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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2 (월)

    [朝鮮칼럼] 서해 해양주권 수호, 골든타임 놓칠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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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서해 공정’

    묵인하면 서해 70%

    실효적 지배 주장할 것

    정부는 왜 침묵하나

    행동 나설 의지 없다면

    원자력잠수함 무슨 소용

    조선일보

    1월 한·중이 공동 관리하는 서해에 중국이 설치한 직경 70m, 높이 71m의 구조물 ‘셴란 2호’. 중국이 향후 이 구조물을 근거로 서해가 중국 소유임을 주장할 가능성이 있다. /신화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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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은 1970년대부터 남중국해 전체의 90%에 이르는 광대한 해역에 대해 배타적 소유권을 주장해 왔다. 2016년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패소 판결에도 아랑곳없이, 중국은 군사적 강점을 앞세워 그것을 기정사실로 만들기에 혈안이다. 중국이 소유권을 주장하는 남중국해는 한반도의 15배, 지중해의 1.5배에 해당하는 광활한 바다다. 중국의 최남단 영토인 하이난섬에서 무려 1800㎞ 떨어진 보르네오섬 앞바다에 이르는 공해 지역에 대한 중국의 소유권 주장은 한마디로 황당하다. 마치 이탈리아가 과거 로마제국의 지중해 지배를 구실로 지중해 전체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격이다.

    중국은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74년 베트남 보유 서사군도(파라셀군도)를 무력으로 탈취했고, 1988년 베트남군과 교전 끝에 남사군도의 베트남 보유 존슨 암초를 점령해 최초의 남사군도 군사 거점을 마련했다. 이어 1995년 필리핀 경제수역 내의 미스치프 암초를 점령했고, 2012년 필리핀 해군과 대치 끝에 스카버러 암초까지 점령하며 실효적 지배를 주장했다. 중국의 이 같은 움직임은 2012년 말 시진핑 체제 출범 후 더욱 노골화되었다. 중국은 2013년부터 3년간 남중국해 7개 암초에 군사공항, 항만, 레이더 기지와 미사일 기지를 건설한 이래 30여 인공섬을 건설하는 등 역내 불법 점유를 확대 중이다.

    중국의 ‘해양 공정’은 이에 그치지 않고 동중국해에서도 센카쿠 열도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강화 중이며, 이어도를 포함하는 방공식별구역을 일방적으로 설정해 기존 질서를 흔들었다. 그리고 이제 그 대상 수역이 점차 북상해 한반도 서해를 지배하기 위한 ‘서해 공정’의 막이 올랐다. 중국은 한·중 경제수역이 중첩되는 잠정조치수역(PMZ)에 2014년부터 관측용 부표를 설치하기 시작했고, 2018년 ‘민간 양식 시설’이라는 구실로 대형 부유식 구조물을 만든 이래 추가 구조물들을 설치 중이다. 2023년부터는 그 지역에서 해군 훈련과 해경 순찰을 강화하면서 한국 해경선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다.

    서해에서 진행되는 중국의 이런 움직임은 남중국해 불법점거 선례와 거의 동일한 수순을 밟고 있다. 어업시설이나 과학시설이라는 명분으로 부표와 관측장비를 설치한 후 장기 주둔과 접근 차단을 통해 실효적 지배를 굳힌 후 궁극적으로 인근 수역을 배타적으로 지배하고 군사시설로 전환하는 상투적 수법의 반복이다. 중국이 베트남에게서 탈취한 존스 암초나 필리핀에게서 탈취한 미스치프 암초, 스카보러 암초 역시 같은 수순을 밟아 왔다.

    그런데 서해 해양주권 문제에 있어 중국의 불법구조물 설치보다 더 근본적이고 심각한 사안이 있다. 중국 군부는 시진핑 체제 출범 직후인 2013년 초부터 국제법적 근거 없이 동경 124도를 ‘작전 경계선’으로 설정하고 한국 해군 함정의 진입과 훈련을 차단하고 있다. 중국이 일방적으로 설정하고 강요해 온 동경 124도 선은 한·중 잠정조치 수역에서 한국 쪽으로 크게 치우쳐 있어, 이대로라면 서해의 약 70%가 중국 관할수역이 된다. 중국은 그 수역을 자국 해군의 배타적 작전 수역으로 독점하려는 의도여서, 해양 주권 수호를 위한 국가적 대응이 시급한 상황이다.

    조선일보

    중국이 서해 잠정조치수역(PMZ) 안팎에 설치한 구조물 /그래픽=양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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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움직임보다 더 우려스러운 건 우리의 대응 자세다. 한국 정부는 이 지역에서 우리 해군 함정의 정당한 진입 권리를 주장하면서도, 외교적 부담과 우발적 충돌 가능성을 이유로 해당 수역 진입과 해상 훈련을 극도로 자제해 왔다. 이는 ‘원만한 대중국 관계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전략적 관점에서 매우 안일하고 무책임한 선택이었다. 해양 주권은 법적 권리 선언만으로 지켜질 수 없다. 자발적 권리 불행사와 침묵은 서해 70% 지역에 대한 중국의 실효적 지배를 고착시킬 뿐이다.

    서해는 수도권과 직결된 전략 공간이며, 우리 국가 안보의 핵심 해역이다. 만일 문제 해결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중국의 서해 지배가 관행으로 정착되는 단계에 이르면, 군사적 충돌 없이 이를 원상회복하는 건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중요한 건 우리의 합법적 해양주권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수호하는 일관되고 의연한 해군 활동이다. 자제는 필요하지만, 상대의 불법적 실효적 지배를 묵인하는 수준의 자제는 정당화될 수 없다. 해양주권 수호를 위해 행동에 나설 의지가 없다면 원자력추진잠수함은 만들어 어디에 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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