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5일 이재명 대통령을 만나 인공지능(AI) 시대에 한국이 가장 취약한 분야로 에너지를 지목했다. 초인공지능(ASI) 시대를 앞두고 AI 가동을 위한 전력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데도 한국의 전력 분야가 이를 뒷받침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한 것이다.

손 회장은 이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이 대통령과 면담하면서 ASI 시대를 대비해 △반도체 △데이터 △에너지 △교육 등 네 가지 자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손 회장은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반도체 분야 경쟁력을 높게 평가했지만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위한 필수 요소인 에너지 조달 체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고 했다.

손 회장은 “ASI 시대를 대비해 데이터센터 증설이 필요하고 이를 뒷받침할 에너지 확보에 보다 힘써야 한다”며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 내 데이터센터 구축 계획을 많이 발표하고 있는데 규모가 너무 작다”고 했다. 그러면서 “(구축 규모가) 더 커져야 할 텐데 에너지 확보가 매우 중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서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0월 초 이 대통령을 만나 전남과 포항에 각각 20메가와트(㎿) 규모 데이터센터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본격적인 AI 전용 하이퍼스케일급 데이터센터가 50~100㎿ 규모라는 점을 감안할 때 소규모 데이터센터로 분류된다. 최근에는 1기가와트(GW)까지 확장할 수 있는 AI 데이터센터도 건설되고 있다. 손 회장의 전력 확보 발언은 한국이 아시아·태평양 AI 허브가 되려면 전력 인프라스트럭처를 선제적으로 구축해야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손 회장은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의 경쟁력이 한국이 AI 산업에서 강자로 자리매김하는 데 적잖은 역할을 할 것으로도 전망했다.

손 회장은 “메모리 반도체 분야는 한국이 세계 최고인데 ASI 시대가 도래할수록 반도체의 수요와 중요성은 엄청나게 증가할 것”이라며 “한국이 강한 메모리 반도체 분야 경쟁력을 토대로 한미 간 반도체 동맹을 보다 강력하게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통령실은 이 대통령과 손 회장이 모든 사람에게 AI 접근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 정부는 AI가 가진 위험성은 최소화하고 유용성 측면에서 많은 투자를 하고 기대하고 있다”며 “더 나아가 제3세계 개발도상국 국민에게 AI 접근성을 보장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이 대통령과 손 회장 간 만남은 정부가 전 세계에 AI 인프라를 확장하는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 동참하고 있는 가운데 이뤄져 주목받았다. 이 대통령은 정책 1순위로 AI 3강 도약을 제시하고 올트먼 CEO와 젠슨 황 엔비디아 CEO 등 AI 분야 리더들과 만남을 지속해왔다. 이를 통해 빅테크 기업의 데이터센터를 한국 내 유치하고 한국 반도체 기업과 오픈AI·엔비디아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 간 협력의 가교 역할을 해왔다. 실제 10월 초 올트먼 CEO 방한 당시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2029년까지 오픈AI에 매월 최대 웨이퍼 90만장 규모의 D램을 공급하기로 했고, 10월 말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를 계기로 방한한 황 CEO는 현대자동차와 엔비디아가 총 30억달러를 피지컬 AI 기술 개발에 공동 투자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청사에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을 접견하고 있다 . 2025.12.5.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김호영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월 유엔 총회 당시 미국 뉴욕에서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을 만나 한국 AI 인프라 분야에 블랙록이 수십조 원 규모를 투자하는 안을 논의했다. 또 지난달에는 아랍에미리트(UAE)를 국빈 방한해 UAE의 스타게이트 프로젝트 참여 합의를 이끌어내 한국 기업이 관련 전력 인프라망 건설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기도 했다.

손 회장은 올트먼 CEO와 함께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다. 올트먼 CEO가 기술 분야를 주도하고, 손 회장은 자금 조달을 책임지고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편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이 대통령의 손 회장 접견 후 브리핑에서 일부 첨단산업에 한정해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과 관련해 “정부 내에서 상당히 많은 의견 접근이 있었다”고 밝혔다.

앞서 이 대통령은 10월 올트먼 CEO를 접견한 뒤 “독점의 폐해가 나타나지 않는 범위에서, 또 다른 영역으로 규제 완화가 번지지 않도록 하는 범위 내에서 AI 분야 금산분리 일부 완화를 검토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김 실장도 이날 브리핑에서 “당시 대통령 발언은 일반적 금산분리 완화를 얘기한 것이 아닌, 독점 폐해가 없는 한에서 첨단산업 투자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였다”며 규제 전면 완화 가능성에는 다소 거리를 뒀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