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핵무장 암묵적 용인 우려 커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0월 30일 부산에서 만나 대화를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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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과 중국이 각자 발표한 주요 안보 문서에서 이전과 달리 북한 비핵화가 언급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5일 공개된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NSS)에는 ‘북한’이란 단어 자체가 등장하지 않는다. 2017년 NSS는 “한반도 비핵화를 강제할 옵션을 향상시킬 것”이라 했고, 바이든 정부 때인 2022년엔 북한을 세 차례 언급하며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외교를 추구하는 동시에 확장억제(핵우산)를 강화할 것”이라고 했다.
중국이 지난달 발표한 백서에도 한반도 비핵화를 지지한다는 기존 문구가 빠졌다. 가장 최근 백서인 2005년 버전에서 “중국은 관련 국가들이 한반도 등에서 비핵(非核) 지대를 설립하겠다는 주장을 지지한다”고 했는데, 이 부분이 사라진 것이다. 북핵 문제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미·중 양국은 원론적으로는 북한의 비핵화를 추진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 핵·미사일 문제가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리면서 근본적인 해결이 점점 더 요원해지고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中, ‘북핵 불용’ 기존 입장 뒤집나… 美선 北과 감축 협상론 나와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이 6일 캘리포니아주 시미 밸리에서 열린 '레이건 국방 포럼'에 참석해 연설을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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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2기 출범 후에 백악관, 국무부 등이 여러 차례 “완전한 북한 비핵화를 추구한다”는 입장을 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친분을 과시하고 대화 의지를 드러내는 것을 넘어 북한을 사실상의 핵보유국을 뜻하는 ‘뉴클리어 파워(nuclear power·핵 보유 세력)’라 지칭해 논란이 됐다. 워싱턴 DC의 외교·안보 싱크탱크에서는 비핵화가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가 됐고, 이를 동결 또는 감축하는 ‘군축’ 협상이 현실적이라는 주장도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다만 지난달 한미가 발표한 팩트시트에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문구가 포함됐고, NSS를 구체화할 국방전략(NDS) 문서에는 어떤 형태로든 북핵 문제가 언급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미 조야(朝野)에서는 한국이 대북 방어에 더 많은 부담을 지고, 주한미군 등은 중국 견제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논리도 확산하고 있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6일 레이건 국방포럼 연설에서 한국을 이스라엘, 폴란드와 함께 국방 지출 확대 요구에 부응한 ‘모범 동맹’으로 칭하면서 “우리로부터 특혜를 받을 것”이라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트럼프와 두 차례 회담을 통해 군사 지출을 국내총생산(GDP)의 3.5% 수준까지 끌어올리기로 합의했는데 헤그세스는 이를 언급하며 “한국이 재래식 방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기로 약속했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이 지난달 27일 발표한 ‘신시대 중국의 군비 통제, 군축 및 비확산’이란 제목의 백서에서도 한반도 비핵화 지지 문구가 처음으로 생략됐다. 이번 백서는 20년 만에 발표된 것으로 과거 1995·2005년 두 차례 공개됐다. 2005년에는 “중국은 관련 국가들이 한반도 등에서 비핵(非核) 지대를 설립하겠다는 주장을 지지한다”고 했었다. 이번 백서는 이런 문구가 빠진 대신 “중국은 조선 반도(한반도) 문제에 대해 공정한 입장과 올바른 방향을 견지하고 한반도 평화·안정·번영에 힘써왔으며 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 과정에 전념하고 있다”고 했다.
최근 몇 년 새 중국이 한반도 비핵화를 언급하는 경우가 줄어들고 있는데, 미국 견제를 위해 ‘북핵 불용’이라는 기존 입장을 바꿔 북한의 핵무장을 암묵적으로 용인하려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 때만 해도 한중 정상회담 발표문에 “한반도 비핵화 목표” 등을 포함시켰지만, 윤석열 정부부터는 이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 지난달 1일 한중 회담에서도 중국 정부 발표에 비핵화를 포함한 한반도 정세 문제가 전혀 언급되지 않았고, 지난해 5월 발표된 한·중·일 3국 정상회의 공동선언에도 중국이 반대해 ‘한반도 비핵화가 목표’라는 문구가 담기지 않았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지난 9월 김정은을 만났을 때 중국 측 발언이나 문서에서 한반도 비핵화가 제외됐는데, 2018~2019년 다섯 차례 회담했을 때는 결과문에 매번 비핵화 관련 내용이 포함됐었다.
한편 미국의 NSS는 동맹이 자기 지역의 방어를 책임지고 ‘집단 방위’에 더 많이 기여해야 한다고 주문하면서 여기에 협력하는 나라는 “상업적 현안에서 더 우호적인 대우, 기술 공유, 국방 조달” 등을 통한 지원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또 한국에 국방 지출 확대를 압박하고 적을 억제하기 위한 ‘새로운 역량’을 갖출 것을 요구했는데, 트럼프가 원자력 추진 잠수함 도입을 승인한 것이 한국의 중국 견제 동참을 전제로 이뤄진 것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 다만 외교 소식통은 “트럼프 정부 들어 국방부가 해외 주둔 미군의 태세를 조정하고 있는데, 한국의 국방 지출 확대와 원잠 같은 새로운 역량 확보는 거꾸로 주한미군을 감축·철수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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