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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17 (화)

    1.2㎞ 두고… 포항 남구는 회식, 북구는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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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건강 지도]

    <9> 서울대·본지, 지역 컨설팅 시작

    의료·운동 인프라 따라 건강 격차

    조선일보

    서울대 건강문화사업단 전문가들이 경북 포항시 남구 제철동 일대를 둘러보고 있다. /신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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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일 오후 7시 경북 포항시 남구 상대동 ‘젊음의 거리’는 근처 철강 산업 단지에서 쏟아져 나온 노동자들로 붐볐다. 대로변 양쪽으로 500m 넘게 이어진 식당·술집은 회식 손님으로 가득했다. 작업복 차림 젊은이도 많았다. 김모(44)씨는 “일 끝나고 동료들과 한잔하고 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좁은 골목엔 불콰한 얼굴의 노동자들이 내뿜는 담배 연기로 자욱했다.

    같은 시각 술집 거리에서 1.2㎞ 떨어진 북구 양학동의 신도시 풍경은 달랐다. 포항역~효자역 간 4.3㎞ 폐철로를 산책로·자전거길로 조성한 철길숲은 이른 저녁을 하고 산책 나온 주민들로 붐볐다. 야외 운동 기구장에선 중장년 20여 명이 근력 운동을 하고 있었다. 퇴근 후 매일 3시간씩 왕복 15㎞를 걷는다는 엄모(59)씨는 “젊은 친구들이 ‘나이트(야간) 러닝’을 하는 모습을 구경하며 걸으면 시간이 잘 간다”고 했다.

    서울대 건강문화사업단(단장 윤영호 서울대 의대 교수)이 전국 기초자치단체 252곳 1만명을 조사한 ‘한국 건강 지수’에서 포항시 북구는 30위, 남구는 42위를 기록했다. 두 곳 모두 상위권이었다. 그런데 인접한 남·북구는 일부 주요 지표에선 격차를 보였다. 산업 단지가 들어선 남구는 흡연율과 고위험음주율(최근 1년간 1회 평균 음주량이 남성은 7잔 이상, 여성은 5잔 이상이며 주 2회 이상 마시는 비율) 등이 모두 전국 평균보다 높았다. 반면 북구의 걷기 실천율은 60.26%(50위)로 전국 평균(50.64%)을 웃돌았다. 북구의 우울감 경험 비율은 4.45%로 전국 평균(6.61%)보다 낮았다.

    서울대 건강문화사업단과 조선일보는 전국 기초자치단체의 건강 정책을 진단하고 개선 방안을 모색하는 ‘건강 컨설팅 프로젝트(대한민국을 건강하게)’ 첫 지역으로 포항시를 선정했다. 컨설팅 전문가 패널과 본지 취재팀은 지난달 27일부터 최근까지 세 차례 포항을 찾아 54개 항목에 대해 포항시가 실시한 평가 등을 참고해 건강 개선책을 찾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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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사진은 포항시 남구 대도동의 한 식당에서 주민들이 회식하는 모습. 오른쪽 사진은 포항시 북구 철길숲에서 주민들이 달리는 모습./윤성우 기자·그래픽=양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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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구의 만성질환 관리, 북구의 산책로… 성공한 정책 서로 공유해야"

    3일 오후 2시 경북 포항시 남구 제철동 인덕어울림복지회관 주변은 인적이 드물었다. 간간이 만난 주민들은 “제철 공장 연기 때문에 숨 쉬기 힘들다” “동네 바닥만 쓸면 쇳가루가 올라온다”고 했다. 대형 철강 회사에서 35년간 근무하고 은퇴했다는 김모(71)씨는 “사방이 뜨겁고 시끄러운 공장에서 일하다 보니 주변 친구들 모두 술로 하루를 마감하는 습관이 들었다”며 “은퇴하고 나서도 운동하는 게 익숙지 않다”고 했다.

