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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1 (목)

    [김창균 칼럼] 내란 진행 중? 李 정권의 ‘사법부 파괴 공작’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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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시간 반짜리 계엄 1년 경과

    수사기관마다 탈탈 털었는데

    내란 끝나지 않았다니

    거슬리는 사법부 잔당 취급

    위헌법률로 헌법기구 무력화

    이거야말로 내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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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8일 오전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2025년 하반기 전국법관대표회의 정기회의에서 참석자들이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법관 대표회의는 민주당이 추진하는 내란전담재판부 설치와 법 왜곡죄 신설 법안에 대해 “위헌성 논란이 있고 재판의 독립성을 침해할 우려가 크다”는 입장을 밝혔다./박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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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대통령의 12·3 계엄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다는 헌재의 탄핵 결정에 이견이 없다.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라는 계엄 요건에 맞지 않고, 국무회의 심의를 거치지 않은 것을 비롯해 절차상 하자가 즐비했다. 그러나 이재명 정권이 윤 대통령의 계엄을 내란이라고 제멋대로 부르는 데는 동의하기 어렵다. 대통령이 국가 권력을 빼앗으려 했다는 개념 자체가 어색한 데다, 계엄 선포에서 국회 해제 의결까지 2시간 반 동안 벌어진 일을 폭동이라는 범주 속에 넣을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무엇보다 최종적으로 법원이 판단할 사안인데 최종심은커녕 아직 1심 판결도 나오지 않은 시점에서 정치 집단이 무슨 근거와 자격으로 내란 여부를 규정할 수 있나.

    더구나 그 내란 몰이도 오락가락했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덤터기 씌우기로 국민의힘을 압박해 국회 탄핵 소추안을 통과시켜 놓고는 헌재 탄핵 심판 과정에서는 내란 혐의를 삭제했다. 내란이냐 아니냐는 논란으로 심판 과정이 지연되거나 혼란스러워질 것을 우려해서다. 민주당도 계엄이 내란이라고 100% 자신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이제 1심 선고가 다가오면서 재판부를 향한 내란죄 압박이 또다시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윤석열을 풀어 주거나 무죄를 선고하면 판사에 대한 처벌이 가능하다”는 엄포까지 놨다. 헌재가 만장일치로 탄핵한 윤 전 대통령이 무죄로 풀려나긴 어려워 보인다. 다만 직권남용 등의 다른 혐의는 적용하되 내란 혐의는 민주당 희망을 비껴갈 수도 있다. 민주당 내부에선 그 가능성을 걱정한다고 한다. 1년 내내 재미를 본 ‘내란 공포 마케팅’이 머쓱해질 뿐더러 내년 지방선거 전략에도 차질이 생긴다.

    계엄이 내란죄여야 한다는 강박 관념도 납득이 안 되지만, 내란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상황 진단은 어처구니가 없다. 이재명 대통령은 계엄 1년 특별 성명에서 “내란은 아직 진행 중”이라면서 “(치료 기간이 오래 걸리는) 치명적인 암은 끝날 때까지 끝내야 한다”고 했다. 계엄이 작동한 2시간 반 동안 암세포가 얼마나 번졌길래 1년 동안 칼질로도 부족하다는 건가. 이재명 정권이 겨누는 내란 잔당은 결국 사법부인 듯싶다. 윤석열·김용현 2인 단막극이었던 계엄을 대하 사극으로 각색해서 장기 상영하고 싶은데 잇단 영장기각으로 흐름을 끊고 있기 때문이다. 사법부가 이재명 정권 희망대로 판결하지 않는 것을 내란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알렉산더 해밀턴을 비롯한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이 집필한 ‘연방주의자 논문(The Federalist Papers)’은 미국 민주주의의 작동 원리를 설명한다. 전체 85편 중 78편은 사법부 독립 방안을 다룬다. “칼을 휘두르는 행정부, 지갑을 쥔 입법부에 비해 판단만 하는 사법부는 가장 취약하다. 사법부가 혼자일 때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행정부, 입법부에 휘둘려서 한 편이 되면 민주주의 기반이 무너진다”고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사법은 선출된 권력인 행정, 입법에 고개 숙이고 따라야 한다”는데 건국의 아버지들은 세 권력이 한 편에 서는 상황이야말로 민주주의에 대한 치명적인 위협이라고 우려한다.

    그래서 연방주의자 논문은 “사법부는 선거로 뽑히는 행정, 입법 권력으로부터 독립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판사들이 탄핵 당하지 않는 한 임기를 보장해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미국 대법원 판사들의 임기가 종신직으로 정해진 이유다. 우리 대법원 판사들도 5년 대통령, 4년 국회에 휘둘리지 않도록 헌법에 6년 임기를 못 박았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눈에 이재명 정권이 추진하는 사법개혁안이 어떻게 비칠까. 이재명 대통령이 자기 임기 동안 임명하는 대법관이 절대 과반을 넘어서도록 만들겠다는 법안, 법관 인사권을 대법원장으로부터 박탈해 행정·입법부 손에 안기겠다는 법안, 판결 내용이 집권세력 마음에 안 들면 처벌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법안들은 한결같이 3권 분립 원칙에 배치된다. 민주주의 하겠다는 나라에서는 모두 위헌일 수밖에 없다.

    이재명 정권이 윤 전 대통령의 계엄을 내란이라고 부르는 것은 입법부라는 헌법 기관의 작동을 막으려 했다는 의심 때문이다. 그런 논리라면 헌법에 어긋나는 입법으로 사법부라는 헌법 기구를 망가뜨리려는 이재명 정권의 공작도 내란이라고 불러 마땅하다. “내란이 진행 중”이라는 이 대통령 발언은 “우리가 사법부 파괴를 노리고 있다”는 고해성사였던 것일까.

    [김창균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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