지원은 대부분 1~3년이면 끝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 때문에 지피유 확보 등에 따른 인공지능 전환의 온기가 중소기업에까지 고루 퍼지기 위해서는 정부 지원 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조성환 대한상공회의소 지역경제팀장은 “일회성 지원만으로는 중소기업이 인공지능 기술을 안정적으로 운용하기 어렵다”며 “대기업과 중소기업 상생을 위해 중소기업에 대한 자금 지원과 장비 보급을 넘어 인공지능 도입 전, 도입 과정, 도입 후 등 단계별로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입 전엔 업종과 규모별 상황을 진단해 그에 적합한 인공지능 활용 모델에 대한 컨설팅을 제공하고, 도입 단계에선 실제 데이터 수집·정제와 알고리즘 적용 등 현장에서 바로 활용 가능한 실무 지원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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