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폴리네시아 모루로아 환초에서 벌인 프랑스의 핵실험으로 버섯구름이 솟아오르는 모습. /게티이미지코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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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최근 발표한 국가안보전략(NSS)에서 북핵을 아예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과 일본을 향해 ‘새로운 능력(new capabilities)’을 갖추라는 대목이 나온다. 미 워싱턴에선 ‘한국 핵무장 용인론’이 흘러나온다고 한다. “북한도 가지는 핵을 동맹국인 한국은 왜 못 가지냐”(해리 카지아니스 ‘내셔널 시큐리티 저널’ 회장)는 논리다. 미국이 동아시아 핵확산을 용인한다면 한국보다는 일본을 택할 것이라는 시각이 과거부터 지배적이었다. 그랬던 미국이 지난 10월 한국의 원자력추진잠수함 건조를 승인했고 이번엔 ‘새로운 능력’을 촉구한 것이다.
1960년 세계 네 번째로 핵실험에 성공한 프랑스는 유럽연합(EU) 유일 핵보유국이다. 얼마 전 프랑스 핵억지 전략 권위자인 브뤼노 테르트레 전략연구재단(FRS) 부소장을 만나 워싱턴의 기류 변화를 언급하며 “한국의 핵무장 가능성이 있느냐”고 물었다. “핵무기를 가지면 이득도 있지만 대가도 따른다”는 대답에 여운이 있었다. 2대에 걸쳐 노벨상을 다섯 번 받은 퀴리 집안 사람들은 원자력 연구 도중 방사능에 피폭돼 목숨을 바쳐야 했다. 1930년대부터 핵분열 현상을 연구한 프랑스 과학계는 앵글로색슨 국가인 미국·영국·캐나다의 집중 견제를 받았고, ‘맨해튼 프로젝트’에서도 따돌림을 받다시피 했다.
이에 독자적 핵 개발을 결단한 샤를 드골은 미국에 “파리를 지키기 위해 뉴욕을 희생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유엔이 프랑스 핵 개발 반대 결의안까지 통과시켰지만, 프랑스는 좌우가 단결해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탈퇴라는 초강수까지 뒀다. 테르트레는 “한국의 핵무장 언급은 미국에 ‘우릴 안심시켜 달라’고 보내는 신호”라며 “한국인들에게 핵 개발에 따른 국제 제재를 말하면 놀란다”고도 했다. 한마디로 현재 한국의 핵 개발 논의엔 진심도 결의도 없다는 말이었다. 오늘날 ‘뉴욕과 바꿀 수 없는 파리’를 지키는 프랑스의 핵무기가 어떤 대가를 치르고 개발됐는지 아느냐는 투로 들렸다.
핵을 쥐고 러시아·중국 정상과 어깨를 나란히 한 북한 김정은은 러시아 드론 공장에 1만명을 파견한다고 한다. 이런 와중에 한미 핵 협의에선 ‘북핵’ 표현이 사라졌다. 좌파 진영에선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평화롭게 지내자”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전범국’이라고 손가락질하던 일본에선 “우리도 핵을 가져야 한다”는 총리실 발언이 나왔다. 어느 날 북한이 극초음속 다탄두 탄도 미사일로 미 본토와 한국을 동시에 겨누는 상황이 온다면 미국의 선택은 어떨까? 뉴욕은 고사하고 본토의 작은 마을 하나라도 서울과 바꿀 생각이 있을까?
“우리는 세계를 떠받치는 아틀라스가 아니다.” 미국은 이미 정답을 내놨는데, 한국 정치권엔 ‘뉴욕과 바꿀 수 없는 서울’을 지키기 위한 어떤 진심과 결의가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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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원선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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