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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권 아저씨 노래 ‘머리에 꽃을’, 한참 불렀던 히피 스타일의 청춘이 있었지. 이제 나와 당신 머리카락을 보니 흰눈이 설설 내리고 있구나. 주룩주룩 봄비에도 녹지 않는 당신의 흰머리칼 흰눈. 이렇게 쓰다 보니 일본의 정형시 가운데 하나인 ‘센류(川柳)’가 생각나. 그 나라 할머니 할아버지 시인들의 센류는 재밌고 또 서글프더라. “연명치료 필요 없다 써놓고 매일 병원 다닌다” “만보기 숫자 절반 이상이 물건 찾기” “비밀번호 카드가 많아져서 뒷면에 적는다” “눈에는 모기를, 귀에는 매미를 기르고 있다” “쓰는 돈이 술값에서 약값으로 바뀌고 있다” “이봐 할멈. 입고 있는 팬티 내 것일세” “아내는 여행, 나는 입원, 고양이는 호텔” “일어섰는데 용건을 까먹어 우두커니 그 자리에.” “홀딱 반했던 보조개도 지금은 주름 속.” “손자 증손자 이름 헷갈려 전부 부른다”….
일찍 하얗게 센 당신 머리카락은 윤슬처럼 반짝거려. 세월 따라 흘러가다 어부의 그늘에 걸린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거려. 고갯길 응달에 집 짓고 사는 홀애비 박씨가 새로 함석지붕을 올리던데 거기서도 쨍하니 반짝거려. 요전날 과거에 사랑했던 이를 문득 만났다. 팽팽하던 얼굴엔 주름이 가득하고 수심도 깊어 보이더라. 나도 누구보다 아픈 일을 겪고 살이 쑥 빠졌었는데, 그래도 항상 밝게 생각하고 이겨내려 해. 염색을 한 뒤인데, 젊다는 말에 염색 실토를 했다. 단정하게 하고 지냈더니 나이를 ‘할인’해 주신다들. 쓰디쓴 커피를 마시면서 우리 대화가 뭐 이런 시시한 덕담들. 어제 내린 봄비에 지붕의 페인트가 씻겨 내려가듯 내 머리 염색물도 머지않아 빠지겠지. 더 나이 들기 전에, 더 늙기 전에, 또랑또랑 기억이 있을 때 자주 만나자고 했다. 마음먹고 건 전화기 너머 ‘오늘은 다른 약속이 있어’란 말에 상처 입지 말고.
임의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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