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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24 (화)

    이슈 질병과 위생관리

    환경미화원은 왜 형광색 옷을 입을까?[설명할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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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향신문

    25일 새벽 12시 서울의 한 대학가 인근 골목에서 환경미화원들이 발판에 올라서고 있다. 우혜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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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광연두색 작업복에 흰 작업모를 쓴 사람, 본 적 있으시지요. 주로 때늦은 밤이나 때 이른 새벽 길목에서 마주쳤을 겁니다. 바로 환경미화원들인데요. 이들은 형광색 옷에 빛을 반사하는 띠를 두르고 일하곤 합니다. 캄캄한 거리에서도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서죠. 이들은 왜 모두가 잠든 시간에 일해야 할까요? 고요해진 밤의 거리를 지키는 것은 어떤 ‘삶’인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월급 652만원? ‘대기업 연봉’이 가능했던 이유


    지난해 7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환경미화원 11년 차 급여명세서’라는 제목의 게시글이 올라와 논란이 됐습니다. 공개된 명세서에는 세전 652만9000원이 지급액으로 적혀 있었는데요. 얼핏 보면 ‘대기업 수준’이라는 말이 나올 법한 금액이죠.

    그러나 논란의 핵심은 월급 액수가 아니었습니다. 명세서 속 미화원은 한 달 동안 30일을 일하며 무려 92시간의 야간근로를 한 것으로 나타났거든요. 초과근무 수당과 각종 수당을 제외한 기본급은 250만원 수준이었습니다. 많은 급여는 장시간 야간 노동의 대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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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7월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환경미화원 11년차 급여명세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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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D 업종’에 더해진 또 하나의 D, 죽음


    환경미화원은 대표적인 3D 업종으로 불립니다. 더럽고(Dirty), 위험하고(Dangerous), 힘든(Difficult) 일이라는 의미죠. 여기에 ‘죽음(Death)’이라는 또 하나의 D를 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는데요.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업무상 사망으로 유족급여가 신청된 환경미화원은 723명에 달합니다. 이 중 질병으로 인한 사망이 53.9%로 가장 많았고, 그중에서도 뇌·심혈관 질환 사망이 275명으로 전체의 38.0%를 차지했습니다. 상당수가 과로사로 추정됩니다.

    지난해 10월23일에도 경기도 동두천시 소속의 50대 환경미화원이 야간작업 중 숨졌습니다. 그는 생전에 과로를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높은 야간근로 수당 뒤로 이런 조용한 죽음들이 쌓여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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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민주일반노조·녹색당·정의당·노동당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지난해 9월25일 서울 강서구청 앞에서 환경미화원 등 잇따른 노동자 사망에 대한 구청의 책임을 묻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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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간 근무, 불가능한 선택(Impossible choice)


    야간 노동은 사고 위험이 높고, 각종 질병에 취약합니다. 그런데도 환경미화원들은 왜 밤에 일할 수밖에 없을까요.

    2023년 국제사무직노조연맹(UNI-Global Union)은 ‘시간과의 전쟁: 청소 노동자의 근무 일정이 건강과 안전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글로벌 설문조사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32개국 2500명 이상의 청소 노동자 가운데 약 70%가 야간 근무를 하고 있었고, 이들 대부분은 ‘경제적 필요’와 ‘선택권의 부재’를 이유로 들었습니다.

    보고서는 이를 ‘불가능한 선택(Impossible choice)’이라고 표현합니다. 낮 시간대에 일하고 싶어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길 요구받기 때문에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낮에 일해야 보장받을 수 있는 건강과 안전, 인간관계는 미화원들에겐 존재하지 않는 선택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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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우가 쏟아진 서울 서대문구에서 환경미화원이 인도를 청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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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대한 불편’에 밀려난 안전할 권리


    한국도 상황은 다르지 않습니다. 기후에너지환경부의 ‘환경미화원 작업 안전 가이드라인’은 원칙적으로 주간 작업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서울시 25개 자치구 가운데 실제로 주간 작업을 시행하는 곳은 도봉구와 강동구뿐입니다.

    가이드라인엔 “주민 생활에 중대한 불편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경우” 지방자치단체 조례로 작업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예외 조항이 있습니다. 이 조항을 근거로 다수의 지자체는 ‘주민 민원’을 이유로 야간 근무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냄새 나고 시끄럽다는 민원을 상대하느니 미화원들을 시민의 시야에서 밀어내자고 ‘선택’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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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경부가 2019년 발표한 ‘환경미화원 작업 안전 가이드라인’ 중 일부. 환경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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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광 조끼’에서 읽어야 할 질문


    선거철이 되면 정치인들이 ‘시민의 시선에서 바라보겠다’며 환경미화 체험에 나서곤 합니다. 형광색 조끼를 입고 쓰레기를 줍는 사진과 영상이 따라 나옵니다. 그러나 야간 근무 중 다치고 병들어 죽는 현실은 왜 바뀌지 않을까요.

    ‘주간 근무를 원칙’으로 하는 폐기물관리법 개정안은 이번에도 국회에 계류 중입니다. 정치인들이 형광 조끼를 입으며 ‘왜 이 옷이 필요한지’, ‘왜 이 일을 밤에 하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했다면 어땠을까요.

    미화원을 상징하는 형광색은 단순한 옷이 아닌, 누군가의 삶이 ‘햇볕 없는 곳’으로 밀려났다는 신호인 것은 아닐까요. 미화원들에게도 햇볕이 있는 삶이 ‘가능한 선택지’가 될 수 있을까요? 형광색 조끼에서 우리 사회가 읽어야 할 질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환경미화원을 다룬 경향신문의 다른 보도가 궁금하다면?


    ☞ 오늘도 환경미화원은 왜 금지된 ‘죽음의 발판’에 오르나
    https://www.khan.co.kr/article/202509251448011



    ☞ [단독]지난해 산재 피해 환경미화원 8400여명···질병 사망이 54%
    https://www.khan.co.kr/article/202509251725001#ENT


    우혜림 기자 sa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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