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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선우 | 중앙대 간호학과 1학년
얼마 전, 대학교 전공과목 과제를 위해 리포트를 작성했을 때의 일이다. 나는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직접 다양한 논문을 찾아보고 분석하며 완성도 높은 리포트를 작성하였다. 이번 과제의 평가 기준에는 ‘인공지능(AI) 표절률’이라는 항목이 포함돼 있었다. 이는 단순히 글의 완성도만 보는 게 아니라, 과제 과정에서 인공지능을 표절 수준으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카피킬러’는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인공지능 탐지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완성한 리포트를 카피킬러에 돌려보니 인공지능 표절률이 86%였다. 직접 공부하고 노력하며 쓴 글이 인공지능이 작성한 것으로 판정된 것이다. 그날 나는 카피킬러가 더 이상 인공지능이 쓴 글이라고 인식하지 않을 때까지 수없이 글을 수정해야 했다. 결국 나의 표현이 담긴 문장이 아니라 ‘또 다른 인공지능이 괜찮다고 여길 문장’을 만들어야만 했다. 사람이 직접 쓴 글까지도 인공지능 탐지기에 의심받는 이 상황은 단순한 기술적 오류를 넘어 창작의 주체성이 흔들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지금의 이러한 평가 방식은 오히려 학생들의 표현과 창의성을 위축시키고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의 급속한 발전으로 인해 지난해부터 많은 대학이 인공지능 탐지 알고리즘을 공식적으로 도입했다. 대학의 취지는 학생들의 인공지능 의존도를 낮추고 자기주도적 학습을 강화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학생들이 느끼는 부담은 오히려 더 커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학생들은 과제의 내용적 완성도보다 ‘표절률’을 낮추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는다. 좋은 문장이 떠올라도 “이 표현은 인공지능 같다고 판단될 것 같아”라는 불안감에 문장을 단순화하거나 억지로 다른 표현을 바꾸는 경우가 많다. 한 학생은 “과제를 작성하는 것보다 표절률을 낮추느라 글을 고치는 시간이 더 많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지금의 평가 방식은 학생들의 목소리를 들어주기보다 인공지능이 보여주는 숫자에 의존하며, 평가받는 학생들의 억울함마저도 당연한 듯 허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학이 믿고 의지하는 인공지능 탐지기들은 과연 정말 믿을 만할까? 그렇지 않다는 주장이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학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영국 출신 마이크 퍼킨스 박사(베트남 대학 BUV 부교수)는 지난해 발표한 한 논문에서 “주요 인공지능 탐지기들을 테스트한 결과, 이런 도구들이 학문적 정직성을 위반했는지 판정하는 데 권장할 만하지 않다”고 언급했다. 또 탐지기가 인공지능 텍스트를 정확히 식별한 비율이 39.5%에 불과한데, 탐지 회피 기술을 적용하면 정확성은 더 떨어진다고 했다.
인공지능 탐지기에 대한 신뢰성 문제는 지속적으로 제기되어온 바 있다. 그럼에도 대학은 여전히 탐지기가 내놓는 숫자에 의존한 평가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과제에서 진정으로 평가해야 할 것은 학생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그 관점을 얼마나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게 풀어냈는가이다. 글쓰기란 개인의 표현 습관과 가치관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과정이다. 하지만 현재의 시스템은 이런 자연스러움을 해치고 있다. 학생들은 자신만의 문체를 찾고 발전시키기보다 ‘인공지능처럼 보이지 않는 글쓰기’를 배우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사고력과 표현력을 발전시키려는 대학 교육의 본래 취지와도 어긋난다.
이제 대학은 평가 구조 자체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단순히 ‘인공지능 표절률’ 탐지에 의존하기보다 학생들의 실제 역량을 평가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과제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대면 논술형 평가나 개인의 경험에 관한 서술형 과제가 대안이 될 수 있다. 또한 인터뷰나 현장 보고서처럼 구체적 맥락과 증거가 필요한 과제도 평가의 신뢰도를 높이는 방안이 될 것이다. 이러한 구조적 변화는 학생이 부당하게 오판받는 일을 줄이고, 평가의 공정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학생들의 표현의 자유가 더 이상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기술은 학습을 돕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학생을 의심하거나 위축시키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만약 대학이 인간의 글조차 의심하는 방식을 고집한다면, 교육은 성장이 아닌 회피 전략의 습득으로 변질될 것이다.
창작자가 자신의 글을 해명해야 하는 시대. 지금 필요한 것은 더 강력한 탐지기가 아니라 학생들의 생각과 표현을 존중하는 새로운 평가 방식이다. 대학이 그 기준을 되찾는 순간, 깊이 있는 학습이 다시 시작될 것이다.
내란 종식 그날까지, 다시 빛의 혁명 ▶스토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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