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식 환경생태전문기자] 백두대간의 내륙 심장부 속리산, 그 마루금 서쪽에 떨어진 빗방울이 모여 생명의 강 달천(達川)의 서사를 시작한다.
속리산의 너른 품 안에서 물머리를 일으킨 달천은 보은~청주~괴산 관내를 연이어 굽이친 뒤 충주 탄금대에서 남한강에 안긴다.
중부 내륙을 남에서 북으로 관통하는 총연장 125km(충북도 기준)의 물줄기.
예부터 물맛이 달아 감천(甘川)이라 불렀고 슬픈 남매의 전설이 남긴 달래강으로도 불렀던 달천은, 단순한 하천을 넘어 지역의 젖줄이자 생태 보고로서 한강 수계의 건강성을 지탱하는 거대한 생태축이다.
올해로 창간 36주년을 맞은 중부매일은 달천 생태계의 참모습을 총 50주에 걸쳐 기록하는 대장정을 시작했다.
기후 위기의 시대, 우리가 지켜야 할 생태계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생명들의 경이로운 이야기를 기록하고자 한다.
# 조선에서 가장 물맛 좋은 강 달천은 예부터 물맛이 좋기로 유명했다.
여말선초(麗末鮮初)의 문장가이면서 차를 좋아했던 이행(李行)은 찻물을 잘 감별했는데, 조선의 3대 명수를 이렇게 꼽았다.
"충주의 달천 물이 첫째이고 한강의 가운데를 흐르는 우중수(牛重水)가 둘째이며 속리산의 삼타수(三陀水)가 셋째이다."<기우집(騎牛集)> 충주목사 이천백의 아들로 호를 '기우자(騎牛子 소를 타는 이)'라고 할 만큼 소를 타고 유람하길 좋아한 이행은 일찍이 한강의 가치, 나아가 달천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그가 3대 명수로 꼽은 물 모두가 한강 수계에 있고, 그중 두 곳이 달천 수계에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행이 말한 속리산 삼타수가 정확히 어떤 물을 일컫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지역에 전해지는 이야기와 정황을 종합하면 상고암의 샘물(약수)일 가능성이 크다.
삼타수의 타(陀)가 흔히 불교에서 사용하는 용어란 점, 상고암 샘물 바로 옆 바위에 팔공덕수(八功德水)란 글귀가 새겨질 만큼 예부터 물맛 좋기로 유명한 점, 오래전부터 달래강 발원지 중 하나로 여겨진 점이 그를 뒷받침한다.
특히 팔공덕수가 여덟 가지 공덕을 지닌 품격 높은 물을 지칭한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조선 다도를 부활시킨 다성(茶聖) 초의선사는 팔공덕수를 가볍고 맑고 시원하고 부드럽고 아름답고 냄새 없고 비위에 맞고 먹어서 탈이 없는 물이라고 했다.
만일 상고암 샘물이 진짜 삼타수일 경우 달천은 발원지와 최하류 부근의 물이 모두 명수(明水)의 품격을 지녔다는 말이 된다.
# 하상의 지질 구조상 수질도 으뜸 달천은 또 수질도 남다르다.
상류에는 화강암 지대, 중·하류에는 변성퇴적암 지대가 펼쳐진 하상 구조의 영향으로 물굽이 곳곳에는 넓은 모래톱과 자갈밭이 형성돼 있어 거대한 자연 필터 역할을 하고 있다.
자연 필터를 거친 달천 물은 자연히 맑고 깨끗할 수밖에 없고 물맛도 좋아졌을 것이란 생각이다.
달천은 유역 면적이 넓은 데다 상류 쪽엔 깊은 계곡이 많아 갈수기에도 비교적 일정한 유량을 유지한다.
이는 남한강 본류가 마르거나 정체되어 수질이 급격히 나빠지는 것을 막아주는 유지용수 공급원으로서도 상당 부분 기여해왔음을 의미한다.
# 중부 내륙 생태계의 보물 창고 달천은 또 암석의 나란한 결인 '절리' 발달과 오랜 침식·퇴적 작용으로 물줄기가 크게 굽이치며 흐르는 구간이 많다.
계류와 여울, 소가 유난히 많고 하상에는 크고 작은 바위와 돌들이 즐비하게 깔려 있다.
곳곳에 하천 정비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유독 더 그랬다.
특히 화양·선유·쌍곡계곡에서 흘러드는 지류들은 달천의 생물 다양성을 더욱 풍성하게 해왔다.
오랜 세월 강물이 깎아낸 계곡과 절벽은 생물들에게 더없는 보루가 되어 수많은 생명을 품어 왔다.
가장 먼저 주목할 주인공은 수달(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 천연기념물)이다.
달천의 또 다른 한자명 獺川(달천)은 '수달의 강'이란 뜻이다.
