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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8 (목)

    [기억할 오늘] 시팅 불이 버펄로 빌의 공연에 출연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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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5 시팅 불과 버펄로 빌

    한국일보

    리틀빅혼 전투의 영웅 시팅 불(왼쪽)과 서부개척시대의 쇼맨 버펄로 빌.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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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원주민 라코타족 대추장 ‘시팅 불(Sitting Bull, 1831?~ 1890.12.15)’이 1885년 6월 전설적 쇼맨 ‘버펄로 빌(본명 William F. Cody, 1846~1917)’과 4개월 계약을 맺고 빌의 ‘와일드 웨스트 쇼’에 출연했다. 그의 역할은 추장 복장으로 말을 탄 채 개막 무대에 등장해 관객의 흥을 돋우는 거였다. 불과 9년 전, 라코타-샤이엔족 연합군을 이끌고 부족 영토였던 블랙힐스를 침략한 미 제7기병대 200여 명을 전멸시킨 리틀빅혼 전투의 전설이자 ‘추장들의 추장(principal chief)’이었다. 관객들은 더러 서부 백인들의 영웅이던 조지 암스트롱 중령을 죽게 한 원흉이라며 그를 모욕했지만, 알려진 바 불은 의연했다.

    리틀빅혼 전투 직후 그는, 기병대의 대대적인 보복을 피해 아이와 여성이 다수인 부족민 수천 명을 이끌고 캐나다로 도피했다. 하지만 추격은 집요했고, 부족민들은 추위와 굶주림에 쓰러져갔다. 그는 1881년 항복을 선언하고 남은 부족민과 함께 노스다코타주 스탠딩록 보호구역에 정착했다.

    그가 쇼에 출연한 까닭은 크게 두 가지였다. 대평원 사냥부족이 황무지에서 농사에 적응하기란 무척 힘든 일이었다. 부족민은 굶주렸고, 주급 50달러(근년 기준 약 1,800달러) 출연료는 무척 큰돈이었다. 그는 그 돈으로 부족민을 부양했고, 뉴욕 등 대도시 공연 땐 거리의 아이들에게도 돈을 나누어 주곤 했다. “이렇게 풍요로운 곳에 어떻게 가난이 존재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또 하나는 보호구역을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었다. 그는 그 공연 덕에 미국 전역과 캐나다 여러 도시를 여행했다. 더욱이 빌은 유명한 버펄로 사냥꾼이자 '명예훈장'까지 받은 육군 정찰병 출신이지만 말년에는 원주민 인권운동에도 동참했던 인물이었다. 빌은 불을 존중했고 늘 “멋지고 노련한 전사”라 소개하곤 했다.
    보호구역 인디언 담당관은 4개월 뒤 그의 공연 허가를 연장해주지 않았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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