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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5 (금)

    달러의 위기, 금이 구원투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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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2025년 10월18일 중국 베이징의 한 보석 전문 백화점에서 고객들이 금 장신구를 살펴보고 있다. 중국 인민은행은 최근 몇 년간 전세계 중앙은행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금을 매입했다.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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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자자산이 상승하려면 연료가 필요하다. 일반적으론 유동성이 강조된다. 폭발적으로 상승하려면 ‘서사’ 또한 필수적이다. 현재 주식시장의 서사는 인공지능(AI)과 데이터센터다. 암호화폐를 밀어 올린 서사는 이번에도 어김없다. ‘법화의 몰락’과 모든 것이 디지털자산으로 전환할 거란 믿음이다. 최근엔 후자가 강조된다. 2025년 언론이 주목한 자산군 중 대표적인 게 금이다. 금을 밀어 올린 서사는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달러 가치 하락, 달러 시스템 붕괴, 급증하는 국가부채다. 이들 모두는 한 지점을 가리킨다. 법화, 특히 달러의 붕괴다. 주식이야 시대 흐름을 반영하니 그 서사 역시 바뀐다. 한데 금과 가상자산은 한결같다. 특히 금에 관한 서사는 20세기, 21세기 들어서도 바뀌지 않고 있다. 대체 그 서사는 언제 현실이 되는 걸까?



    안전자산의 대명사로 불리는 금의 가격이 상당히 폭력적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금 가격은 20세기에는 비교적 안정세를 보였다. 하지만 21세기 들어서는 상당한 변동성을 보인다. 특히 2010년 초반에는 거의 반토막이 나기도 했다. 2025년 10월 말까지 1년 상승폭은 타 자산군이 부럽지 않다. 온스당 약 2500달러(약 365만원)에서 4400달러 정도까지 올랐으니 거의 80% 올랐다. 10월 말까지 스탠더드앤푸어스(S&P)500 상승률은 약 20%였으니 무려 네 배에 이르는 상승률이다.



    중요한 건 금을 둘러싼 서사다. 그것이 얼마나 굳건하냐에 따라 금값은 심한 변동성을 보일 수 있다. 만약 근거가 없는 서사라면 예상외의 낙폭을 보일 수 있다. 물론 금을 보유하려는 인간의 욕망이 어느 정도 DNA에 새겨져 있으니 안전자산이란 타이틀을 잃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금빛처럼 찬란한 앞날이 계속되리라 장담할 수 없다.





    주요 중앙은행의 금 비축 현황





    각국 중앙은행, 특히 중국을 포함한 신흥국 중앙은행이 금 비축량을 늘리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이 금을 사들이는 이유가 탈달러에 일방적으로 방점이 찍혀 있다는 서사는 생각보다 근거가 부족하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최근 몇 년간 전세계 중앙은행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금을 매입했다. 이유는 외화보유액 다각화와 미-중 갈등 등 지정학적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2025년 6월 기준 금 보유량은 대략 2300톤(t)에 이른다. 이는 공식적으로 보고된 국가별 순위에서 세계 6위권에 해당한다. 중국은 오랫동안 금 보유량을 은밀하게 천천히 늘려왔지만 최근엔 공개적,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의 금 보유량은 전체 외화보유액(2025년 10월 말 기준) 3조3430억달러 대비 얼마나 되는 걸까? 세계 6위 보유량이니 큰 비중을 차지하리라 생각하겠지만 의외로 낮다. 2023년 말 기준으로 외화보유액의 8.89% 정도다. 사상 최고치지만 유럽 국가들의 60% 수준에 비하면 매우 낮은 편이다.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등 유럽 주요국의 비중은 60%를 웃돈다. 유럽중앙은행의 금 비중도 25~34% 수준이다.



    인도 중앙은행은 어떤가? 중국과 마찬가지로 금 보유량을 꾸준히, 전략적으로 늘려오긴 했다. 2018년부터 금 매입을 본격화했다. 2022년 약 65t, 2023년 약 57t을 매입했고 2025년 9월 기준으로 약 880t의 금을 보유 중이다. 2001년 2분기에 약 358t 규모였으니 두 배 이상 늘렸다. 이는 전세계 중앙은행 중 9위권에 해당하는 규모다. 전체 외화보유액에서 금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10년 전 약 7% 미만에서 2025년 10월 현재 약 14.7%까지 증가했다. 미국 달러화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지정학적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함일 것이다. 동시에 금이 차지하는 인도에서의 문화적 종교적 중요성도 한몫했을 것이다.



    세계금협회(WGC) 통계를 보면, 2025년 9월 말까지 금 비축량을 가장 많이 늘린 중앙은행은 중국이나 인도가 아니다. 폴란드,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중앙은행이 상위권을 차지한다. 중국, 브라질, 인도 등 신흥 경제국 협력체 브릭스(BRICS) 국가들도 금 보유량을 늘리긴 했다. 하지만 해당국 경제 규모를 고려하면 결코 크게 늘린 게 아니다.





    과연 탈달러화를 의미하나





    이런 움직임에 대한 언론의 해석은 일관적이지만 단편적이다. 이를 가장 잘 표현하는 내용이 비즈니스 데이터 플랫폼 회사인 스태티스타(Statista)의 논평이다.



