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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6 (토)

    [인터뷰] 법률테크 기업 창업한 윤경림 전 KT 사장 “디지털 전환 경험으로 재판 증거문서 DX·AX 신시장 개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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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비즈

    윤경림 전 KT 사장이 3일 서울 양재 aT센터에서 열린 ‘2025 대한민국 법률산업 박람회’에 참가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에이투디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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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상 새로운 사업에 도전할 때 가장 행복했다. 지금은 KT에서 디지털 전환(DX)을 이끌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재판 증거 문서의 DX와 AI 전환(AX)이라는 신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윤경림(62) 전 KT 사장은 지난 1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에이투디투(A2D2) 사무실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윤 전 사장은 지난 2024년 11월 본인이 설립한 법률테크 스타트업 ‘에이투디투’에서 이사회 의장을 맡아 회사의 중장기 전략을 조언하고 있다. 에이투디투는 재판 과정에서 쏟아지는 소송 서류·판결문·증거 자료 등 방대한 아날로그 법률 데이터를 인공지능(AI)으로 디지털화하고, 이를 자동으로 분류·요약하는 서비스 ‘아이렉스(AiLex)’를 개발한 회사다.

    1988년 LG유플러스의 전신인 데이콤에 입사한 윤 전 사장은 1997년 하나로텔레콤(현 SK브로드밴드) 창립 멤버로 합류해 1998년 만 35세에 최연소 임원에 올랐다. 하나로텔레콤 재직 시절 세계 최초 초고속인터넷(ADSL) 상용 서비스와 국내 최초 인터넷 전화(VoIP) 상용화를 주도했다.

    이후 2006년 KT로 자리를 옮긴 뒤 2년 만인 2008년 국내 최초 인터넷TV(IPTV)를 출시해 지상파·케이블TV 중심이던 국내 미디어 시장 판도를 뒤흔들었다. 2010년에는 CJ그룹으로 옮겨 그룹 사업총괄 기획을 맡았고, CJ헬로비전 경영지원총괄 부사장을 지냈다. 2014년 KT에 복귀한 뒤 미래융합사업추진실장(부사장)을 맡아 KT그룹의 신사업·미래융합사업 개발을 총괄했다. 당시 KT의 빅데이터·사물인터넷(IoT)·AI·헬스케어·커넥티드카 등 신사업 포트폴리오의 밑그림을 그린 인물이 바로 윤 전 사장이다. 2019년에는 현대자동차그룹으로 자리를 옮겨 미래 모빌리티 전략을 수립하는 역할을 맡았고, 2021년 다시 KT로 돌아와 그룹트랜스포메이션부문장(사장)에 선임돼 KT의 미래 신사업과 디지털 전환을 총괄했다.

    2023년 3월에는 KT 차기 최고경영자(CEO) 단독 후보로 추대됐지만, 주주총회 최종 선임을 앞두고 자진 사퇴했다. 이후 KT 고문을 맡으면서 청년들의 벤처 창업을 지원하는 한편, 에이투디투 창업과 사업 모델 구체화에 집중해왔다. 다음은 윤 전 사장과의 일문일답.

    ㅡ회사를 창업한 배경이 궁금하다.

    “창업 아이디어는 형사재판 경험에서 출발했다. KT CEO 최종 후보에서 자진 사퇴한 뒤 수사와 재판을 겪으면서 2만5000페이지에 달하는 기록과 증거 문서를 직접 일일이 들춰봐야 했다. 그때 ‘왜 이 방대한 아날로그 데이터를 자동으로 처리해 주는 서비스가 없을까’라는 문제의식이 생겼다. 주변 지인들이 10만, 40만 페이지의 증거 문서를 가지고 와서 도움을 요청할 때도 있었는데, 비슷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AI를 활용한 효율적 서비스를 통해 돈 없고 힘 없는 약자들의 자기 방어를 돕고, 제대로 재판받을 수 있게 하는 데 기여해 보자고 생각해 창업을 결심했다.”

    ㅡ어떤 식으로 재판을 돕는다는 건가.

    “사회 전반에선 디지털 전환이 화두지만, 법원과 검찰은 예외였다. 형사재판의 경우 지금도 원칙적으로 증거 문서를 종이로 피고인에게 전달한다. 공소장·판결문 등 형사소송에 필요한 문서도 종이로 작성되고, 이를 바탕으로 재판이 진행되는 게 원칙이다. 2019년 서울중앙지방법원부터 형사소송 전자사본 기록 열람 서비스가 시범 도입됐지만, 실제로는 이미지 파일로만 열람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PDF나 이미지 형식으로 변환된 파일은 종이 문서를 화면에 옮겨놓은 것에 불과하다.

