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권씨, 전국 다니며 맛집 3000여곳 탐방
음식 책, 다큐 참여···유퀴즈에 ‘미식가’로 출연
“초반엔 혼자 다니며 대충 때우며 먹다가
소중한 한끼, 나에게 선물하듯 먹자 다짐
조율사와 요리사, ‘상대와 교감’ 측면 비슷”
전국 출장을 다니며 소박한 맛집에 대한 글을 써온 피아노 조율사 조영권씨가 27일 서울 종로구 통인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성동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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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목적지는 김제다. 찾아갈 곳은 팥칼국수를 파는 ‘미원분식’. 적당히 단 맛이 나는 걸쭉한 팥물에 굵은 국수를 넣은 팥칼국수가 입속에 착착 달라붙는 느낌은 요즘처럼 추운 겨울이면 견딜 수 없이 생각난다. 이른 아침 집을 나선다. 인천 터미널에서 김제행 직통 버스가 폐선돼 어쩔 수 없이 익산을 경유해야 한다. 애매하고 번거롭지만 뭐 어떤가. 배차간격을 확인한 뒤 막간을 이용해 익산 ‘영미분식’에 잠시 들른다. 42년 역사를 가진 만두 맛집에서 만두 1인분을 주문한다….
이런 삶 왠지 좀 부럽다. 주인공은 올해 32년차 피아노 조율사 조영권씨다. 전국 곳곳 피아노가 있는 곳이 그의 일터다. 조율하느라 찾았던 지역에서 들렀던 온갖 맛집 정보를 그는 머릿속에 드르륵 꿰고 있다. 맛 좀 안다는 ‘푸디’들 사이에 알려진 숨은 고수. 2010년부터 출장지와 그날 먹은 음식을 일기처럼 꾸준히 올린 그의 블로그 ‘퍄노조율사’에는 3000개에 이르는 맛집 정보가 쌓여있다. 파인다이닝도, ‘인스타그래머블’한 식당도 아니다. 분식점, 국숫집, 중국집, 백반집, 기사식당 등 시장통, 골목길 속에 있는, 몇천원짜리 메뉴를 파는 소박하고 혼밥하기 좋은 식당들이다. 아끼는 곳들을 추려 <중국집>(2018년), <경양식집에서>(2021년)에 이어 최근엔 국숫집을 모은 <국수의 맛>을 냈다. 담백하고 진솔한 글맛. 행간에선 음식에 관한 만만찮은 내공과 통찰이 읽힌다. 전문 조리사도, 음식 평론가도, 관련업계 종사자가 아닌데도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짜장면랩소디> 자문에 참여했다. 28일 방송되는 예능프로그램 <유퀴즈 온더블럭>에도 ‘미식가’로 출연한다.
“초창기 몇년간은 대충 때우듯 먹었어요. 곳곳을 다니며 일하고 이동하며 혼자 밥을 먹어야 하니까요. 그러다 어느날 문득 깨달았지요. 쉼과 위로가 되는 이 소중한 한끼를 매일 나에게 선물하자고. 기왕 먹는 거 맛있게 먹자고요. 그렇게 관심을 갖고 찾게 됐어요. ‘오늘은 뭘 먹지?’ 하고요”
지난 27일 서울 종로구 통인시장에서 만난 그에게 덮어놓고 물었다. 블로그나 SNS 의존하지 않고 맛집 찾는 법이 궁금하다고.
“평범해요. 지인들에게 조언을 받기도 하고 현지 택시기사님이나 부동산에 가서 물어봐요. 보통은 새로 생긴 곳 보다 노포(오래된 식당)를 찾아요. 시간을 버틴만큼 검증된 곳이니까요. 지방에 가면 간혹 간판에 전화번호 국번이 2자리로 적혀 있는 곳이 있어요. 그만큼 오래됐다는 표시지요. 훼손된 간판을 수리한 흔적이 있는 곳들도 그렇고요.”
-혼자 가면 메뉴 선택에 특히 신중해야 하잖아요.
“사람들이 뭘 많이 먹는지 대충 둘러보죠. 차림표를 보기도 하고요. 첫번째로 나와 있는걸 시키면 대체로 실패가 없어요. 예전에 어떤 중국집을 갔는데 짜장면이 제일 먼저 쓰여 있기 마련인데 그집은 비빔짬뽕이 있더라고요. 사장님이 제일 자신있어하는 메뉴인 셈이죠.”
-책을 보면 국수가 생각보다 지역색이 강한게 의외였어요.
“흔하고 누구나 쉽게 먹는 음식이잖아요. 그러니 그 지역에서 많이 나는 것으로 하는게 자연스럽죠. 팥칼국수는 전라도에만 있어요. 전라도에서 팥이 많이 나거든요. 반대로 콩이 많이 나는 경상도에선 국수 만들때 밀가루하고 콩가루를 섞어요. 회국수, 재첩국수 등도 특정 지역에서 먹을 수 있는 메뉴들이지요.”
-좋아하지만 책에 소개하지 못한 국숫집도 궁금한데요.
“상대적으로 블로그나 SNS에 많이 소개되지 않은, 입소문이 덜 난 곳으로 추렸어요.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알만한 곳은 뺐고요. 예를 들면 서초동에 있는 ‘신숙’이라던가.”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 하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았던 그가 조율사를 직업으로 택하게 된 것은 고교시절 교회에서 봤던 조율사의 피아노 조율 장면이 잊혀지지 않아서다. 청소년기에 피아노를 배웠기 때문에 낯설지 않았고 전문적인 기술을 갖고 전국을 자유롭게 다니는 것도 좋았다. 조율을 하며 늘 깨닫고 새기는 것은 상대의 니즈를 파악해 그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점이다.
“표준적인 소리가 있는데 그게 정답은 아니더군요. 피아노를 치는 사람의 취향과 선호하는 스타일이 있는데 그걸 잘 파악하는게 중요해요. 예전에 한 유명 피아니스트의 의뢰를 받았는데 제 상식과는 다른 소리를 요구를 하셨어요. 아무리 들어봐도 불협화음인데. 그분 CD를 수십번 들으며 의도를 파악하려 노력했는데 나중에야 투박하고 낡은 질감으로 연주하고 싶어하는 의도를 이해하게 됐지요.”
-조율사와 요리사가 굉장히 비슷하게 느껴지는 대목인데요.
“비슷하죠. 상대의 취향과 기호를 파악해서 맞춰주는 일이잖아요. <흑백요리사>같은 프로그램을 봐도 그래요. 내 주관대로 음식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의 필요와 원하는 것을 파악한다면 훨씬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지요. 피아노를 치는 사람, 음식을 먹는 사람과의 관계와 교감이 없어서는 안되는 일이거든요.”
-업라이트 피아노 대신 요즘은 디지털피아노로 많이 대체되는데 일은 어떤가요.
“1년대 600대 정도의 피아노를 만나는데 예전에 비해선 좀 줄었어요. 아무래도 디지털피아노가 많아지니 조율사 숫자도 감소하는 편이고요. 그래도 공들여 만드는 정직한 피아노소리를 사랑하는 분들도 여전히 계시니까 저도 더 매진하게 되지요. 제가 절대미각을 갖고 있는 건 아닌데 귀는 좀 밝은 편이거든요.(웃음)”
국수의 맛 |
박경은 선임기자 k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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