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3370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작년 말 최악의 유출 사태를 계기로 쿠팡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본격적으로 해부되고 있다. 때마침 세계적인 기업평가기관 S&P글로벌은 쿠팡의 ESG 점수를 100점 만점에 8점으로 평가했다. 이는 작년 7월 9점에서 1점이 감점된 수치로, 미국과 한국의 동종 업계 내에서 최하위 점수다.
이번 유출 사고 전부터 쿠팡의 ESG 경영은 의구심을 사왔다. 열악한 노동환경과 과로사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한국에서 막대한 수익을 얻으면서도 미국 시장에 상장되어 있다는 이유로 법적·사회적 책임을 지지 않는 기형적인 구조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한국 쿠팡은 미국 본사인 Coupang, Inc.가 지분 100%를 보유한 완전 자회사이며, 본사의 의결권 76%는 김범석 Coupang, Inc. 의장이 단독 보유하고 있다.
ESG 경영은 자본주의의 자기 진화 과정에서 기업의 이해관계자를 폭넓게 정의하기 시작하면서 등장한 개념이다. 중세의 상업자본주의, 산업혁명 이후의 산업자본주의, 20세기 후반의 주주자본주의에서 한 단계 진화한 버전으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와 궤를 같이한다.
주주의 이익이 최우선시되는 주주자본주의하에선 단기 이익에 초점이 맞춰져 노동자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고, 기업의 이익 역시 주주와 경영진에게만 집중되어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환경 파괴와 하청 업체에 대한 갑질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러한 시대적 현상에 위기의식을 느낀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은 2004년 9개국 20개 금융기관 대표들과 숙의하여 ‘배려하는 자가 이긴다’(Who Cares Wins)는 보고서를 발간했으며, 이 보고서에서 ESG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했다.
ESG 점수가 수익성에 영향 주려면
‘배려하는 자가 이긴다’는 표현은 주주자본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이해관계자와 상생해야 한다는 ESG 경영의 지향점을 잘 나타내지만, 동시에 금융기관들의 장기적인 이해관계가 내재화된 표현이다. 보고서의 부제가 ‘변화하는 세계와 금융시장의 연결’인 것에서 알 수 있듯 재무 분석, 자산 관리 및 주식 거래에 ESG 이슈를 효과적으로 통합하기 위한 금융업계의 권고사항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이러한 ESG 용어가 더욱 널리 확산된 계기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최고경영자(CEO) 래리 핑크가 2018년 초 CEO들에게 보낸 연례 서한이었다. 그는 이 서한에서 “어떤 기업이 ESG 이슈를 잘 관리할 수 있다면, 이는 곧 그 기업이 지속 가능한 성장에 필요한 리더십과 좋은 지배구조를 가졌음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투자 결정 과정에서 이 세 가지 이슈를 점점 더 많이 고려하고 있다”고 적었다. 이어서 2020년에는 ESG 문제, 특히 석탄 관련 투자 등 기후변화 대응을 소홀히 하는 회사를 대상으로 주주로서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그의 서한으로 기업과 공공기관에 ESG 열풍이 불었지만, 정작 블랙록이 주주로서 ESG 관련 안건에 찬성한 비중은 2021년 47%에서 2024년 4%대로 폭락했다. 미국 보수진영을 중심으로 ‘깨어있는 자본주의’에 대한 반발이 거세졌기 때문이다. 2023년 6월에는 “ESG라는 용어가 너무 정치화되어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에너지 실용주의’란 용어를 사용하며 화석연료 투자도 필요하다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그 역시 금융자본의 단기 이익을 추구하는 주주자본주의의 틀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가 2008년 금융위기의 주범이었던 서브프라임 모기지 상품을 초기에 개발해 막대한 부를 쌓았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투자자들이 ESG 이슈에 반발하여 연관 펀드에서 돈을 빼고, 미국 새 행정부의 기후변화 지우기 정책으로 인해 친환경 에너지의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하락하는 상황에서 ESG 투자 기조를 지속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ESG 경영은 자본주의의 자기 진화 과정이다. 자본주의가 크고 작은 위기에도 불구하고 지속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자정 능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진화의 속도는 이해관계자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그 이면에서 세상을 지배하는 금융자본의 수익성에 달렸다는 것이 불편한 진실이다.
경쟁자가 출현할 환경 만들어줘야
쿠팡 사태는 이 사실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수많은 반ESG적 행태와 사회적 비난에도 불구하고 쿠팡은 진정성 있는 사과나 소통 없이 오만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연 매출이 50조원인 기업임에도 다른 대기업들과는 달리 제대로 된 ESG 보고서조차 발간하지 않는다. 홍보용도로 펴낸 ‘2025 임팩트 리포트’는 고작 6쪽에 불과하다.
이렇게 행동할 수 있는 이유는 ESG 이슈가 회사의 수익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다. 일부 고객 이탈은 일시적일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쿠팡은 소비자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에 맞는 독보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며 성장했다. 일례로 ‘로켓배송’은 육아와 가사에 치이는 소비자들에게 대체 불가능한 편익을 제공한다. 다양한 상품군, 합리적 가격, 편리한 반품 시스템과 국내외 무료배송에 길들여진 소비자들이 이전의 불편한 세계로 돌아가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쿠팡의 오만함을 바로잡는 길은 ‘어찌 되든 수익성엔 영향이 없다’는 전제를 깨트리는 것뿐이다. 8점에 불과한 ESG 점수가 소비자의 실제 구매 행위에 영향을 주어야 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경쟁자가 출현할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대형마트의 새벽배송을 허용하는 법 개정을 추진한다는 소식에 뉴욕증시의 쿠팡 주가가 하루 새 13% 급락한 것이 그 증거다.
물론 새로운 경쟁자의 등장으로 얻는 소비자의 편익 이면에서는 또 다른 이해관계자에게 반ESG적 행위가 강요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야간노동의 증가와 같은 예시가 그러하다. 그러나 이러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또 감시하는 것이 바로 정치와 행정, 그리고 공정한 ESG 평가의 역할일 것이다.
김경식 ESG네트워크 대표 |
김경식 ESG네트워크 대표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더보기|이 뉴스,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 점선면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