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5일치 한겨레 온라인 기사 원제목(사진 위)과 올해 9월 말 변경한 제목. 한겨레는 12월28일 해당 제목을 원상 복구했다. |
한겨레를 비롯해 에스비에스(SBS)·와이티엔(YTN)·연합뉴스 등 주요 언론사들이 4년 전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아들의 음주운전 사고 온라인 기사와 관련해 제목에서 정 회장 이름 등을 빼거나 기사를 아예 삭제한 것으로 드러나 ‘편집권 침해’ 논란을 빚고 있다. 한겨레는 기사 제목 변경에 대해 독자에게 사과하고 이를 원상 복구했다.
한겨레가 지난 2021년 7월 정의선 회장 아들이 혈중 알콜농도 0.165% 만취 상태에서 운전하다 사고를 낸 사건 관련 기사 두 건의 온라인 제목에서 정의선 회장 이름을 빼고 ‘장남’을 ‘자녀’로 지난 9월 말 변경한 사실이 있다고 28일 밝혔다. 한겨레는 ‘정의선 현대차 회장 장남 면허취소 수준 음주운전 뒤늦게 드러나’(2021년 8월12일치)를 ‘현대차 회장 자녀 면허취소 수준 음주운전 뒤늦게 드러나’로, ‘정의선 현대차 회장 장남 음주운전 사고 벌금 900만원’(″ 10월5일치)을 ‘현대차 회장 자녀 ‘음주운전 사고’ 벌금 900만원’으로 현장 기자·데스크와 상의 없이 변경했다. 한겨레는 이날 문제의 기사 제목을 원상 복구했다.
이와 관련 이주현 한겨레 뉴스룸국장은 이날 오전 편집회의에서 “현대차의 기사 삭제 요청을 광고담당 임원이 거절하자, 현대차에서 거듭 기사 제목 및 본문 수정이 가능한지 문의해왔다”며 “편집인으로부터 이런 내용을 전달받고 본문은 손대지 않되 (온라인) 제목만 수정하기로 하고 ‘정의선’ 이름을 빼고 ‘장남’을 ‘자녀’로 바꿨다”고 밝혔다. 이어 “당시엔 현대차 회장이 누군지 알 수 있고, 아들이 한명뿐이어서 특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좀 더 신중하게 판단하는 게 옳았다”며 “독자들께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앞서 에스비에스와 와이티엔도 정 회장 아들 음주운전 사고 관련 온라인 기사 각각 3건, 2건을 기자와 아무런 논의 없이 지난 9월 아예 삭제했던 것으로 최근 확인돼 내부 반발을 샀다. 역시 현대차 쪽의 부탁으로 이뤄진 일이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 에스비에스본부는 지난 23일 성명을 내어 “‘권력과 자본을 비롯한 모든 부당한 외압으로부터 독립한다’는 에스비에스 보도 준칙은 처참히 짓밟혔다”고 비판했다. 에스비에스와 와이티엔은 노조의 문제 제기 뒤 해당 기사를 원상 복구했다.
국가기간뉴스통신사인 연합뉴스도 비슷한 시기 정 회장 아들 사고 관련 온라인 기사의 제목과 기사 본문에서 현대차와 정 회장 이름을 뺐다가 노조 반발에 재수정했다. 언론노조 연합뉴스지부는 지난 26일 성명에서 “외부 이해관계자의 부당한 요구로부터 편집권을 독립적으로 행사해야 한다는 편집규약의 기본 정신과 단체협약, 윤리헌장이 규정한 공정보도의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한 행위”라며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언론노조 한겨레지부는 28일 “대기업 민원을 들어주려 한겨레 저널리즘을 훼손하는 결정이 현장 기자, 데스크와 소통 없이 경영과 편집 책임자들의 독단으로 이뤄진 사태에 참담함을 느낀다”며 “한겨레 노조는 편집국장을 비롯해 편집인과 광고사업본부장, 대표이사 등이 이번 결정에 어떻게 연루됐는지 명명백백하게 밝히고 상응하는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한편, 언론노조는 이런 일이 일부 언론사에 국한되지 않았을 것으로 보고 산하 본부·지부 언론사를 상대로 조사를 벌이고 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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