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고생 독서량도 성인의 9배, 기성세대의 흑백논리가 문제
공대 진학하는 영재 많다… 의대 탓 말고 그들 품을 수 있어야
그래픽=양인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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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2023년 실시한 제4차 성인 문해 능력 조사에 따르면 일상에 필요한 문해력을 갖춘 비율은 18~29세는 97.3%였지만 50대 90.9%, 60대 76.2%, 70대 47.2%로 세대가 올라갈수록 급격히 떨어진다. 외국 기관의 평가도 같은 결과를 보여준다. 2024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제성인 역량 조사(PIAAC)에서 우리나라 성인의 언어 능력은 OECD 평균에 못 미치지만, 16~24세는 OECD 평균을 넘어선다. 아이들은 더 뛰어나다. 2022년 OECD가 81개국 15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우리나라는 읽기 영역에서 세계 4위로 최상위권이었다.
문해력에 대한 오해는 요즘 아이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편견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것 역시 사실과 다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실시한 2023년 국민 독서 실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초중고생들의 종합 독서율은 95.8%다. 종합 독서율이란 교과서, 학습 참고서, 수험서, 잡지, 만화를 제외하고 1년간 일반 도서를 1권 이상 읽은 비율을 뜻한다. 그런데 이 비율은 세대가 올라갈수록 현격히 감소한다. 그나마 20대가 가장 높은 74.5%였고, 30대 68.0%, 40대 47.9%, 60세 이상은 15.7%를 기록했다. 성인 10명 중 6명은 1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다. 그래서 성인들의 연간 종합 독서량은 3.9권이지만, 초중고생은 무려 36.0권이다.
그런데도 어른들은 여전히 아이들이 자신들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거꾸로 기성세대가 아이들도 이해하는 정보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해서 그럴 가능성이 크다. 얼마 전 중국이 토륨 용융염(溶融鹽) 원자로에 성공했다는 소식에 우리 일부 언론은 뉴스 머리말에 물 대신 소금을 사용했다는 어처구니없는 제목을 달았다. 그런데 산과 염기의 반응으로 생기는 물질을 ‘염(鹽)’이라 부른다는 것은 중학교 교과 과정이다. 해외 언론이 사용한 ‘salt(염)’를 ‘소금’으로 번역해 벌어진 실수였겠지만, 그렇다고 ‘right’를 번역하면서 언론들이 ‘옳은’과 ‘오른(쪽)’을 헷갈리진 않았을 것 같다.
영어 salt에는 '소금' 외에도 '염'이라는 뜻이 있다. 산과 염기의 반응으로 생기는 물질을 '염'이라고 부른다. /네이버 사전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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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정도 상황이면 책도 안 읽고 문해력도 낮은 기성세대가 후속 세대에게 뭘 가르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지금 학생들은 어른들이 살던 시대와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자라고 있다. 요즘 아이들이 어떤지 보고 싶다면 서울 시립 과학관이 주최하는 ‘메이커 페어(Maker Faire)’에 가보자. 아두이노(오픈소스 전자 플랫폼)로 제어 기판을 만드는 아이도 있고, 직접 만든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 발전기를 설명하는 아이도 있다. 지방이라고 다르지 않다. 서귀포 아이들도 실리콘밸리 아이들과 똑같은 유튜브를 보고 자란다. 일본의 소행성 탐사선 하야부사가 사용한 이온빔 추진 엔진을 얘기하는 열 살 아이도 있다.
지난여름 ‘공대에 미친 중국, 의대에 미친 한국’ 방송을 보고 많은 사람이 우리 현실을 우려했지만, 우리에겐 여전히 공대에 진학하는 영재가 많다. 그러나 이조차 제대로 길러내지 못하고 있는 점이 더 심각하다. 얼마 전 어느 공대생이 올린 11시간 24분짜리 유튜브가 큰 화제를 모았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증명을 고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한다는 내용이다. 1637년 대수학자 페르마가 던진 이 문제는 무려 358년간 수학자들을 괴롭히다가 지난 1995년에야 풀렸다. 이러니 고등학생이 이해한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반응들이 이어졌다. 그들 상당수가 대학 교수였다.
그런데 이 동영상을 많이 공유한 세대는 의외로 중고등학생이다. 응원과 격려의 답글이 계속 이어졌다. 그러다 유독 긴 댓글 하나가 돋보였다. 시간별로 동영상 내용을 요약해 가고 보충 설명도 붙이며 무려 11시간을 따라간다. 그리고 이렇게 마무리했다. “저는 현재 고등학생입니다. 고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제가 보증합니다.” 의대를 탓하기 전에 제 발로 찾아오는 영재조차 제대로 품지 못하는 어른들이 부끄러워해야 한다. 초중고는 스마트 패드로 배우지만, 우리 대학은 수십 년 전에 사용하던 공학용 계산기를 아직도 사용한다.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문해력이 낮은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세상을 단순화시키고 흑백논리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이다. 아마도 이런 고집들이 사회를 분열시키며 어린 재목들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것인지 모른다. 천재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어린 시절의 끔찍한 경험 때문에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한국에 오기 싫다는 인터뷰를 보고 가슴을 저민다. 우리에게는 늘 영재가 있었고, 지금도 소중한 아이들이 곳곳에서 꿈을 펼치고 있을 것이다. 차라리 안목이 없다면, 눈과 귀를 열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문화라도 만들어야 한다. 더 절실한 것은 미래 세대가 마음껏 생각을 펼칠 수 있도록 그들을 보듬어 안는 포용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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