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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9 (화)

    청산 1년 말고 ‘재건 1년’ [세상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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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12·3 내란외환 청산과 종식, 사회대개혁 시민대행진이 열린 지난 3일 밤 국회 정문 앞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며 응원봉을 흔들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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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복경 | 더가능연구소 대표



    최근, 지난해 그 심란했던 겨울밤을 떠올리는 많은 이들의 언어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누군가는 ‘내란 1주년’이라 하고 누군가는 ‘혁명 1주년’이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아, 간혹 ‘계몽령 1주기’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개인의 말은 개인의 다양한 생각을 담는다. 그런데 집단이 공유하는 말은 다른 힘을 갖는다. ‘나의 언어의 한계는 나의 세계의 한계’라고 했던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빌리면, 우리가 공유하는 언어는 우리가 집단적으로 인식하는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여러분은 2025년 12월3일에 2024년 12월3일을 어떤 언어에 담아 떠올렸는지 궁금하다.



    현행 법률 중에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있다. 이 법명은 집단이 공유하는 말의 힘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사례다. 원래 이 법은 2004년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 진상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왔다. 2004년 법에서는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시기를 ‘일제강점기’라는 언어로 표현했는데, 2010년 새 법에서 그 시대는 ‘대일항쟁기’라는 다른 이름을 얻었다. 전자가 객체의 시선에서 시대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을 피동적으로 묘사한 언어라면, 후자는 주체의 능동적 시선을 오롯이 담은 언어다. ‘일제강점기’에서 주어는 일제 군국주의 권력인 반면, ‘대일항쟁기’에서 주어는 대한민국 사람들이다.



    지금도 내 나이 또래 많은 이들은 ‘대일항쟁기’라는 단어보다 ‘일제강점기’라는 단어를 더 즐겨 쓴다. 그렇게 배웠고 오래도록 그렇게 썼기 때문에, ‘일제강점기’는 익숙하고 ‘대일항쟁기’는 낯설다. 그래서일까? 나는 내 또래 사람들과 일제 군국주의자들의 강제 점령이 얼마나 부당한지에 대해 종종 이야기를 나눴지만, 그 엄혹하고 길었던 시대에 포기하지 않고 저항했던 독립운동가들의 삶에 대해 깊이 이야기를 나눠본 기억이 별로 없다. 나는 내 또래들에게 익숙해진 언어가, 항쟁의 역사보다 강제 점령의 역사에 초점을 맞추도록 인식의 한계를 틀 지은 것도 중요한 원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우리가 공유하는 말은 내 생각의 한계를 규정하기 때문이다.



    다시 12월3일로 돌아와보자. 최근 이런저런 모임이나 온라인 댓글에서 ‘대체 언제까지 내란 청산을 해야 하나’라는 분노 섞인 갑갑함을 담은 말을 듣게 된다. 이 말을 하는 사람들의 뉘앙스는 여러가지다. ‘내란 청산은 이만하면 됐다, 더 급한 일이 많은데 미래를 준비해야지’에서부터, ‘내란 청산이 최우선 과제여야 하는데,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한 게 하나도 없다’에 이르기까지. 갈 길이 먼데 온갖 곳에서 ‘내란 청산’에 대한 저항은 빈발하니, 많은 이들이 조급증이 나는 모양이다.



    이 시점에, 지난 1년을 정의하는 우리의 집단적 언어로 ‘내란 청산 1년’이 아닌, ‘민주정 재건 1년’을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시간을 더 정확히 표현하는 언어이기도 하거니와, 함께 공유하는 말의 힘으로 이 시간의 조급증을 견뎌내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청산’은 과거를 깨끗이 정리하고 바로잡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언제까지, 얼마나 정리해야 우리의 과거가 깨끗해지는 걸까? 과거를 깨끗이 정리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걸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란 수사와 재판은 당연히 철저히 이루어져야 하지만, 그것은 과거를 깨끗이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유사 범죄의 재발을 막기 위한 것이므로 민주정 재건 과정의 한 영역이다. 제도를 바꾸어 권력기관 간 견제 시스템이 작동하도록 만드는 것도 재건의 한 과정이다. 우리가 함께 사는 집을 새로 짓는 과정은 절대 시간과 인내를 필요로 하고 시행착오는 불가피하다. 사회경제적 불평등도 완화하고 시민의 기본권 보장도 강화하고 권력기관의 오작동도 바로잡으면서 ‘12·3 내란’ 범죄자들에게 책임을 물어 재발을 막는 것도 길게 보며 같이 해나가는 것이다. 청산부터 해야 재건이 가능하다는 단계론적 사고는 우리의 인내를 고갈시키고 민주주의자 연대 내부의 신뢰를 훼손시킬 수 있다. 한 영역의 과제가 시간이 걸리면 다른 거 먼저 하면 되고, 하다가 실수하면 다시 하면 된다. 지금 중요한 것은, 민주정 재건을 함께 해나가야 할 모든 부문의 민주주의자들 사이의 신뢰와 연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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