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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1 (목)

    법 위의 선박왕 ① 하루 70억 원 버는데... 세금 4천억 안내고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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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에 정해진 세금을 내는 것은 국가에 대한 의무이기 이전에 시민들이 서로 맺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사회 계약이다. 그러나 여기, 무려 4,300억 원에 달하는 세금을 내지 않고 14년째 버티고 있는 한 사람이 있다. 바로 ‘한국인 선박왕’이라고 불리는 시도해운 권혁 회장의 이야기다. 권혁 회장이 안 내고 있는 세금 4,368억 원은 평균적인 납세자 21만 명의 1년치 소득세에 해당한다. 한 개인이 내지 않은 세금을 메꾸기 위해 21만 명이 필요했던 셈이다.

    무려 21만 명이 단 한 사람을 떠받쳐야 하는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대한민국의 조세 시스템과 사법 시스템은 어디서 어떻게 구멍이 났을까. 이 거대한 부정의를 그냥 두고만 봐야하는 것일까.

    뉴스타파는 오늘부터 시도해운 권혁 회장의 사례를 통해 대한민국의 조세 정의를 되묻는 ‘법 위의 선박왕’ 연속 보도를 시작한다.

    ① 하루 70억 원 버는데... 세금 4천억 안내고 버텼다

    ② 14년 소송전...50만분의 1 확률과 줄어든 세금 1,300억 원

    ③ 자산 · 소득 0원으로 생활? 수십 억 횡령 증거 포착

    확인된 선박만 53척…하루 용선료 최고 70억 원
    우리의 일상은 해운에 크게 의존한다. 전 세계의 교역 물동량 가운데 약 80%가 배를 통해 운반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각에도 전 세계의 바다에는 수많은 화물선과 컨테이너선, 가스선과 유조선이 떠있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이른바 한국인 선박왕으로 불리는 시도해운 권혁 회장의 것이다. 권혁 회장은 한 때 200여 척에 가까운 선단을 거느리고 있었지만 코로나 사태 등을 거치면서 선단 규모가 상당히 줄어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인 선박왕’이라는 권혁 회장의 시도 해운이 하루에 벌어들이는 돈은 어느 정도나 될까?

    뉴스타파는 먼저 공개된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현재 시도해운 관리하에 운항 중인 배들을 확인했다. 먼저 선박 발주 데이터 베이스에서 시도해운이 지금까지 발주한 배 200여 척의 리스트를 확보한 뒤, 이를 선박 추적 시스템에서 하나 하나 검색했다. 그 결과 현재까지 시도 쉬핑이 운영하고 있는 배 53척의 명단을 선별해낼 수 있었다. 시도쉬핑이 중고로 구매해 운영하고 있는 배가 있을 수 있으므로 이 53척이라는 숫자는 최소한으로 확인된 숫자다.

    확인된 53척 중 33척은 자동차 운반선이다. 권혁 회장은 원래 현대자동차 수송과 직원 출신으로 그가 오늘날의 위치에 이르기까지 가장 근간이 되었던 것은 자동차 운반선이다. 자동차 운반선의 하루 용선료는 하루 2만 5,000 달러, 즉 3,600만 원에서 11만 5,000달러, 1억 7,000만 원 사이다. (원래 선박 용선료는 비수기와 호황기의 차이가 크다.) 시도쉬핑 선박 중에는 한번에 200만 배럴의 원유를 실어나를 수 있는 초대형 유조선 (VLCC)도 3척이나 있었다. 200만 배럴이면 대한민국 전체 하루 원유 소비량의 70%나 되는 양이다. 이런 초대형 유조선의 경우 하루 용선료가 호황기 기준 30만 달러에 이르기도 한다. 초대형 유조선보다 용선료가 더 비싼 대형 가스 운반선 (VLGC)도 2척, 초대형 컨테이너선도 3척 보유하고 있었다.

    뉴스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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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타파가 배의 종류와 규모에 따른 용선료를 대입해 계산해보니, 시도해운 소속 배들이 벌어들이는 수입은 호황기 기준 하루 약 70억 원, 비수기 기준 하루 20억 원 정도로 추정됐다. 평균 45억 원으로 가정하고 1년으로 환산하면 매출이 1조 6,000억 원 가량, 국내 해운회사들의 통상적인 영업 이익률이 10~15% 정도라는 걸 감안하면 영업이익이 1,600억 원에서 2,400억 원 정도로 추정된다. 물론 이는 용선료만을 가지고 추정한 매출이기 때문에 실제로 시도해운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이보다 더 클 가능성이 있다. 뉴스타파는 권혁 회장과 시도해운 측에 정확한 매출과 영업 이익 규모에 대해 확인을 요청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