    “중앙은행들은 상징적인 선을 넘었다. 거의 30년 만에 처음으로 금 보유액이 미국 재무부 채권 보유액을 추월했다. 이런 변화는 외화 보유가 달러화 표시 증권에서 실물자산으로, 점진적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스태티스타는 통계를 비주얼 자료화하는 대표적인 회사다. 스태티스타의 그림은 섬뜩하다. 최소한 미국인이 보기엔 그럴 것이다. 2025년 마침내 각국 중앙은행이 보유 중인 금 보유액이 미 채권 액수를 추월했다. 미 채권은 23%, 금은 24%다. 이런 역전은 1995년 이래 처음이다. 그림만 보면 엄청난 일이 벌어진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과연 그럴까? 해당 그림의 가장 큰 문제점은 ‘액수’만을 반영했다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 금리가 상승하면서 채권 가격은 하락했다. 반면 금 가격은 고공 행진했다. 신흥국 중앙은행들이 금 보유량을 늘린 건 맞지만 지난 5년 동안 중앙은행의 금 보유량은 약 5% 늘었을 뿐이다. 반면 금 가격은 온스당 1500달러 정도에서 4천달러로 급등했다. 이처럼 급등한 금액이 외화보유액으로 잡히면서 액수로 비교해 금과 채권 보유액이 역전했다. 이를 채권에서 금으로 외화 보유 현황이 바뀐다고 표현한 것은 지나친 과장이다. 만약 금리가 내리면서 채권 가격이 상승하고 금 가격이 하락한다면 상황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정말 금으로 자산이 전환된다고 주장하려면 금 보유에 액수뿐 아니라 중량 급증이 동반돼야 한다. 보유량 5% 증가가 금으로의 전환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



    한겨레

    달러가 기축통화 지위를 잃는다 해도 금은 보관이 어렵고 이자가 발생하지 않아 기축통화를 대체할 수는 없다.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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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하나 중요한 사항이 있다. 금 보유량을 늘려 탈달러화를 의도하려면 미 국채 보유량이 감소해야 한다. 중앙은행들은 국채를 매도하지 않았다. 외려 기록적인 규모로 매수했다. 외국인의 미 국채 보유액은 현재 9조달러를 넘어섰다.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이 발표하는 외국 및 국제 투자자가 보유한 미 국채 규모는 2025년 2분기 기준 9조1천억달러를 웃돈다. 사상 최고치다.



    결론적으로, 중앙은행들은 지난 5년간 금 보유량을 늘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탈달러를 의도해서라기보다는 포트폴리오 재조정의 영향이라 봐야 한다. 달러가 자국 통화 대비 약세를 보일 경우에 대비해 금을 추가한 것이다. 달러 대체재라기보다는 다각화 전략으로 봐야 한다. 세계금협회의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달러화 비중을 줄일 계획이라고 답한 중앙은행은 소수에 불과했다. 미국 국채를 매각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응답한 비율은 더 낮았다. 이는 대부분의 중앙은행이 여전히 달러를 안정적인 기축통화로 보고 있음을 말해준다.





    금의 가장 큰 단점





    설사 달러가 기축통화 지위를 잃는다 해도 금이 다른 기축통화를 대체할 수는 없다. 보관이 어렵고 운송비가 많이 들며 이자가 발생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거래 매개체의 기능이 극히 제한적이다. 금의 가장 큰 단점은 자체적으로 수익을 발생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금을 보관할 때 이자를 주지 않는다. 외려 보관료를 내야 한다. 주식처럼 배당도 하지 않는다. 오직 가격변동에 의지한 수익을 기대할 뿐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외화 보유를 금으로 전환할 때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손해를 각오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 보유 국채를 팔아야 하는데, 이는 세계 금융시장에 대혼란을 불러오고 국채 가격 폭락으로 이어져 큰 손해가 불가피하다. 자기 살을 내주고 상대방의 뼈를 자른다는 각오 없이는 할 수 없다. 중앙은행이 금을 보유하는 이유는 그것이 달러를 대체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 아니다. 기축통화가 무엇이든 그것을 보완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법화가 붕괴 직전이고 달러의 종말이 머지않았다는 주장은 현실을 토대로 하기보다는 이념적 주술에 가깝다. 달러의 기축통화 위치가 흔들리는 건 사실이다. 미국의 정치는 불안하고 혼란스럽다. 신뢰도 스스로 파괴하고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 달러의 지위를 흔들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먼 미래에 발생할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다. 현재로선 법화나 달러의 붕괴 가능성은 없다. 미 국채 수요는 여전히 탄탄하며 세계 거래의 80%가 달러로 결제된다. 국제 준비금의 60% 정도는 달러다.



    금 가격 상승의 연료였던 ‘서사’는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세계가 비교적 안정적일 때는 수면 아래 잠복했다가 불안해지면 슬그머니 다시 부상한다. 불안과 혼란은 금의 먹이다. 분명한 점은 그 서사가 완성하려면 비합리적 파국이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현 체제가 붕괴하는 대규모 혼란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그것이 얼마나 불합리한지 알 수 있다.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완성된 체제는 그 자체로 생명력을 갖는다. 달러의 구조적 약세와 붕괴, 법화의 몰락은 전혀 다른 문제다. 금을 둘러싼 서사가 완성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윤석천 경제평론가 maporiv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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