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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27 (금)

    [정지아의 선물]곶감과 스타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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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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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똥인지 된장인지 번번이 먹어봐야 아는 인간들이 있다. 내가 그런 인간이다. 복순이로부터 인생 최고의 선물을 받고도 정작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뭔지 모르게 미래가 불안해졌고 그래서 끊었던 공부를 했을 뿐이다. 끝이 어떻든 최선을 다하는 아름다움을 나는 오래도록 알지 못했다.

    소설을 쓰겠다는 제자가 있었다. 내 보기에 재주는 별로였다. 참으로 낯 뜨겁지만 갓 마흔이 지났던 그때의 나는 예술은 재능의 영역이라 믿었다. 문장조차 제대로 쓰지 못하면서 소설을 쓰겠다는 제자들에게 나는 주로 포기를 권했다.

    언젠가 우연히 한예종 총장을 지낸 이강숙 교수의 대담을 보게 되었다. 어떤 스승이 좋은 스승이냐는 질문에 이 교수는 대답했다. 어떤 스승이 좋은 스승인지는 모르지만 누군가의 꿈을 꺾는 사람은 나쁜 선생이라고. 망치로 뒤통수를 맞는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열심히 가르친다고 가르쳤으나 가장 나쁜 선생이었던 것이다. 나쁜 선생이었던 시절, 한 제자가 물었다.

    어떻게 하면 문장을 잘 쓸 수 있나요?

    나도 해본 적 없는 필사를 하라 권했다. 방학이 끝날 때까지 ‘삼포 가는 길’을 64번 필사했다던가(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다음 학기에 제출한 아이의 소설 문장은 나무랄 데가 없었다. 그 아이가 스승의날 고맙다며 포장에 싸인 작은 선물을 내밀었다. 김영란법이 없던 시절이기도 했고, 별것 아니라고 자꾸 강조하기에 그냥 받았다. 풀어보니 작은 플라스틱 상자 안에 든 곶감 다섯 개였다. 어린 시절 내 엄마가 대봉을 깎아 하루에도 스무 번 넘게 뒤집으며 말려준, 분이 하얗게 돋은 곶감과는 격이 다른, 공짜로 줘도 절대 먹을 것 같지 않은 곶감이었다. 게다가 그 무렵의 나는 어른이 되어 단 음식을 전혀 먹지 않았다. 뭐 이런 걸 선물이라고 주나 싶었다. 우연히 만난 학생에게 줘버렸는지 어쨌는지 곶감의 행방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이듬해에도 아이는 작은 선물을 건넸다. 이번에는 무릎 아래까지 오는 스타킹 두 켤레다. 초등학생도 아니고 스타킹 두 켤레라니. 이런 선물을 건네는 사람의 정서나 심미안 따위를 논평하면서 나는 그 아이를 서서히 밀어냈다. 문창과에는 주로 가난한 학생들이 많다. 스승의날이거나 무슨 날이라고 선물을 주는 문화도 없다. 주지 않았더라면 아무 문제도 없었을 게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그 시절의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내가 아니라 그 아이를 탓했다.

    환갑 다 되어서야 깨달았다. 선물의 가치는 선물 자체의 가격에 있지 않다. 주는 사람의 마음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받는 사람의 마음 크기와 깊이가 선물의 가치를 결정한다. 그 아이의 선물을 하찮게 만든 것은 결국 나였다. 주머니 가벼웠을 스물 남짓, 곶감 다섯 개와 스타킹 두 켤레는 어쩌면 그 아이의 밥 한 끼와 맞바꾼 것일지도 모른다. 설령 그만큼 곤궁하지는 않았을지라도 그 아이는 나에게 뭐라도 주고 싶었을 것이고, 몇 푼 안 되는, 그러나 그 아이에게는 결코 적지 않았을 돈으로 선물을 고르는 내내 나를 생각했을 것이다. 그 귀하디 귀한 마음을 나는 내 취향이 아니라는 이유로, 별것 아니라는 이유로 가벼이 내친 것이다. 사는 동안 그렇게 내친 선물이, 내친 마음이, 참으로 많다.

    칠순 지난 주인아주머니, 환갑 무렵의 내 어머니처럼 허리가 굽었다. 내 나이면 당연히 관절이 좋지 않을 줄 알고 누군가 귀한 약을 보냈다. 아직 내 관절은 튼튼하지만 귀한 선물을 보내줘 고맙다, 잘 먹겠다, 감사의 문자를 보냈다. 귀한 약은 주인아주머니에게 건넸다.

    아이고, 이리 귀한 것을… 비쌀 텐디… 정 작가 묵제.

    한사코 사양하던 아주머니는 다음날, 직접 농사지은 들깨로 짠 들기름 한 병을 가져왔다. 나는 들기름을 좋아하지 않아 친정 삼아 우리 집 방문한 나이 든 제자 차지가 됐다. 서울서는 구할 수 없는 귀한 것이라며 제자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들기름으로 부족하다 생각했는지 아주머니는 명절 내내 떡국 떡에 쑥떡에 식혜에 수정과에 전에, 굽은 허리로 정성껏 만든 음식을 퍼 날랐다. 아주머니는 받는 능력이 나보다 만 배는 낫다. 선물은 잘 받아야 한다. 감사한 마음으로, 그 물건에 밴 주는 이의 마음까지 살뜰하게.

    경향신문

    정지아 소설가


    정지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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