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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26 (목)

    [숨]완행버스에서 만난 다르지만 닮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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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의 시골집을 오갈 때면, 종종 이(里) 단위 마을 구석구석을 훑는 완행버스를 타게 된다. 하루는 옆자리 한 승객이 읍내에 도착할 즈음 내 손목을 톡톡 쳤다. “네?” 하고 응답했지만 그의 말은 선뜻 알아듣기 어려웠다. 엄마의 시골집이 있는 곳은 과수와 엽채류 농사로 바쁜 지역이다. 그의 차림은 그가 그 어딘가의 일손임을 일러주었다.

    멋쩍은 듯 웃으며 고개를 돌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를 향해 고쳐 앉았다. 그는 교복 차림의 학생들을 가리켰다. 근처에 학교가 있는지를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우리 아이 저 학교 다니면 좋아요”라고 말했다.

    이야기의 골자는, 현재 혼자 한국에서 일하지만 모국에 있는 아이를 데려와 한국 학교에 보내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그는 이미 학교에 관해 알고 있었고, 가본 적도 있었다. 그러니까 학교 위치가 궁금해서, 혹은 어떤 정보를 구하려 말을 건 것이 아니었다. 내년이면 아이를 데려올 수 있을 것 같다는 그의 얼굴에서는 이미 그 소망이 이루어진 듯한 뿌듯함이 묻어났다.

    최근 친구들을 만난 자리에서 결혼과 자녀 유무에 따라 오래된 사이에서도 대화의 결이 달라져 관계도에 변화가 생긴다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이때 언급된 키워드 중 하나가 ‘다문화’였다. 부모가 된 친구들에게는 전과 달리 생활권에서 다문화가정의 비중이 높아지는 흐름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우리는 그 사실이 몹시 낯설었고, 차별금지라는 가치와 실제 삶 사이의 거리를 실감했다.

    한국 사회가 다문화 사회에 접어든다고는 하지만, 아직 많은 이들이 스스로를 다문화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주 배경 아이들이 학교 안팎에서 크고 작은 편견을 겪는다는 이야기도 낯설지 않다.

    2023년 ‘대한민국 스승상’을 수상한 신경아 교사는 최근 출간한 저서 <국경 없는 미술실>에서 다문화 비율이 90%에 가까운 안산 관산중학교에 부임했을 때 실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그전까지 그가 가진 공교육의 신념은 사교육을 이기는 것이었다. 그러나 의사소통도 원활치 않았던 그 작은 교실에서 그간 누구도 흡족히 반겨준 적 없는, 어느 세계에서도 온전히 안기지 못한 아이들을 마주하고서 그는 자신이 다시 공부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이후 신 교사는 아이들에게 ‘예술’이라는 다른 형식의 언어를 제시했고, 아이들은 그제야 조금씩 자신의 세계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그 아이들을 통해 신 교사가 새삼 깨닫게 된 것이 있다.

    “비교적 안전한 나라에서 태어나, 배우고 싶다고 말하면 배울 수 있었던 환경. 그 위에 자연스럽게 쌓아 올린 이력들. 그것이 전부 개인의 노력만으로 가능했던 일일까? 그렇지 않다는 걸 나는 다문화 현장에서 더 분명히 알게 되었다. 우리가 누려온 많은 조건은 그저 주어진 선물에 가까웠다.”(246쪽)

    다문화라는 말 자체에는 경계가 없지만 한국 사회에서 그 단어가 가리키는 얼굴은 상당히 단편적이다. 우리에게 다문화는 결혼 이주 여성이나 외국인 노동자 가정을 가리키는 말로 좁혀져 사용되어 왔다.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산업 현장은 그들의 노동 없이는 돌아가기 어려운 구조다. 낯선 존재로 바라보는 시선과 필수 인력으로 의존하는 현실이 포개진다.

    완행버스 옆자리의 그가 아이를 한국에 데려온다고 해서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 사실은 그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가 내게 말을 건넨 것은 어쩌면 자신의 아이를 위한 ‘예고’가 아닐까. 그에게서 나던 향긋한 샴푸 냄새가 잊히지 않는다.

    완행버스 옆자리의 그와 부모가 된 내 친구들이 안고 있는 고민은 본질적으로 닮았다. 배경이 무엇이든 내 아이가 세상 어디에서라도 ‘그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우리는 서로 다른 각자의 삶을 살지만, 분명 닮아 있다.

    신 교사는 교사인 자신이 할 수 있는 사회적 기여란 “교육이 더 이상 위를 보며 경쟁하는 게 아니라 가장 낮은 곳으로 방향을 틀도록 하는 일”이라고 했다. 이 메시지를 더 많은 사람과 나누는 방식으로 내 몫의 역할을 찾는다.

    경향신문

    서진영 <로컬 씨, 어디에 사세요?> 저자


    서진영 <로컬 씨, 어디에 사세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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