    뉴스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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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금 납부 회피… “한국 사람이 병신이라 그런 거야”
    문제는 권혁 회장과 시도 해운이 이런 막대한 수입에 대해 세금을 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서 뭐 여러 가지 회계법인이나 그 아예 자기네 회사 내에 자문팀을 두고서 탈세할 수 있는 방법을 많이 강구했었습니다. 그중에 첫 번째가 이제 국내 거주자 요건을 회피하기 위해서 국내에 머무르는 기간이 6개월이 넘으면 안 되니까 홍콩이나 일본에 체류하는 시간을 늘려서 국내에 머무르지 않게 하거나 여러 가지 방법을 다 썼어요. (두 번째로는) 법인의 이름을 자기가 소유 안 한 것처럼 하고 그 주식을 명의신탁해서 그 조세 회피 지역인 그런 곳에서 명의신탁하는 방법을 많이 썼습니다.
    - 최관순/대상중공업 (시도해운 계열사) 전 부사장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세금을 회피해 왔다는 얘기다. 권혁 회장 본인은 지난 2020년 뉴스타파 취재진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기자 : 그래도 소득이 발생하면 세금을 내야 된다는 거는 저는 기본이 돼야 된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권혁 회장 : 그거는 한국 사람이 병신이라 그런 거야. 국제적으로는요. 지금 특히, 구글하고 애플이 세금 냅니까? 안 내는 이유가 뭐냐면, 이런 텍스헤븐에 대한 이런 모든 걸 만드는 거는... 그거 누가 만들었겠어요? 미국 놈하고 영국 놈이 만든 거야. 거기서 지배계급이 큰 사업하는 사람들이 많은 돈을 벌면 세금을 절약하기 위해서 그걸 만드는 거예요. 그걸 세계 초일류적인 변호사들이 다 써가지고 했기 때문에 구글이나 그 사람들은 그런 변호사들이 제안한 걸 해가지고 그거를 국가별로 이렇게 해가지고 세금을 안 내는 거야, 따로.

    기자 : 그래서 그런 제도를 이용을 하셨기 때문에 선생님도 세금을 안 내야 된다?

    권혁 회장 : 아니. 그런 애기는 하지 마세요, 그런 식 얘기는.
    - 권혁/시도쉬핑 회장 (2020년 인터뷰)


    뉴스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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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20년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권혁 회장은 (세금을 내는 건) "한국 사람이 병신이라 그런 거"라고 말했다.


    세금을 제대로 납부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고 글로벌 기업들이 일삼는 편법적인 역외탈세를 오히려 정상적인 것으로 여기는 비뚤어진 인식이다.

    내부고발자의 등장
    권혁 회장은 현대자동차 수출관리부 수송과에서 근무하다 1993년 일본에 시도해운을 설립하며 선주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이 확장되고 배가 늘어나자 2002년에는 조세 회피처인 케이먼 아일랜드에 시도홀딩과 시도탱커홀딩스를 설립하고, 국내에도 선박 관리와 조직 관리를 위한 법인을 설립해 운영했다.

    2004년부터 2010년까지 시도해운 국내법인의 회계 책임자였던 안창용 씨에 따르면, 시도해운은 2006년 즈음부터 사업을 양성화하느냐, 아니면 역외탈세 구조를 만드느냐 하는 양자 택일의 기로에 섰다.

    일본 쪽이든 홍콩 쪽이든 그다음에 페이퍼 컴퍼니 쪽이든 이제 수익이 많아졌잖아요. 많아지니까 그 부분을 이제 어떻게.. 첫 번째 구조는 어떻게 그 부분을 관리해 나갈 거냐 방향을 잡아 나갈 거냐 이 부분이 아마 고민이 있으셨을 시기고…
    - 안창용 / 권혁 탈세 최초 제보자, 국민재산되찾기 운동본부 사무국장


    그러나 권혁 회장과 시도해운 경영진은 양성화가 아니라 역외 탈세 구조를 만들기로 선택했다.

    한진해운이나 현대상선 같은 경우 모든 게 공시가 되고 회계 감사가 이루어지고 다 되잖아요. 그리고 법인세 다 내잖아요. 소득세도 거기에 해당되는 거 다 나오고. 그걸 해야 되는데 안 하고, 대신 구조를 바꾸고 가려서 못 찾아 들어오게…. 저희가 레이어라고 그래요. 조세 피난처 a 국가 들어왔어 뭐 뭐 봤더니 또 b 국가에 누가 있어 c 국가 이걸 4번 다섯번 여섯번 치는 걸 이제 레이어 친다고 그러거든요. 이 레이어 그걸 쳤잖아요. 구조적으로. 그게 관행입니까? 그럼 다른 해운회사 선박 회사들 다 그렇게 가야 되잖아요. 그렇게 하는 데 없거든요. 하나의 나쁜 모델을 만드신 분이에요.
    - 안창용 / 권혁 탈세 최초 제보자, 국민재산되찾기 운동본부 사무국장




    안창용 씨는 시도해운을 번만큼 세금을 내는 정상적인 회사로 만들고 싶었다.

