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18일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정동영 통일부 장관(왼쪽)과 조현 외교부 장관(오른쪽). 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재명 정부와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첫 대북정책 협의체 구성과 관련해, 외교부와 통일부가 명칭, 성격, 주체를 놓고 거친 샅바싸움을 하고 있다. 외교부가 정연두 외교전략정보본부장(옛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케빈 김 주한 미국대사대리를 수석대표로 한 범정부 차원의 ‘한-미 대북정책 조율 고위급 협의’를 오는 16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강행하려 하자, 통일부는 “외교부가 주도하는 대북정책 조율에는 불참하겠다”며 반발하고 있다.
14일 한-미 협의와 정부 내부 논의에 밝은 복수의 고위 관계자들은 “정 본부장과 김 대사대리가 16일 한-미 ‘대북 공조 정례 협의체’ 출범을 추진했으나, 지난 11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에서 강한 반대에 부닥쳤다”고 전했다. ‘대북 공조 정례 협의체’가 문재인 정부 때 남북 협력의 ‘검문소’ 구실을 한 ‘한-미 워킹그룹’을 연상시킨다는 우려를 여러 국무위원을 포함한 다수 참석자가 제기했다고 한다.
복수의 관계자들은 “16일 예정대로 회의를 열되 명칭과 성격을 조정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고 전했다. ‘대북 공조 정례 협의체’가 아닌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난 10월 경주 회담 결과문서(공동 팩트시트)에 담긴 다양한 한-미 협력 이행 방안 마련에 집중하는 ‘팩트시트 관련 협의체’로 조정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외교부는 국가안전보장회의 회의 다음날인 12일 “양 정상은 대북정책과 관련해 긴밀히 공조하기로 합의”했다는 팩트시트 문구를 근거로 “한·미는 정상회담 결과문서 후속 조치 논의를 위해 여러 협의를 진행 중이며, 북한 관련 협의도 이뤄질 것”이라고 언론에 알렸다. 외교부는 이 안내문(PG)에 ‘한-미 대북정책 조율 고위급 협의’라는 제목을 달았다. 국가안전보장회의 회의에서의 ‘제동·조정’에도 불구하고 ‘대북정책 조율’에 초점을 맞춘 회의체 구성을 강행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셈이다.
이에 대해 통일부 쪽은 “외교부가 추진해온 회의체의 세부 구성은 이전의 워킹그룹 대표단과 같다. 일단 가동되면 워킹그룹의 전철을 피하기 어렵다”며 “지금은 제재만 강조한 윤석열 정부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반면 외교부 당국자는 “일단 한·미가 아직 만나지도 안았는데 정례 협의체나 워킹그룹을 상정하고 있다고 하는 것은 조금 앞서나간 것”이라며 “한·미가 이제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고, 앞으로 대화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고 누가 참석할지 등은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통일부 고위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외교부가 16일 회의를 대북정책 협의체로 운영하려 한다면 통일부는 불참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앞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 10일 기자간담회에서 “한반도 정책, 남북 관계는 주권의 영역”이라며 “동맹국(미국)과 협의의 주체는 통일부”라고 강조했다. 정 장관은 11일 국가안전보장회의 회의에서도 ‘공동 팩트시트 협의는 외교부 주도, 대북정책 조율은 통일부 주도’라는 ‘이중 궤도’ 접근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한-미 ‘대북 공조’의 주된 창구는 전통적으로 외교부였던 역사를 고려하면, 통일부의 반발과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 다수 참석자의 외교부 구상에 대한 제동과 조정은 이례적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 시기 워킹그룹의 실패를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문제의식과 떼어서 보기 어렵다.
한-미 워킹그룹은 대북제재 이행과 남북 협력의 균형 잡힌 조율을 명분으로 2018년 11월20일 미국 워싱턴에서 고위급 상시 협의체로 첫발을 뗐다. 그러나 명분과 달리 미국의 남북 협력 ‘통제장치’로 기능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2019년 1월 독감 치료제인 ‘타미플루’ 대북 지원과 관련해 운송 수단인 트럭이 제재 대상이라고 물고 늘어져, 군사분계선 북쪽에서 며칠째 기다리던 북쪽 관계자들의 발길을 돌려 세워 무산시킨 사례가 대표적이다. 남북 정상 합의의 이행 시도가 워킹그룹에 막혀 번번이 무산되자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은 2020년 6월17일 담화로 워킹그룹을 “남측이 스스로 제 목에 걸어놓은 친미사대의 올가미”라 비판했다.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은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과 관료들의 대북 접근이 다른데다 국장급인 주한대사대리의 위상 등을 고려하면 지금 범부처 차원의 정례적 대북 공조 협의체 구성은 득보다 실이 클 위험이 높다”고 지적했다.
반면 외교부는 대북정책과 관련한 외교 논의는 외교부의 역할이고, 대북정책 관련 외교를 총괄하는 외교전략정보본부장이 미국과 대북정책을 논의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입장이다. 대북정책은 통일부가 전담하고, 외교부는 팩트시트의 나머지 내용과 관련한 협의만 하라는 통일부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미 워킹그룹의 제재 강화 때문에 남북 관계가 제대로 진전되지 못했던 때와 지금의 정세가 다르다는 지적도 있다. 2017~2018년에는 남북 간 정상회담 등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현재는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를 주장하면서 남북 대화가 완전히 막힌 상황이다.
이제훈 박민희 선임기자 nomad@hani.co.kr
[끝나지 않은 심판] 내란오적, 최악의 빌런 뽑기 ▶
내란 종식 그날까지, 다시 빛의 혁명 ▶스토리 보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