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2.26 (목)

    [정동칼럼]이제 지역정의를 말하자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원고 마감 시간 남겨놓으면 생각지 않았던” “완성도가 높아지지요.” “예, 생각지 않았던 글이 생각도 나고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마감 기준은 지방선거, 완성도 높아질 글은 행정통합 특별법이다. 국회 행안위 전체회의에서 민주당 출신 윤호중 행안부 장관과 국민의힘 주호영 의원이 이렇게 죽이 잘 맞았다.

    충남대전, 경북대구, 전남광주 3개의 통합특별시를 만들려던 계획은 국회 법사위에서 잠시 제동이 걸렸다. 방향은 다르다. 국민의힘은 더 많은 권한·재정을 내놓으라는 지렛대로 삼는가 하면 시민사회는 각종 특례 조항을 오히려 삭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어쨌거나 마감은 완성도를 높이지 못했다. 부산울산경남은 애초에 마감을 2028년 총선으로 잡았다. 주민투표도 하겠단다. 완성도는 높아질까?

    행정구역의 규모가 커지면 지역 경제가 살아난다는 근거는 없다. ‘초광역권’이나 ‘메가시티’는 어떤 도시가 발전하면서 행정구역을 넘어서는 집합체로 여러 지역이 연계되는 현상을 가리키는 개념이지 발전을 위한 인위적 전략과 무관하다. 행정통합은 “국가 발전을 선도하는 규제 자유화 지역”을 만들자는 데 본질이 있다.

    ‘규제 완화’를 약속하는 ‘특별구역’을 만들어 자본을 불러들이려던 신자유주의 성장 전략은 경제자유구역 특별법 이래 계속됐다. 특별구역 명칭은 늘어났지만 무언가 나아졌다는 소식은 들린 적 없다. 이제 전 국토를 통합‘특별’시와 ‘특별’자치도로 편재해 어느 곳도 특별하지 않게 만드는 역설은 ‘특별구역’의 실패를 고백하고 있다. 통합이냐 아니냐의 선택지에 갇혀 ‘지역’의 미래가 닫히고 있다.

    쫓기듯 논의할 일도 아니지만 여유 부릴 때도 아니다. 수도권 일극화와 지역 침체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지방소멸’이라는 말은 지역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마감이 있다는 듯 독촉한다. 그럴수록 우리 스스로 시간표를 세워야 한다. 무엇이 문제인지부터 재정의해야 한다.

    자본의 성장을 위해서는 온 지역이 필요하다. 물과 에너지, 도로와 항만 같은 기반시설뿐만 아니라, 먹고 자고 배우고 쉬고 치료받으며 ‘노동력’이 되어 찾아오는 사람들과 그걸 뒷받침할 생활 인프라까지, 자본은 지역을 오직 ‘소비’한다. 국가는 지역이 소비되기 좋도록 기능을 배분해왔다. 어떤 지역은 더 싸게 노동을 착취할 수 있도록, 어떤 지역은 발전소를 짓고 송전탑을 세워 에너지를 공급하도록, 어떤 지역은 각종 폐기물을 떠안아 처리하도록, 지역사회의 재생산 부담은 이주노동자에게 떠넘기면서. 지금 우리가 마주한 문제는 성장을 못해서가 아니라 자본을 성장시키느라 쌓인 문제다.

    행정통합은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를 행정 체제의 문제로 옮겨놓는다. 지리적 불평등은 자본주의의 필연적 결과다. 자본은 어떤 지역을 선택하든 버리든 언제나 지역 간 불평등 관계를 생산한다. 각종 특례로 자본이 어떤 지역을 선택할지는 달라질지 몰라도 지배와 수탈의 구조만큼은 달라지지 않는다. ‘지방주도 성장’을 내세운 행정통합은 이렇게 짜인 판 안에서 지방정부끼리 경쟁하라는 주문이다. 광역권 안에서 갈등을 수습하며 자본을 위해 지역을 재설계하라는 주문이다. 자본에 구애할 목적이라면 지방정부에 권한과 재정을 아무리 넘긴들 ‘지방소멸’은 역전되지 않는다.

    자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온 관심을 기울이며 지원하기 바빴던 국가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여러 생활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은 회피했다. 주거, 의료, 교육, 교통, 돌봄 등의 영역에서 공공성을 높이는 대신 수익을 좇는 사업이 되게 만들어주기 바빴다. 지역에 따라 기대수명이 10년 이상 차이 나고 초중고 통학 소요 시간이 1시간씩 차이 나는 현실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어디에 사는지가 존엄과 권리의 한계를 짓는 불평등이 문제다. 사람도, 삶도, 자연도, 도시도, 오직 자본의 성장을 위해 정렬시키는 부정의가 문제다.

    이제 지역정의의 관점에서 지역의 미래를 말하자. 지역정의는 공간을 균질화하는 것이 아니다. 어디에 살든 존엄과 권리가 평등할 수 있도록 공공성 기초 위에서, 자신이 살아가는 지역이 어떤 지역이 되어갈지 모두 말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지역정의다. 지배와 수탈의 구조를 거부하고 연대와 협력의 구조로 지역 간 관계를 만드는 것이 지역정의다.

    행정구역을 통합할지 말지, 권한과 재정을 얼마나 이양할지, 기업이 어디에 투자하게 할지 묻기 전에 우리가 목표를 정해야 한다. 마감을 지정하는 소멸의 시간표를 거부하고 지역정의를 위한 시간표를 함께 만들어가자.

    경향신문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더보기|이 뉴스,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 점선면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