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지난 9월 베네수엘라 마약 카르텔과 전쟁을 선포한 이후 지상전을 염두에 두고 베네수엘라 인근 해역에 핵추진 항공모함, 구축함과 강습상륙함, 공격잠수함, 전략폭격기 B-1B·B-52, 스텔스 전투기 F-35, 무인공격기 MQ-9 리퍼 등 약 2만 명의 병력을 전개한 상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니콜라스 마두로(베네수엘라 대통령)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선언했다.
현지시간 10일 팸 본디 미 법무장관은 자신의 SNS에 이날 오전 진행된 베네수엘라 인근 해역에서의 유조선 억류 과정을 담은 영상을 공개했다.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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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작전 영상 공개
미 정부는 이번 나포 작전 영상을 이날 소셜미디어(SNS)에 일부 공개했다. 영상에선 미군 장병들을 실은 헬기가 유조선에 접근하더니, 이내 병력들이 헬기 라펠을 타고 강하해 갑판을 바로 장악한다. 돌격소총과 투시경으로 중무장한 병력들은 간판에서 빠르게 흩어지며 기동해 상부구조물에 진입 후 베네수엘라 유조선을 진압해버린다.
미군이 점거한 유조선은 남아메리카 북부 가이아나 국적의 ‘스키퍼(The Skipper)’호다. 바이든 정부 때인 2022년 이란 및 레바논의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와의 연관성 때문에 미국 정부의 제재 대상이 됐다. CNN 등은 “스키퍼호는 지난달부터 자동식별시스템(AIS)상으로는 가이아나 조지타운 인근에 있었던 것으로 나와있지만, 실제로는 900㎞ 떨어진 베네수엘라 해안 도시 근처에 있었던 사실이 위성 사진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6일(현지시간)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은 자신의 SNS에 카리브해에서 마약운반선으로 의심되는 선박을 폭격한 동영상을 게시했다. 미국은 지금까지 20차례 이상 의심 선박에 대한 폭격을 가했고, 이 과정에서 80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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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이번 작전을 위해 세계최대 핵추진 항공모함 ‘제럴드 포드’에서 헬기 2대를 띄우고, 특수작전 부대, 해안경비대 10명, 해병대 10명 등을 투입했다고 발표했다. 공식 작전 개시시점은 10일 오전 6시라고 한다. 팸 본디 법무장관은 SNS에 “연방수사국(FBI), 국토안보수사국(HSI), 해안경비대는 전쟁부(국방부)의 지원을 받아 베네수엘라와 이란으로부터 제재 대상 원유를 수송하던 유조선에 대해 압수 영장을 집행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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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선’ 폭격 이은 선박 나포…다음 수순은?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경제 라운드 테이블 행사가 시작되자마자 “우리는 방금 베네수엘라 연안에서 유조선 한 척을 나포했다”며 “대형 유조선으로 매우 크다.억류한 유조선 중 사상 최대 규모”라고 말했다. 이어 “매우 타당한 이유로 나포했고, 진행 중인 다른 일들도 나중에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유조선에 실린 원유에 대해선 “우리가 가질 것 같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백악관 루즈벨트 룸에서 열린 원탁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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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베네수엘라 마약 카르텔과 전쟁을 선포한 이후 마약 수송선 23척을 파괴하고 87명을 사살했다. 일부 수송선에선 첫 타격 이후 생존자들이 있었으나, 미군이 2차 타격으로 사살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일부 사망자 유족은 마약 수송선이 아니라 어선이었다고 항변 중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지상 작전이 머지 않았다”고 그 동안 수차례 발언한만큼 베네수엘라에 대한 지상전이 임박했다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선전포고에 대한 의회 승인은 필요하지 않다”고도 강조했다. 불시에 전쟁할 수 있다는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일 공개된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마두로 축출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그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답했다.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카라카스에서 열린 산타 이네스 전투 기념 집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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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미국 연방항공청(FAA)은 지난달말 베네수엘라 주변의 “심각한 안보 상황과 군사활동 고조”를 이유로 베네수엘라 영공을 비행하는 항공사에 주의보를 발령했다. 로이터는 “주의보 발령 이후 베네수엘라 상공을 지나는 항공편 수가 약 절반으로 줄었다”고 분석했다.
싱크탱크 니스 카넨 연구소의 시뮬레이션 결과,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이 단기간 내전으로 이어질 경우 몇 년 안에 170만~300만 명에 달하는 베네수엘라 난민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됐다. 만약 장기 내전으로 이어지면 난민 규모는 400만 명 이상으로 급증하고, 인근 콜롬비아와 브라질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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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자원 강탈하려는 노골적 범죄”
베네수엘라는 이날 미국의 군사작전에 대해 “노골적 강탈이자 국제법상의 해적행위”라며 트럼프 행정부를 규탄했다. 이반 힐 베네수엘라 외교부 장관은 “미국 대통령이 유조선 습격을 자백하며 공개적으로 발표한 약탈 행위를 비난한다”며 “트럼프는 2024년 선거 때에도 베네수엘라 석유를 빼앗는 것이 자신의 목표였다고 밝힌 바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공격은 베네수엘라 에너지 자원을 의도적으로 빼앗으려는 계획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루즈벨트룸에서 진행한 원탁회의에서 두손을 모은 채 발언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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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는 세계 최대 원유 매장량을 보유한 국가다. 하루 약 100만 배럴을 생산하지만, 미국의 제재 때문에 글로벌 석유 시장에 참여할 수 없어 생산량의 80%가량을 헐값에 중국에 넘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들을 인용해 “트럼프가 베네수엘라 석유를 일부라도 확보하는 데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최근 발표한 국가안보전략서(NSS)에서 ‘먼로 독트린’을 명시하며 중남미에 대한 패권을 공식화한 상황이다. ‘먼로 독트린’은 제임스 먼로 미 대통령이 1823년 밝힌 외교 정책으로, 미 대륙에 대한 외부 간섭의 배제를 핵심으로 한다. 중동·유럽 등 다른 대륙의 분쟁에선 발을 빼고 미 본토 인접국에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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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견제구를 날렸다. 11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중국이 전날 베이징에서 2008년과 2016년에 이어 세번째 ‘중남미·카리브해 전략 문서’를 발표했다”고 전했다. 이번 문서엔 미국을 직접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일방적인 강압적 행동으로 국제 평화와 안보가 저해되고 인류사회가 전례 없는 도전에 직면해있다”는 진단과 함께 “일방적 괴롭힘에 반대한다”는 표현이 담겼다. 외교가에선 카리브해 지역에서 돌발상황이 발생할 경우에 대비해 중국이 지금까지 확보해둔 기득권을 미리 확실히 해두려는 의도란 분석이 나온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박현준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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