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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24 (화)

    이슈 미술의 세계

    그림 속 복사꽃처럼, 일상에 번지는 향기[김미경의 문화유산, 뮷즈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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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중앙박물관 ‘도원행주도’

    경향신문

    ‘도원행주도’에서 영감을 받아 현대적으로 풀어낸 뮷즈, 핸드크림&립밤 세트.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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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사유의 방’만큼이나 아름다운 공간이 있다. 상설전시관 2층에 자리한 기증관, ‘나눔의 서재’다. 이곳에는 여러 사람이 오랜 시간에 걸쳐 수집한 문화유산과 아끼던 것을 사회에 내놓기로 결심한 이야기들이 서가처럼 조용히 모여 있다. 기증관은 유물을 전시하는 공간이자, 나눔이라는 선택이 축적된 장소다.

    이곳의 기증자 가운데 특히 주목되는 인물이 있다. 수집을 애국으로 여긴 동원 이홍근 선생이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그는 우리 문화유산이 해외로 반출되고 훼손되는 현실을 안타깝게 지켜봤다. 문화유산을 지키는 일이 곧 애국이라는 신념 아래 스스로 공부하며 안목을 키웠고, 평생 5000건이 넘는 문화유산을 수집했다.

    그의 뜻에 따라 유족들은 네 차례에 걸쳐 방대한 컬렉션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한 개인의 수집은 그렇게 공공의 기억으로 전환되었고, 한국 미술사와 문화유산 연구의 지형을 넓혔다. 그 방대한 기증품들 사이에서, 한 폭의 그림 앞에 걸음이 오래 머문다. 이홍근 선생이 기증한 안중식의 <도원행주도>다. 조선 말기 화가 안중식의 만년작인 이 그림은, 배를 타고 가다 복숭아꽃이 만발한 별천지에 이르렀다는 무릉도원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화면을 따라가다 보면 어부가 탄 작은 배는 이미 도원의 문턱에 거의 다다라 있다. 지그재그로 펼쳐진 강 언덕에는 복숭아꽃이 진분홍으로 만개해 있고, 그 꽃들은 마치 길을 안내하듯 산굴 안쪽으로 이어진다. 흥미로운 점은 산굴 위쪽이다. 상서로운 구름이 걸려 있지만 꽃은 피어 있지 않다. 현실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복숭아꽃은 이 그림에서 이상향과 현실을 가르는 경계이자, 도원으로 들어가는 표식처럼 기능한다.

    안중식은 진분홍과 청록색을 강렬하게 대비시켜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극대화했다. 청록색 산세와 복사꽃의 분홍빛이 맞부딪치는 화면은 대담하고 현대적이다. 작품 앞에 서면, 내가 마치 무릉도원으로 노를 젓는 어부가 된 듯한 착각이 든다.

    <도원행주도>의 미감에서 가장 먼저 다가오는 요소 역시 색이다. 이번에 선보인 핸드크림과 립밤 세트는 이런 맥락에서 기획됐다. 일상의 아이템을 통해, 그림이 지닌 희망과 온기를 전하고 싶었다. 핸드크림의 뚜껑에는 도원행주도의 청록색을 과감하게 사용했다. 청록과 분홍이 만나는 순간, 복사꽃 마을로 향하는 길이 자연스럽게 연상되기를 바랐다. 패키지는 작은 책을 연상시키는 구조로 설계했다. ‘나눔의 서재’라는 공간에 대한 은근한 오마주다.

    이번 상품은 아모레퍼시픽과의 협업으로 제작됐다. K뷰티 산업 안에서 우리 문화유산의 미감과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소개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복사꽃 마을로 향하는 서사를 살려, 핸드크림에는 복숭아꽃 추출물도 담았다. 문화유산의 의미와 가치가 뷰티라는 일상의 방식으로 이어지는 지점이다.

    기증관의 문화유산은 나눔으로 완성된다. 그리고 그 문화유산에서 출발한 상품은 다시 일상으로 스며든다. 아직은 겨울의 끝자락이지만, 어김없이 봄은 찾아올 것이다. 도원행주도의 분홍빛처럼, 올해의 봄이 유난히 화사했으면 한다. 이 그림이 많은 이들의 일상에 작은 온기와 기대를 건네며, 나눔의 서재에서 시작된 풍경으로 오래 남기를 바란다.

    ▶김미경

    경향신문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상품사업본부장. 문화유산에 오늘의 감성을 더하는 브랜드 뮷즈(MU:DS)의 총괄 기획을 맡고 있다. 반가사유상 미니어처 등 국립중앙박물관을 ‘굿즈 맛집’으로 이끌었다.


    김미경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상품사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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