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평 처갓집 찾은 목포해경 이종선씨
복수 찬 40대女와 굶주린 9살 딸 구해
이종선 목포해양경찰서 예방지도계장(오른쪽)과 부인 윤옥희 씨(목포중앙초등학교 조리공무원)는 이웃에 대한 따뜻한 관심으로 위기에 놓인 모녀를 구했다. 목포해경 제공 |
“엄마가 배가 불렸네. 임신을 했나봐.”
지난달 18일 전남 함평군 처갓집을 찾은 이종선 씨(60·목포해양경찰서 예방지도계장)는 이웃 주민이 무심코 던진 이 한마디를 예사로 듣지 않았다. 이 씨는 부인 윤옥희 씨(59)와 함께 돌아가신 장인·장모의 빈집을 관리하기 위해 처갓집을 자주 방문해 왔다. 마침 설 명절을 맞아 이웃집 A 씨(45) 모녀에게 떡을 전해주러 갔던 주민이 이 씨에게 이 같은 말을 건넨 것이다.
젊은 시절 병원에서 7년 동안 근무했던 경험이 있는 이 씨의 머릿속에는 순간 ‘직감’이 스쳤다. 40대 여성이 비정상적으로 배가 부풀어 오른 것은 임신이 아니라 심각한 질병일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이 씨 부부가 곧장 찾아간 A 씨의 집 안은 차디찬 냉골이었다. 한겨울 추위에도 난방이 전혀 되지 않았고, 부엌에는 끼니를 해결한 흔적조차 없었다. A 씨는 배에 물이 가득 차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한 채 신음하고 있었고, 9살 딸은 며칠째 굶주린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다.
상황이 위급하다고 판단한 이 씨는 즉시 A 씨를 무안종합병원 응급실로 이송했다. 진료 결과 A 씨는 폐와 위, 장 등 주요 장기가 크게 훼손되어 배에 물이 차는 위독한 상태였다. 조금만 늦었어도 생명이 위험할 뻔한 순간이었다.
이 씨는 위급한 고비를 넘길 수 있도록 긴급 진료비와 집 난방용 기름값을 사비로 선뜻 내놨다. 또한 끼니를 거른 딸에게 떡국과 간식을 사주며 안심시켰다. 이어 모녀의 친인척들에게 연락해 A 씨가 수도권 대형 병원에서 본격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돕고, 홀로 남겨진 딸의 거처도 마련해 줬다.
조사 결과 A 씨 모녀는 7, 8년 전부터 함평의 빈집에 정착해 허드렛일을 하며 어렵게 생계를 이어오다 지난해부터 건강 악화로 복지 사각지대에 놓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함평군 관계자는 “지난해 기초수급자 신청을 권유했으나 접수되지 않았고, 설 연휴 직전 방문 때도 만나지 못해 걱정하던 차였다”고 설명했다.
이 씨는 면사무소에 연락해 모녀가 긴급 생계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행정적 절차도 직접 챙겼다. 최근에는 장애를 앓고 있는 A 씨의 아버지로부터 “딸을 살려줘서 고맙다. 꼭 회복시키겠다”는 감사의 전화를 받기도 했다.
올해로 29년의 해경 공직 생활을 마감하고 퇴직을 앞둔 이 씨는 5일 “이웃에 대한 작은 관심이 소중한 생명을 구해 다행”이라며 “A 씨가 빨리 건강을 회복해 딸과 다시 행복하게 살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목포=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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