    민사재판은 전자문서가 더 일찍 도입됐지만, 마찬가지로 이미지 파일 열람이라는 점은 다르지 않다. 이런 이미지 파일은 검색이 되지 않고, 내용도 한눈에 들어오지 않아 변호사들이 소송 준비를 할 때 늘 어려움을 겪어 왔다. 우리는 방대한 소송 문서를 구조화된 데이터로 디지털화하고, AI로 분석해 피고인의 방어권을 실질적으로 돕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봤다. 사건당 월 사용료를 1만9000원으로 책정한 것도 돈 없고 힘 없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ㅡ재판 증거문서 DX·AX라는 새로운 시장을 연 셈인데.

    “기존에 없던 수요를 새로 만든 측면이 있다고 본다. 증거 문서를 디지털화해 빠르게 요약해 주고, 원하는 정보만 골라 모아 보여주고, 나아가 분석까지 해주는 기능이 법조계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서비스를 문의하는 로펌이 계속 늘고 있다. KT에서 디지털·AI 전환을 주도했던 경험이 없었다면 엄두를 못 냈을 사업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사업성을 인정받아 이달 3일부터 서울 양재 aT센터에서 열린 ‘2025 대한민국 법률산업 박람회’에 초청돼 재판 증거문서 DX·AX 서비스인 아이렉스를 대중에게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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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이투디투 '아이렉스' 서비스 화면. /에이투디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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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ㅡ왜 직접 경영을 하지 않고 이사회 의장 역할만 맡았나.

    “우리 회사에는 대표이사가 두 명 있다. 사업을 총괄하는 장일준 대표와 기술을 맡은 김윤우 대표, 두 사람이 이사회에 사내이사로 들어와 있다. 여기에 나까지 포함해 이사회 멤버는 총 3명이다. 내 역할은 두 대표가 최대한 자유롭게 회사를 경영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전략을 자문해 주는 게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봤다. 어떻게 보면 사외이사에 가까운 위치에서 조언을 하는 사람인데, 내가 전면에 나서 사내이사들의 경영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ㅡ회사 구성원들의 이력이 화려하다.

    “장일준 대표는 하버드대 경영학 석사(MBA) 출신으로 골드만삭스 아시아 IBD를 거쳤다. 김윤우 대표는 KT그룹에서 AI DX 업무를 담당했던 인물이다. 공승현 최고기술책임자(CTO)는 글로벌 데이터 분석 기업 SAS에서 AI 기술을 담당했던 재원이다. 이영주 최고법률책임자(CLO)는 IT 기업에서 신사업개발 경험이 있고 미국과 한국 변호사 자격을 보유했다. 현재 법무법인 ‘원’의 파트너 변호사이기도 하다. 모두 각자 자리에서 뛰어난 성과를 내던 인재들인데, 우리 회사에 기꺼이 합류해 줬다. 돈 없고 힘 없는 사람들의 재판 방어권을 돕겠다는 창업 취지에 공감해 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ㅡ재판 증거문서를 디지털화해 AI로 돌리면 보안 우려는 없나.

    “우리는 AI 툴로 구글 ‘제미나이(Gemini)’를 사용하지만, 데이터를 폐쇄망(프라이빗 클라우드) 환경에서만 처리한다. 외부와 분리된 망에서 운영하기 때문에 보안 측면에서는 안심해도 된다고 말씀드릴 수 있다.”

    ㅡ해외 진출 계획은.

    “한국과 법체계가 비슷한 일본 시장 진출을 우선 검토하고 있다. 현지 파트너와 구체적인 방식을 논의 중이다.”

    ㅡ차기 KT CEO 유력 후보로 거론됐지만 공모에는 응하지 않았다고 들었다.

    “3년 전 KT CEO 선출 과정에서 있었던 불법·부당한 외압과 이사회 재구성 과정을 직접 경험한 사람으로서, 이번 공모에 응하는 건 제 신념에 맞지 않았다.”

    ㅡ당시 갑작스럽게 자진 사퇴를 한 이유는 무엇이었나.

    “KT의 생존과 미래를 위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2023년 3월 7일 제가 KT CEO 최종 후보로 선임되자마자 한 시민단체가 고발했고, 다음날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가 수사에 착수했다. 이 정도면 명백한 압박이라고 느꼈다. 당시 ‘용산의 분위기가 좋지 않다’ ‘빨리 사퇴하는 게 좋겠다’는 메시지도 여러 경로를 통해 전달됐다. AI 대격변 시기인 지금 KT는 매우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그런데도 CEO 선임 때마다 외풍이 반복되는 일은 이제 그만 멈춰야 한다고 본다. 차기 CEO는 KT를 잘 아는 내부 출신이 맡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심민관 기자(bluedrago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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