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가 신경 쓰는 부분이 이 대목이다. 독특하면서도 보편적 공감을 줄 수 있는 요건을 갖춘 문화재가 세계문화유산이 된다는 것 아닌가. 이런 맥락에서 ‘환단고기’는 나에게 엄청난 콘텐츠의 원석(原石)으로 다가온다.
역사학자가 아닌 채담가, 즉 ‘콘텐츠 크리에이터’의 입장에서는 진짜냐 가짜냐의 문제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영양가가 있느냐 없느냐가 더 중요하다. 21세기 세계 문화 산업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콘텐츠 시장에서 세계인에게 어필할 수 있는지만 신경 쓰면 된다.
애니메이션 영화 ‘K팝 데몬 헌터스’가 한국의 무속적 세계관을 K팝 콘텐츠로 승화시켜 세계적으로 성공한 사례가 아니던가. 무당 이야기가 이렇게 흥행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국뽕’이라 해도 좋다. 물론 ‘환단고기’에 대해서는 언제까지나 이야깃거리로서 가치를 말하는 것일 뿐 이것이 정사(正史)라는 건 아니다.
문제는 상상력이다. 상상력은 아무나 갖는 게 아니다. 천재들이 갖는 것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K컬처’라는 독특한 문화 현상을 지탱해 주면서 한국적인 철학과 사상적 해석을 가미시킬 수 있는 콘텐츠를 ‘환단고기’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독자적이면서 보편적인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그런 철학이 우리에게 있는가? 이 문제에 대하여 필자에게 교시(敎示)를 준 인물이 이기동(74) 선생이다. 성균관대 유교문화연구소장과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평생 유교와 노장철학을 전공했으면서도 몇 년 전에 ‘환단고기’ 해설서를 펴냈다는 점이 이채로웠다.
“환단고기에는 3분법이 있어요. 몸과 마음만 보는 게 아니죠. 그 둘 사이에 ‘기(氣)’라고 하는 영역을 설정하죠. 마음이 바로 몸을 움직이는 게 아닙니다. 마음이 먼저 기를 움직이고, 기가 그다음에 몸을 움직이죠. 氣가 중간 역할을 하면 정오에 밤의 기운이 들어가고, 자정에 낮의 기운이 들어갑니다. 음중양(陰中陽), 양중음(陽中陰)이죠. 이것이 태극기의 원리입니다. 보수 속에 진보의 기가 들어가고, 진보 속에 보수의 기가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너와 내가 완전히 다른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말의 습관은 ‘내 집에 가자’고 하기보다는 ‘우리 집에 가자’고 한다는 것이다. ‘내 어머니’라고 하기보다는 ‘우리 어머니’라고 말한다. ‘우리 철학’이 한국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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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 동양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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