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SMR 부지 공모에는 이상한 부분이 몇개 있다. 첫째는 임해 지역이어야 한다고 명시한 점이다. 그런데 원전 산업계와 학회에서 SMR은 내륙 어디에든 지을 수 있는 게 강점이라고 주장해온 것을 감안하면 이런 공모 기준은 이 원자로의 잠재력을 심각하게 제약하는 것이다.
당장 반도체 단지로 인한 전력 수요 문제로 논란이 되는 용인을 포함해 전력 수요가 많은 수도권, 그리고 2023년부터 군위군 일원을 SMR 후보지로 삼아서 한수원과 업무협약을 체결하는 노력을 펼쳤던 대구시는 공모 참여 자격조차 갖지 못하게 되었다. SMR마저 이미 전력 공급이 넘쳐나는 데다가 높은 원전 밀집도와 송전망 추가의 어려움이 불 보듯 뻔한 동해안에 추가한다는 것은 이 원자로를 말 그대로 실험용에 머무르게 할 것이다.
둘째로 이상한 점은 부지 면적의 근거도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한수원의 공모 내용에는 자세한 설명이 없지만, 현재 개발 중인 i-SMR(혁신형 SMR)이 170㎿급 4개 모듈로 구성되므로 아마도 여기에 해당하는 부지 조건일 것이다. 그런데 이 SMR이 대형 원전 출력의 절반이니까 부지도 절반 정도 필요한 게 확실할까? 마침 SMR 유치 움직임이 있는 부산 기장군과 경주에는 기존 원전 부지와 문무대왕 과학연구소 부지 내에 대형 원전을 짓기엔 좁지만 15만평은 넘는 땅이 있다. 혹시 이 부지들을 고려한 짜맞추기 공지는 아닐까?
셋째는 절차적 측면이다. i-SMR은 표준설계는 끝났다고 하지만 한 번도 건설된 적이 없고 설계 인허가 과정도 시작되지 않은 원자로다. 새로운 기술인 탓에 심사 결과로 설계가 상당히 수정될 수도 있고 그러면 필요 면적이나 기술 조건이 달라질 수도 있다. 누스케일 파워가 미국 유타주에서 추진하다가 좌초한 프로젝트의 SMR도 처음에는 모듈당 50㎿급으로 설계 인증을 받았다가 경제성 등을 고려해 77㎿급으로 변경되었다. 그러니까 한수원이 지금 선정하려는 SMR 부지는 나중에 여러 이유로 부적합해질 수도 있을뿐더러, 한수원은 집을 지을 설계도도 승인받지 않은 채 근거 없이 부지를 공모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와 원전 산업계는 에너지 정책이 백년대계라는 말을 즐겨 쓴다. 아무리 급하더라도 필수적인 절차와 근거는 확보해야 한다. 이번 SMR 부지 공모에 문제점이 있다면 한수원은 시급히 공모를 철회해 혼란을 막아야 한다. 그리고 필요한 절차를 제대로 밟은 뒤에 SMR의 잠재력을 실현하고 수용성을 높일 수 있도록, 수도권도 응모할 수 있는 부지 유치 공모에 다시 나서야 할 것이다.
김현우 탈성장과 대안 연구소 소장 |
김현우 탈성장과 대안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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