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흐름으로 중국은 대규모 내수 시장을 발판으로 글로벌 ESS 물량을 빠르게 늘리고 있는 반면, 한국 배터리 업계는 재무 건전성과 운영 효율을 앞세운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속도 조절에 나서고 있다. EV 이후를 가를 제2의 축으로 ESS가 부상한 가운데, 한·중 배터리 전략의 대비가 뚜렷해지고 있다.
26일 로이터통신은 올해 중국 기업들의 ESS용 리튬이온 셀 글로벌 출하량이 약 75% 증가할 것으로 추산되며 ESS 및 EV 배터리 수출액은 650억달러를 넘어섰다고 전했다.
중국은 지난 6월 전력시장을 고정 가격제에서 시장 기반 경매제로 개편했다. 전력가격이 낮을 때 충전하고 가격이 높을 때 방전하는 에너지 시세차익 거래가 가능해지면서, 3분기 중국 ESS 발전소의 가동 시간은 전년 대비 25% 이상 급증했다.
정책 드라이브도 겹쳤다. 중국은 이미 글로벌 최대 규모의 ESS 설비를 보유(약 40%)하고 있으며 풍력·태양광 프로젝트에 ESS를 붙이도록 하는 지방정부의 요구가 시장을 키웠다. 여기에 2027년까지 용량을 거의 두 배 늘리기 위한 350억달러 규모 계획, 일부 성의 용량요금 도입 등이 더해져 ESS 설비 투자가 의무와 더불어 수익 구조로 굳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컨설팅사 인포링크는 글로벌 ESS 셀 출하량이 내년 800GWh(기가와트시)까지 증가(올해 전망치 대비 33~43% 증가)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시장 전망도 상향 중이다. 금융서비스 기업 UBS는 지난달 2026년 글로벌 ESS 설비 설치 전망치를 25% 상향 조정하기도 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역시 올해 글로벌 ESS 설비 투자액은 16% 증가한 66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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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배터리는 '체력 키우기' 전략
국내 배터리 업계는 내실을 다지며 생존을 위한 '선택과 집중' 전략을 택했다. EV 수요 둔화가 예상보다 길어지고 미국·유럽 정책 환경도 불확실해지면서 무리한 증설보다 재무 안정과 현금흐름 관리를 우선 과제로 채택한 것이다.
업계에서는 내년 배터리 3사의 설비투자(CAPEX)가 올해 대비 40~50%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지난 수년간 이어진 대규모 해외 공장 건설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영향이 크다. LG에너지솔루션은 1~3분기 누적 투자액이 전년 대비 14% 감소했으며 향후 2~3년간 투자 규모를 줄일 방침이다. SK온 역시 내년 설비투자액을 올해의 50% 수준으로 감축해 재무 건전성을 회복한다는 계획이며, 삼성SDI도 전년 대비 절반 이상 투자액을 감축하며 내실을 기하고 있다.
장밋빛 성장이었던 EV 수요 성장 경로가 흔들리면서 투자 전략 전반을 재점검하는 국면에 들어섰다는 해석이 나온다.
LG에너지솔루션은 최근 가장 적극적으로 사업 구조를 조정했다. 미국 GM과의 합작법인 얼티엄셀즈 3공장을 인수한 데 이어, 일본 혼다와의 북미 합작사 지분을 매각했고 포드와의 9조원대 대규모 배터리 공급 계약도 파기됐다. 이는 EV 수요가 당초 기대에 못 미치는 상황에서 고정비 부담을 줄이고 재원을 확보해 '혹한기'를 넘기기 위한 선택으로 해석된다.
다만 LG에너지솔루션은 ESS를 차세대 성장축으로 보고 배터리 업체 중 가장 먼저 시장에 뛰어 들었다. 미국 미시간 공장을 LFP 기반 ESS 전용 라인으로 전환하고, 중국 난징 공장의 LFP 생산 라인도 ESS용으로 신속히 돌려 북미와 유럽 AI 데이터센터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신규 증설보다는 기존 설비 전환을 통해 투자액은 절감하면서 EV 중심 구조에서 ESS를 병행하는 완충 장치를 마련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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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온은 포드와의 합작법인 블루오벌SK를 백지화하고 공장을 분리 운영하기로 하면서 전략 전환을 공식화했다. 켄터키 1·2공장은 포드가, 테네시 공장은 SK온이 각각 운영하는 구조다. 이는 수요 불확실성 속에서 합작 구조의 부담을 줄이고 독자적인 고객 확보에 나서겠다는 판단으로 풀이된다.
향후 테네시·조지아 공장을 중심으로 EV 외에 ESS 물량을 유치하며 제품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한다는 방침이다. ESS 역시 신규 라인 증설보다는 기존 라인 전환을 통해 대응하는 전략이다.
삼성SDI는 비교적 보수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미국 인디애나 코코모에서 스텔란티스와 건설 중인 합작공장, GM과의 합작 프로젝트는 계획대로 진행하되 본격 가동 시점은 2027년 이후로 잡아 시장 상황을 지켜보는 전략이다. 헝가리 괴드 공장 증설 역시 중장기 대응 성격이 강하다.
삼성SDI는 프리미엄 EV 배터리 중심 전략을 취하면서도 ESS를 중요 축으로 보고 있다. 에너지밀도를 극대화한 'SBB(삼성 배터리 박스)'를 고도화하고 있으며 국내 1차 ESS 중앙계약시장에서 대규모 물량을 확보하며 고부가가치 시장에서의 입지를 굳히기도 했다.
"선택과 집중 전략에도 '초격차 기술력' 바탕돼야"
글로벌 ESS 시장 규모는 2025년 약 349억 달러에서 2030년 이후에는 테라와트시(TWh) 시대로 진입할 전망이다. 특히 미국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중국산 ESS 배터리에 대한 관세를 대폭 인상하기로 하면서 한국 기업들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 기업들이 중국의 저가 공세에 맞서기 위해선 강점인 초격차 기술력 확보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신영준 가천대 화학생명배터리공학부 석좌교수는 'KABC 2025'에서 "한국 배터리 업체들이 R&D(연구개발)에 더 많은 투자를 해 기술력을 확보해야 글로벌 시장 경쟁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물량으로 밀어붙이지만 한국은 독보적 기술력으로 밀어붙이는 것"이라며 "2026년은 EV 중심의 포트폴리오에서 벗어나 ESS라는 제2의 성장축을 얼마나 단단하게 구축했는지 증명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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