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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2 (월)

    [문태준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 [101]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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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있다

    평생토록 지은 집이

    못마땅해 부숴 버렸더니

    비로소 마음에 드는 집이 생겼다

    이제 내 안에 집이 있으니

    바깥엔 집이 없어도 되겠다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도록

    사방팔방으로 뚫려 있는 집

    정신의 뼈대만 앙상한 집이

    없으니까 있다

    -김선태(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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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일러스트=이진영


    어느덧 한 해가 저물어간다. 돌아보니 한 해를 사는 동안 한 채의, 시간의 집을 지었고, 그 집에 뭔가를, 살림에 쓰는 온갖 물건들을 가득가득 채우려 애쓰면서 살았다. 마음을 돌보지 않은 채. 더 견고한 벽을 세우고, 꼭꼭 문(門)을 걸어 잠근 채. 못마땅한 게 없을 수 없다. 더군다나 이 시를 읽고 있으니 내가 지은 한 채의 집이 버려두어서 낡아 빠진 집이 된 것만 같다.

    “사방팔방으로 뚫려 있는 집”은 어떤 집일까. 이 집은 마음의 집을 일컫는 것이니, 마음을 갖되 모든 방면으로 열려 있는 듯 경계와 구별을 두지 않아 흔쾌하게 받아들인다는 뜻일 테다. 박하지 않고, 돕고 보살펴 주고, 내 잘못은 용서를 빌고 남의 허물은 덮어 주기도 한다는 의미일 테다.

    새해에는 어떤 집을 짓고 살 것인가. 김선태 시인은 시 ‘해안선’에서 “자연의 길은 구불구불해서/ 앞만 보며 내달릴 수 없다// 생각을 유연하게 구부려야/ 몸과 마음도 해안선이 된다”고 노래했다. 해안선의 성품을 닮은 마음의 집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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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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