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햄넷>의 한 장면.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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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언제 닥칠지 모를 상실에 대한 불안, 채워지지 않는 갈망과 허무속에서 때로는 웃으며 안도하고, 때로는 절망하고 무너진다. 손쓸틈없이 덮쳐오는 고난에 쓰러진 마음을 일으켜 나아가는 것, 그것은 살아가기를 선택한 이들이 감당해야 할 숙명이다.
영화 ‘햄넷’은 16세기 영국의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한 가족이 상실과 아픔을 예술의 힘으로 치유해 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라는 문장으로 유명한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햄릿’의 탄생 뒷이야기를 신비로운 상상력을 가미해 재구성했다.
아이들에게 라틴어를 가르치는 ‘윌리엄’(폴 메스칼)은 마을의 아름다운 여인 ‘아녜스’(제시 버클리)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매를 돌보고 숲에서 약초를 캐며 나무와 교감하는 아녜스는 마을 사람들에게 ‘숲속 마녀의 딸’로 불리는 여자다. 모계의 내력으로 남들이 보지 못하는 예지력을 가졌다.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집안의 반대를 넘어 결혼해 가정을 꾸린다. 부부는 큰딸과 아들딸 쌍둥이를 낳고 소박하고도 평범한 행복을 누리지만, 어느 날 아들 햄넷이 역병으로 세상을 떠나며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잃은 참혹한 상실의 고통을 마주하게 된다.
영화 <햄넷>의 한 장면.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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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잃고도 남은 아이들을 위해 슬픔을 이겨내야 하는 아녜스와, 가족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짓눌린 채 괴로움을 삼키는 윌리엄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고통을 견딘다. 아녜스는 보이지 않는 기운을 읽어내던 감각마저 무력해졌다는 절망 속에서 분노와 오열을 쏟아내고, 윌리엄은 아녜스의 슬픔을 함께 하는 대신 글과 무대로 도망치듯 몰입한다.
영화는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불멸의 비극 <햄릿>을 탄생시킨 배경을 다루지만, 주인공들의 아픔을 ‘위대한 작가의 비극적 영감’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지극히 현실적인 고통을 상실의 아픔을 간직한 모든 이들이 공감할만한 보편적인 감정으로 그려낸다.
영화 <햄넷>의 한 장면.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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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숲과 생명을 상징하는 신비로운 존재로 등장해, 남편이 떠난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주체적인 삶을 이어가는 아녜스의 모습은 클로이 자오 감독의 섬세하면서도 독특한 연출과 맞물려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본능적 자기 확신과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는 거침없는 모성, 몇몇 장면에서 터져 나오는 아녜스의 절규는 처절함을 넘어 섬뜩할 정도다.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는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제시 버클리가 가장 강력한 여우주연상 후보로 떠오른 이유를 납득하게 된다.
<햄넷> 포스터.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
영화 후반부, 런던 글로브 극장에서 윌리엄이 쓴 연극 ‘햄릿’의 초연을 지켜보는 아녜스의 얼굴은 영화가 도달하고자 했던 감정의 종착지다. 사람들이 연극을 보며 박수를 치는 사이, 아녜스는 무대 위 ‘햄릿’의 얼굴에서 햄넷을 본다. 허구 속 인물이 읊는 대사와 몸짓이 미처 다 살지 못하고 떠난 어린 아들의 삶과 포개질 때, 그저 이야기였던 예술은 생명을 얻어 응어리진 마음을 어루만진다. 상실의 고통 속에서 무너져 내리던 인물이 끝내 그 아픔과 화해하는 순간 터져나오는 카타르시스는 관객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영화 <햄넷>의 한 장면.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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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매기 오패럴이 2020년 발표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셰익스피어 부부에게 ‘햄넷’이라는 아들이 있었고 이 아들이 어린 시절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7년 뒤 <햄릿>이 출간됐다는 기록을 바탕으로 쓴 작품이다. 영화 <노매드랜드>로 2021년 제93회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은 클로이 자오 감독이 연출과 공동각본을 맡았으며, 다음 달 열리는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여우주연상 등 8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25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노정연 기자 dana_f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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