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여성의날’ 맞아 교내 생존 위한 고군분투기
인원 부족·집단행동 등 이유 내세워 지위 잃어…무관심도 한몫
“아직 할 일 많아” 승격 도전 추진…“교내 민주주의 약화” 분석
이들의 소멸 위기엔 각기 다른 맥락이 있다. 코로나19 유행기를 지나며 학생들의 목소리가 줄어든 데다 2010년대 후반 이른바 ‘페미니즘 리부트(대중화)’ 이후 극심해진 ‘백래시’(반동)의 영향도 컸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여전히 대학 안에 페미니즘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정헌은 지난해 9월 ‘활동 인원이 적다’는 이유로 동아리에서 제명됐다. 55년 이어온 모임이지만 그간 발간한 교지들은 다른 동아리 방에 맡겨놨고, 회의 공간도 매번 바꾸며 옮겨다니는 처지다.
편집장 ‘초은’(활동명)은 ‘페미니즘에 대한 무관심’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는 “학내에도 페미니즘에 대해선 의견을 표현하지 않는 것이 정도로 여겨지는 분위기가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정정헌은 다음 교지를 준비하고, 중앙동아리 승격 심사에도 도전하려고 한다. 초은은 “여전히 학내에서 가시화되지 않은 성폭력 등 페미니즘 이슈들이 많다”며 “성균관대 내 여성 담론을 지속적으로 다루고 여성의 목소리를 담고 싶다”고 말했다.
고려대 여학생위원회는 지난해 5월 기후위기 대응 등 목적에 맞지 않는 활동을 했다며 징계성 병합을 당했다.
당시 병합을 결정한 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선 이들에 대한 공격이 쏟아졌다. ‘한국 남성의 극우화를 세미나에서 다루던데 모든 남성이 그런 건 아니지 않냐’ ‘비거니즘(채식주의) 간식 행사는 육식주의자를 고려하지 않은 것 아니냐’ 등 질문이 대표적이다. 여학생·소수자인권위원장 ‘하늘’(활동명)은 “백래시 때문에 인권 의제를 말하는 것을 머뭇거릴 수밖에 없는 분위기”라고 했다.
하늘은 백래시의 시대에는 안전하게 페미니즘을 말할 공간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학내에서 페미니즘이나 인권 얘기를 했을 때 ‘낙인이 찍히지 않을까’ 하는 불안 없이 안전하게 페미니즘을 외칠 수 있는 공론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동덕여대 사이렌은 학교 당국이 동아리 등록을 취소시킨 사례다. 동덕여대 대학본부는 사이렌이 남녀공학 전환 반대 집단행동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지난해 7월 동아리에서 제외했다. 학교는 사이렌이 학교 창립 정신과 단체의 설립 목적을 위배했다고 했다.
사이렌 운영진 A씨는 “창립 정신에 우리가 뭘 위배했다는 건지 이해되지 않는다”며 “학교 측이 공학 전환 반대 운동을 ‘일부 페미니스트의 소행’으로 알려 외부 공격이 심해져서 학생들 사이엔 페미니즘을 외치는 분위기가 위축되는 경향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오히려 공학 전환 반대 운동을 2년째 이어가면서 학생들은 더 많이, 더 자주 페미니즘을 말하게 됐다고 했다. A씨는 “여성 중심의 여자대학이라는 공간에서 여성 문제를 계속 의식하고 개선해야 한다는 생각이 발현된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생존경쟁에 내몰린 대학생들, 대학 내 민주주의 약화 등을 페미니즘 쇠퇴의 원인으로 꼽았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 전반적으로 페미니즘을 꺼리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페미니즘 동아리를 이력서에 쓰긴 쉽지 않을 것”이라며 “청년세대가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현실 등이 작용한 탓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대학사회가 점차 경쟁과 불평등을 당연시하는 분위기로 바뀌면서 페미니스트들이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는데, 이는 페미니즘뿐만 아니라 대학 민주주의가 무너진다는 것”이라고 했다. 신 교수는 이어 “삶의 불안정성을 해결할 수 있는 민주주의 발전의 엔진을 끌어가는 주요 세력 중 하나가 페미니스트”라며 “대학사회 구성원들이 페미니즘에 대한 공격은 곧 민주주의 전반에 대한 공격이란 확장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동덕여대는 기사가 나간 뒤 11일 “사이렌이 공학 전환 집단행동을 주도했단 이유가 아닌 그 과정에서 학교의 기본기능 수행을 방해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학칙을 준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앙동아리에서 제외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박채연 기자 applau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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