    직원들도 내가 어디에서 일하는 거라고 하는 부분은 떳떳함도 있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역외 탈세를 하는 회사의 직원들이 되면 되겠어요? 저는 이제 내부에서 역외 탈세 얘기를 딱 듣는 순간 아 이거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세금은 10%를 내든 12%를 내든 5%를 내든 7%를 내든 절세 포인트에 대한 얘기가 돼야 되는 거지, 아예 안 내는 이런 구조를 잡자? 그래서 저는 기획팀한테 노 그랬습니다. 노. 그래서 생긴 일이에요. 사실은 노를 안 했으면 저는 편하죠.
    - 안창용 / 권혁 탈세 최초 제보자, 국민재산되찾기 운동본부 사무국장


    그러나 일은 안창용 씨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안 씨는 결국 국세청과 검찰 등에 공익 제보를 하기로 결심했다. 한 군데만 제보하면 묻힐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검찰과 국세청을 포함해 무려 12곳에 고발장을 집어 넣었다.

    뉴스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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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부터 2010년까지 시도해운 국내법인의 회계 책임자였던 안창용씨. 2011년 권혁 회장의 탈세를 처음으로 내부 고발했다.


    세금 4,300억 원을 부과받다
    2011년 국세청은 안창용 씨의 제보를 바탕으로 권혁 회장과 그의 회사에 5년치 세금으로 무려 4,368억 원의 세금을 부과했다. 2006년부터 2010년 사이의 세금과 그에 따른 가산세다.

    우선 5년치 개인 종합 소득세와 가산세가 2,899억 7,000만 원 가량이다. 이는 시도해운 해외법인의 수입을 대부분 권혁 회장 개인의 소득으로 간주한 결과다. 이른바 ‘간주 배당’의 법리다. ‘간주 배당’의 법리란, 실제 배당을 받지 않았더라도 법인을 통해 이익을 얻었다면 이를 배당으로 간주하여 주주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세법상의 원칙이다. 형식상으로는 해외 페이퍼컴퍼니 법인의 돈이라 해도 실제로는 권혁 회장 개인이 마음대로 처분하거나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해외 페이퍼컴퍼니에 쌓여 있는 수익을 권혁 회장에게 배당한 것으로 간주한 것이다.

    5년치 법인세는 1,468억 5,000만 원 정도다. 홍콩에 설립된 자동차 운반 회사, 시도 카 캐리어 서비스에 대해서 따로 법인세를 매긴 결과다. 이 회사는 법적으로는 홍콩에 등기됐지만 실질적으로는 국내에서 관리되고 있는 것으로 봤다.

    정리하면, 권혁 회장에 대한 개인소득세 2,899억 7,000만 원, 시도 카 캐리어 서비스에 대한 법인세 1,468억 5,000여만 원을 합해 도합 4,368억 2,000만 원의 세금이 부과된 것이다.

    제가 공익 내부 고발한 4,500억이라는 역외 탈세는 작년 기준인데 2024년 평균 연봉 근로자 기준으로 20만 명 30만 명이 대신 내어줘야 될 엄청난 규모의 세금입니다. 즉 한 사람을 어떤 압력이든 어떤 잘못된 판단으로 이런 거를 봐주게 되면 이와 유사한 사례는 하나도 못 막을 거 아니에요 그러면 공동화 현상이 일어나죠, 사실은. 국가 인프라도 있고 시스템도 있고 대한민국의 경제 정치 활동을 다 감안해서 비즈니스가 이루어지는 건데 그 부분은 다 도외시하고 단물은 빨고 국가에다가 내는 세금에 대한 부분은 탈세를 한다 그것도 어마어마한 규모의 (세금을 내야 하는) 사람들이 다 그러면 대한민국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 안창용 / 권혁 탈세 최초 제보자, 국민재산되찾기 운동본부 사무국장


    이에 따른 형사 고소도 진행됐다. 검찰은 권혁 회장을 조세포탈과 횡령 혐의로 기소했다. 1심에서 징역 4년과 벌금 2,240억 원이 선고됐지만 2심에서는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벌금 2억 4,000여만 원으로 대폭 감형됐고 대법원에서도 이대로 확정됐다. 당시 언론들은 선박왕에 대한 봐주기 판결이라며 비판했지만 바뀐 것은 없었다.

    뉴스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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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금 부과 14년…. 아직도 안냈다.
    이렇게 권혁 씨는 형사 재판에서는 대부분의 책임을 피해갔다. 그러나 국세청이 부과한 4,368억 원대의 세금 처분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로부터 14년이 흘렀다. 44살에 공익 제보를 했던 안창용 씨는 현재 58살이 됐다. 14년 동안 그의 인생 여정은 180도 바뀌었다. 안 씨는 현재 역외 탈세 등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시민단체 ‘국민재산되찾기 운동본부’의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러나 14년이 지나도록 권혁 회장은 여전히 세금을 내지 않고 있다.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일까. 권혁 회장은 지난 14년 동안 얼마의 세금을 냈는지 묻는 뉴스타파의 질의에 “구체적인 납세 내역에 대해서는 확인해주기 어렵고, 향후 관계 법령에 따라 처리될 것”이라는 원론적인 입장만을 밝혀왔다.

    <법위의 선박왕> 연속 보도, 다음 편에서는 권혁 회장이 어떻게 14년 동안 세금을 내지 않고 버틸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4,368억 원의 세금이 얼마나 줄어들었는지 보도한다.

    뉴스타파 심인보 inbo@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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