    이날 오후 포항 북구 신광면 신광보건지소. 철길숲에서 주민들이 건강을 가꾸는 북구 신도시에서 차로 30분 떨어진 시골이다. 마을 이장의 안내 방송을 듣고 노인 10여 명이 보건지소를 찾았다. 이 마을 주민들은 일주일 중 화·목요일 이틀만 보건지소에서 기초적인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보건지소 관계자는 “중증 질환 진단이나 정밀 검사가 필요하면 버스를 타고 20분 이상 걸리는 시내로 나가야 한다”고 했다.

    포항 남·북구는 형산강을 사이에 두고 맞닿아 있다. 인접한 남·북구는 서울대 건강문화사업단의 ‘한국 건강 지수’ 조사에서 상위권을 차지했다. 다만 취약점도 있었다. 남·북구 지역 특성에 따라 취약점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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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일 오후 9시쯤 찾은 포항 북구 양학동 인근 철길숲. 밤늦은 시간이지만 인근 아파트 단지 주민들도 활기찬 모습./윤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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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스코와 현대제철·동국제강 등 철강 단지가 있는 남구는 젊은 노동자들의 흡연·음주율이 전국 평균보다 훨씬 높았다. 반면 일부 신도시 지역을 제외하면 농어촌 지역이 많은 북구는 의료·보건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해 고령층의 건강 관리가 문제였다. 농어촌과 산업단지가 공존하는 ‘도농(都農) 복합도시’가 대체로 겪고 있는 고민거리를 북구도 안고 있었다. 포항시 관계자는 “각 지역 특성을 반영한 건강 정책 수립을 위해 컨설팅을 신청했다”고 했다.

    보건복지부 등의 자료에 따르면, 남구의 흡연율은 19.5%, 고위험 음주율은 12.4%였다. 전국 평균을 훨씬 웃돈다. 반면 북구의 흡연율은 17.5%, 고위험 음주율은 10.1%로 모두 평균 이하였다. 반대로 걷기 실천율은 전국 평균이 50.6%였는데 남구가 46.8%, 북구가 60.3%였다. 남구 주민이 대체적으로 흡연·음주율이 높은 데다 걷기 운동은 덜 하고 있었다.

    반면 북구는 65세 이상 인구 1만명 당 노인 의료 복지 시설 정원이 148.24명으로 전국 평균(236.5명)에 크게 밑돌았다. 그 결과 만성 질환 조절률(첫 질환 진단 1년 뒤 정상 수치로 돌아오는 비율)도 하위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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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양인성


    지난달 27일 포항을 찾은 전문가 패널은 주민들의 음주·흡연율을 낮추기 위해 포항시가 직접 철강 회사들과 대책을 논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서울대 건강문화사업단 윤지현(식품영양학과 교수) 부단장은 “노동자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 문화부터 바꿔야 한다”며 “포항시와 철강 회사들이 협의체를 만들어 금주·금연 유인책을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조근희 한국건강학회 이사는 주민들의 걷기 문화를 유도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조 이사는 “지자체들이 이름만 거창한 테마파크를 앞다퉈 만들 게 아니라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편하게 걸을 수 있도록 세밀한 걷기 장려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포항시 남구에는 제철동에서 호미곶까지 이어지는 자전거 도로가 있었지만 도로 곳곳에 잡풀이 우거져 있었다. 북구도 신도시 지역 일부를 제외한 농어촌 지역에선 보행로가 잘 조성돼 있지 않아 걷기 운동을 하기가 어려웠다. 조 이사는 작년 10월 서울 남산 남쪽 기슭에 새로 개장한 1.45㎞ ‘남산 하늘숲길’을 예로 들면서 “길의 경사를 완만하게 해 누구나 걷기 편하도록 인프라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전문가 패널 배종훈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포항은 철강 산업 이후 도시를 이끌어가고 활기를 불어넣을 산업으로 바이오, 이차전지 등을 제시하고 있다”며 “포스텍 의대 신설 등을 시작으로 바이오 스타트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해 3차 병원 등 의료 인프라 투자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송승주 수원대 경제금융학과 교수는 “남구는 10년 전부터 고혈압·당뇨병 관리 센터(고당센터) 시범 사업에 참여해왔고 그 결과 만성 질환 관리 점수가 북구보다 높았다”며 “인접 지역들이 각기 성공한 건강 정책을 공유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김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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