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 5월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 전원합의체 선고를 시작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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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성│논설위원
지금 언론의 관심은 온통 내란전담재판부에 쏠려 있지만, 조희대 대법원장에 빙의해 사태를 조감해보면, 내란전담재판부는 맥거핀에 불과하다. 관객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이 창안한 바로 그 맥거핀. 전국의 법원장들이 위헌 소지가 크다고 비판한 법왜곡죄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법원행정처 폐지를 비롯한 사법민주화 저지가 조 원장이 펼치고 싶은 핵심 주제일까. 절반만 그렇다. 내란전담재판부와 법왜곡죄 반대 견해 표명은 반사법개혁 투쟁의 전초전이다. 본진을 떠나 멀리 나가 맞불을 놓았다고 볼 수 있다. 좀 더 중요한 목표는 나머지 절반에 있다. 본인에 대한 퇴진 요구 차단이다. 정권 교체 뒤 사법개혁 논의가 시작될 때부터 조 원장은 기조를 이렇게 잡았고, 아직까진 대단히 성공적이다.
지난 8일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 결과도 조 원장의 전략이 주효했음을 확인해줬다. 조 원장의 ‘야당 대선후보 피선거권 박탈’ 미수 사건으로 촉발됐던 두차례의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아무런 결론을 내지 못하고 허망하게 끝났지만, 이번엔 달랐다. 법원장들보다 완곡한 표현을 썼을 뿐, 내란전담재판부와 법왜곡죄에 반대한다는 뜻을 명확히 했다. 내부로부터의 사법 신뢰 붕괴는 참을 만하지만 외부의 개입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선언처럼 들린다.
윤석열 내란 이후 사법부가 제1의 개혁 대상이 된 것은 조 원장이 자초한 일이다. 누가 떠민 것이 아니다. 본인에게 주어진 권력을 풀베팅해서 정치적으로 악용한 대가다. 법원을 정치의 한복판에 세운 이 희대의 폭거만으로 조 원장은 탄핵당해야 마땅하다. 더구나 대법원장이 결심만 하면 대법관 9명이 기록도 읽지 않고 거수기가 될 수 있는 독재적 구조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법원행정처 폐지는 바로 이 제왕적 권력을 해체하는 핵심 방안인데, 법관대표들은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사법부 내부 독재를 용인하겠다는 뜻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법원장들은 12·3 비상계엄 사흘 뒤인 지난해 12월6일에도 정기회의를 열었지만, 조 원장을 비롯한 누구도 ‘내란’과 ‘위헌’을 말하지 않았다. 불과 두달 전 국정감사에서도 이들은 재판 중인 사안이라며 ‘내란’이라는 표현을 입에 담길 거부했다. 그러다 내란전담재판부를 비롯한 사법부 압박이 가시화하자 지난 5일 정기회의에서 비상계엄이 ‘위헌’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사법개혁에 대한 저항의 명분을 확보하려 마지못해 사실을 인정한 게 아니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나.
아직 법안도 통과되지 않은 내란전담재판부가 위헌이라는 말은 신속하게 나오는데, 이미 벌어진 내란이 위헌이라는 말을 하기까지 1년이나 걸렸다. 전국법원장회의와 전국법관대표회의라는 법원의 두 대표기구 행태는 사법부가 의무에 무감하고 권리에 민감한 이기적 집단이라는 국민적 불신을 강화시킬 것이다.
이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질문해야 한다. 지금 사법부는 이대로 괜찮은가. 헌법이 보장한 재판의 독립이 대법원장의 인사권에 의해 법원 내부에서 침해당하는 사태를 방치하는 것이야말로 위헌 아닌가. 판사가 법을 잘못 해석해 결과적으로 위법적인 결정을 했을 때도 관련 재판을 계속하도록 내버려두는 게 사법 정의인가. 대법원이 국민과 국회의 질문에 거짓과 무시로 일관하더라도 어떤 처벌도 받지 않는 관행은 삼권분립 정신에 부합하는가.
흔히들 간과하는 사실인데, 전두환·노태우를 처벌한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도 위헌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다.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학살의 공소시효를 1993년 2월24일까지 정지한 특별법 조항이, 소급입법에 의한 처벌을 금지한 헌법 제13조 1항에 어긋난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기꺼이 합헌 결정을 내렸고, 대법원은 유죄 판결을 내렸다. 12·12와 5·18이라는 반국가적이며 반인륜적인 범죄를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위헌 시비를 압도했다. 다수의 열망으로 법 해석을 바꾼 사례다.
1년 전, 국회로 달려간 시민들과 월담한 의원들이 아니었다면, 5·18 같은 유혈 사태를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린 마치 학살이 일어난 것 같은 참담함으로 내란 사건을 마주해야 한다. 내란을 잉태한 법조 엘리트 카르텔을 해체하고 부당한 특권을 회수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 학살이 없었던 탓인지 나태한 인식이 도처에 만연해 있다. 전두환을 단죄하고도 섣불리 사면하여 ‘제2의 전두환’인 윤석열을 불렀듯이, 우린 다시 또 ‘제2의 윤석열’을 부르고 있는 것 아닐까.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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