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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25 (수)

    이슈 검찰과 법무부

    ‘자본론 읽어 기소유예’ 이동섭씨 “검찰, 통지서 한 장으로 무혐의 통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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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폭력 피해자가 먼저 나서야 하는 현실 여전”

    경향신문

    20대 후반 자본론을 읽어 불법구금 됐다가 최근 검찰의 혐의없음 처분받은 이동섭씨가 지난 4일 서울 중구의 한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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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십 년 만에 걸려 온 검찰의 전화가 보이스피싱인 줄 알았다. 뒤이어 받은 변호사 이름이 적힌 문자메시지를 받고서야 실감했다. 1983년 친구 정진태씨와 함께 당시 금기도서인 <자본론>을 읽었단 이유로 불법 구금 당하고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던 이동섭씨(71)의 피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한 전화였다.

    얼마 뒤 이씨는 기소유예가 43년 만에 무혐의로 바뀌었단 사실을 검찰이 아닌 기자를 통해 알게 됐다. 지난달 23일 서울남부지검이 보도자료를 통해 무혐의 처분을 밝혔고 이를 기자가 전한 것이다. 이씨 본인에 대한 검찰 통보는 그로부터 12일 뒤인 지난 4일에야 우편으로 왔다. 지난달 7일 그가 대검찰청에 신청한 진정이 기존 사건 기록에 편철됐다는 통지와 짧은 메모가 적힌 포스트잇 한 장이 들어있었다. ‘23일 혐의없음 처분. 참고하세요.’

    이씨는 “무혐의 처분을 받으니 마음이 편해진다“고 말했다. 지난 4일 서울 중구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이씨는 “검찰개혁 얘기가 나오고 개선하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겠지만, 하여간 (검찰에) 기대도 안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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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섭씨가 지난 4일 검찰로부터 받은 무혐의 처분 관련 통지서. 이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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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대 후반부터 이씨는 친구 정씨, 고 박광순씨와 모여 세상을 논하고 민주화를 공부했다. 이씨가 풀무원에서 두부를 만들고 팔았던 1983년, 두 친구와 설 명절을 함께 보낸 뒤쯤 그에게 경찰이 들이닥쳤다. 이씨는 22일간 관악경찰서 등 3곳에서 수사를 받는다는 명목하에 매 맞고, 발길질을 당했다.

    5·18 유공자였던 이씨는 광주민주화운동으로 감옥 생활도 해봤지만 옥살이보다 조사받는 게 더 힘들다고 했다. 그는 “감옥에선 생활하는 거지만 조사받는 동안엔 그들이 ‘작품을 만들어야’ 해서 오만 일들이 다 벌어진다”며 “22일 중 적어도 열흘은 맞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맞다 보면 없는 일도 뭐든 말해버리고 싶게 된단다. 이씨는 “한계에 다다르면 ‘너희가 원하는 대로 조서를 써놓으면 사인할게’란 심정이 된다”며 “수배된 친구 이름을 끝까지 말하지 않으려고 마음을 아주 짓눌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돌이켜보면 경찰이 조직 사건을 만들려고 했던 것 같은데, 막상 그런 게 없으니 책을 문제삼은 것 같다”고 했다.

    경향신문

    20대 후반 자본론 읽어 불법구금 됐다가 최근 검찰 혐의없음 처분 받은 이동섭씨가 4일 서울 중구의 한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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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로부터 43년이 흘렀다. 함께 자본론을 읽고 3년간 옥살이를 한 친구 정씨는 지난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진실규명을 받고, 그해 10월엔 마침내 재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하지만 이씨와 박씨는 계속 유죄 상태였다. 이씨는 “내 처분도 바뀔 거란 생각은 못했다”며 “나는 매만 맞고 나와서 (진정을 넣을지도) 고민했다”고 말했다. 정씨를 비롯한 주변의 독려와 마음 깊은 곳의 억울함이 그를 움직였다. 검찰에 진정을 넣으면서 이씨는 ‘국가폭력 피해자가 먼저 요구해야 하는 현실’을 마주했다. 이씨는 “5·18 유공자로 인정받을 때도 피해자들이 하나하나 다 입증하도록 했다. (이번 무혐의 처분도) 검찰이 (알아서) 해줄 거란 기대는 크게 안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검찰이 (과거사 문제를) 반성했다는 생각은 크게 안 든다”며 “결국 제도로 틀이 바뀌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를 대리한 최정규 법무법인 원곡 변호사는 “검찰이 이 사건을 진정 전부터 검토해왔다고 하더라도 결국 피해자들이 진정을 낼 때까지 방치한 셈”이라며 “5·18처럼 국가보안법 관련해서도 재심에서 무죄 받은 피해자와 기소유예된 피해자들에 대해 일괄적으로 혐의없음 처분을 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책 ‘자본론’ 소지했다는 이유로 3년 옥살이···42년 만에 재심서 무죄
    https://www.khan.co.kr/article/202510281333001


    박채연 기자 applau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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