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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15 (일)

    [에디터의 창]당원 주권이란 이름의 팬덤 동원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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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인1표가 시행됨으로써 당내 계파가 해체될 것이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3일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표 가치를 20 대 1에서 1 대 1로 조정하는 1인1표제가 통과되자 한 말이다. “당원이 공천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계파를 형성해서 공천에 대한 이익이나 기득권을 행사할 수 없다.” 당원은 계파와 이해관계를 초월해서 합리적인 선택만 하는 절대적 존재란 말인가. 집권 1년도 안 돼 계파 간 권력투쟁이 본격화한 민주당 현실에 비춰보면 궤변에 가깝다.

    소위 당원 주권론이 유행이다. 정 대표는 권리당원 권한 강화 당헌·당규 개정안을 전 당원 투표를 통해 밀어붙였고, 조국혁신당과의 합당을 추진하면서도 전 당원 투표를 거론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한 후 전 당원 투표 카드를 꺼내 당내 반발을 진압했다. 자신 있으면 직을 걸고 당원 투표로 승부를 가르자고 위협했다.

    당원 주권이란 표현부터 부적절하다. 주권은 국가 의사를 결정하는 최고이자 절대적인 권력으로, 우리 헌법은 국민 주권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당원은 정당의 의사결정에 개입할 권리가 있지만 그 권리가 국민 주권처럼 절대적이고 배타적일 수 없다.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정당·당원의 관계와 국가·국민의 주권 관계는 다르다. 특정 정당의 당원들이 국민의 뜻을 대행한다고 말할 수도 없다.

    당원 주권 시대의 현실을 보자. 민주당에서 투표권이 있는 권리당원은 지난 1월 최고위원 보궐선거 기준 117만명 정도다. 국민의힘은 지난 1월 기준 당비를 내는 당원이 100만명을 넘었고 책임당원은 77만명 정도라고 한다. 2015년 민주당이 온라인 입당을 허용한 후부터 당원 수는 급격히 늘었지만 당원 자격에 대한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헤게모니 장악을 위한 당원 모집 운동이 이어지면서 당의 정강·정책에 기반한 당원 심사나 교육은 뒷전으로 밀렸다. 민주당에선 매달 1000원·6개월 당비 납부, 국민의힘에선 1000원·3개월 납부만으로 투표권을 갖는 당원이 될 수 있다. 큰 선거가 있을 때마다 당원 수는 증가했다. 2023년 6월 기준 민주당 권리당원은 245만명이었는데 그중 절반인 129만명이 이재명 대선 후보 선출 이후 가입했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2021년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 당시 윤석열 후보 측이 신천지 신도 10만여명을 책임당원으로 가입시켰다고 주장했다. 신천지·국민의힘 공생 의혹은 당원 주권론의 허상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소수의 강성 당원이 침묵하는 다수 당원을 압도하는 현상도 두드러진다. 정 대표의 1인1표제 전 당원 투표에서 1차 투표율은 16.8%, 2차 투표율도 31.6%에 그쳤다. 20만~30만 당원을 동원할 수 있으면 전 당원 투표라는 직접민주주의를 통해 뭐든 밀어붙이고, 누구든 쳐낼 수 있다. 복잡하고 힘든 숙의와 타협에 공들일 필요도 없다.

    당원 주권론의 선구자는 이재명 대통령이다. 대선 후보 시절 팬덤을 대거 민주당 권리당원으로 흡수한 그는 당대표 시절 전당대회에서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표 가치를 60 대 1에서 20 대 1로 조정해 권리당원 영향력을 키웠다. 이는 대표 재선과 대권 재도전의 기반이 됐다. 소위 개딸로 불리는 친명 권리당원들은 2024년 총선 공천 과정에서 비명 세력 축출의 선봉에 섰다. 비명 후보만 골라 찍어낸 공천을 그는 당원 주권이 구현된 공천혁명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국회의장 후보자와 원내대표 선출 시에도 권리당원 의사 20%를 반영하도록 했고, 대선 후보 경선 규칙도 일반 국민경선에서 권리당원 투표 50%를 반영하는 국민참여경선으로 바꿨다. 비주류였던 이 대통령이 팬덤을 앞세워 다른 계파를 밀어내고 민주당을 장악한 전략의 핵심이 당원 주권론이었다.

    정 대표의 당원 주권론은 이 대통령 전략 따라하기 성격이 짙다. 당원 주권이란 대의로 권리당원 팬덤을 활용한 이 대통령의 성공 스토리를 재현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친명계의 입장은 과거와 180도 달라졌다. “나치를 닮아간다”는 비명계의 비판에도 권리당원 권한 키우기를 밀어붙인 그들이 정 대표의 권리당원 권한 강화에 대해서는 연임을 위한 꼼수라고 공격한다. 당원 주권은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그때그때 다르게 해석된다. 정 대표는 혁신당과의 합당에 대한 전 당원 투표를 제안했지만 친명 팬덤은 친문재인계 등의 복귀 시도라며 힘으로 무산시켰다. 정청래·김어준·유시민의 팬덤이 현직 대통령을 배경으로 둔 친명 팬덤에 눌렸다. 당원 주권론으로 불리는 팬덤 동원 정치의 시대다.

    경향신문

    박영환 정치국제에디터


    박영환 정치국제에디터 yh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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