그만큼 예부터 수달이 많이 살았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서식환경과 풍부한 먹이가 필수인 수달에게 달천은 오랜 삶의 터전으로서 본향(本鄕)이나 마찬가지이다.
밤이면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고 활동하는 수달의 모습은 지금도 거의 전 수역에서 확인된다.
달천의 품은 또 하늘다람쥐(멸종위기 Ⅱ급, 〃)의 삶터이기도 하다.
20여 년 전에는 산양(멸종위기 Ⅰ급, 천연기념물)과 사향노루(〃, 〃)도 관찰됐다.
또 깎아지른 절벽에서는 수리부엉이(멸종위기 Ⅱ급, 천연기념물)가, 느티나무 고목에서는 올빼미(〃, 〃)·소쩍새·솔부엉이가 밤의 지배자로서 소리 없는 사냥을 이어간다.
숲속의 멋쟁이라 불리는 까막딱다구리(멸종위기 Ⅱ급, 천연기념물)의 힘찬 드러밍(Drumming) 소리와 겨울철이면 북녘에서 찾아오는 큰고니(멸종위기 Ⅱ급, 천연기념물)의 우아한 자태 등은 달천이 종(種)을 초월한 생명의 안식처임을 입증한다.
수중 생태계 역시 돋보인다.
황금색이 특징인 천연기념물 황쏘가리와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인 묵납자루·가는돌고기·꾸구리·돌상어가 달천의 어류 목록에 이름이 올라 있다.
1990년 무렵엔 어름치(멸종위기 Ⅱ급, 천연기념물)도 살았다.
한국 고유종으로는 각시붕어·줄납자루·묵납자루·가시납지리·참갈겨니·중고기·참중고기·쉬리·참몰개·몰개·긴몰개·가는돌고기·돌마자·배가사리·돌상어·새코미꾸리·참종개·미유기·꾸구리·퉁가리·눈동자개·꺽지·얼룩동사리 등 20여 종이 분포한다.
여기에 더해 1892년 신종 발표된 후 까마득히 잊혔다가 133년 만인 지난해 한국명이 붙여진 한국납지리도 조만간 어류 목록에 추가되면 분포 종과 고유종이 더 늘어난다.
한국납지리는 지난해 본보 창간 35주년 특별기획 '과거로의 생태기행' 40회에 소개돼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달천 곳곳에 형성된 습지는 강의 폐 역할을 한다.
수변을 따라 우거진 버드나무·갈대·달뿌리풀 군락은 육상 생태계와 하천 생태계를 이어준다.
이곳에는 수많은 곤충과 양서·파충류가 공존하며 상위 포식자인 조류와 포유류를 불러들이는 먹이사슬의 기초가 된다.
# 달천의 숨소리 '슬로우 저널리즘'으로 기록 '달천, 50주간의 생태기록'은 빠르게 쏟아지는 뉴스의 홍수 속에서 느림의 미학을 지향한다.
단순히 달천의 생태를 보도하는 게 아니라 달천이라는 생명체의 1년 치 건강 진단서를 만들려 한다.
봄철에 들리는 깨어남의 전주곡부터 여름 생명력의 역동성, 가을의 결실과 이동, 겨울의 침묵 속에서 이어가는 생명 이야기까지 보고 듣고 느끼고 기록하며 50주의 여정을 보내려 한다.
# 자연과 인간의 공존, 그 길을 묻다 이번 취재는 생태 정보를 전하는 데 그치지 않겠다.
인간의 개발 논리와 기후 변화라는 거대한 위협 앞에 놓인 달천의 위기를 직시하겠다.
무분별한 강변 캠핑과 쓰레기 문제, 하천 직강화 사업이 남긴 상처, 그리고 해마다 높아지는 수온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등을 현장감 있게 다룬다.
대대손손 주민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달천의 구전사(口傳史)에도 귀 기울일 예정이다.
어르신들의 기억 속에 점차 퇴화하는 달천의 옛 모습과 정취도 들어보고 미래 세대에게 물려줘야 할 달천의 모습도 그려보겠다.
달천의 물줄기가 쉼 없이 흐르듯 우리의 발걸음도 쉬지 않겠다.
50주 후, 우리는 이 기록을 통해 우리 곁의 달천이 과연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 그에 따른 과제는 없는지 고민하려 한다.
이제, 달천의 맥박을 느끼기 위한 그 첫걸음을 뗀다.
속리산서 탄금대까지 '달천 생태계의 숨결' 탐사 125㎞ 물길이 품은 생명 이야기동식물 서식 현황 심층취재 보도기후 변화 속 '달천의 위기' 직시조선 선비가 극찬한 최고의 물맛한강 생태 건강성 지켜온 생태축 창간36주년,달천,달천강,생태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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