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과 인간이 한글 문학 작품을 영어로 번역하는 대결을 펼쳤다”는 기사가 화제다. 한국문학번역원에서 한국 문학을 해외에 알리기 위해 국비로 진행하는 사업을 대상으로 한 전문가 테스트라서 관심이 더 컸다. 결과는 인공지능의 압승. 국가 예산의 효율적 사용을 위해 번역 사업 전반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릴 만하다.
그런데 테스트 대상 작품이 17세기 작가가 한문으로 쓴 <신독잠>이라는 점이 석연치 않았다. ‘잠(箴)’이라는 운문 문체로 성리학의 개념을 형상화한 내용과 표현을 현대 한국어로 살려내기란 쉽지 않다. 이를 영어로 번역하기 위해서는 한문 원작을 깊이 이해하는 전문가와의 협업이 필수적이다. 번역의 성패를 평가하는 일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영문과 교수 16명에게 한글 원문과 영어 번역문만을 주고 번역 평가를 맡겼다는 것은 애초에 비합리적이다.
예컨대 제시된 한글 작품만으로 ‘하늘’을 ‘Sky’로 옮길지 ‘Heaven’으로 옮길지 판단하는 것은 불완전하다. 방여(方輿)에 대응되는 원궁(圓穹), 즉 ‘둥근 하늘’에 담겨 온 지적 전통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남상(濫觴)’에서 이어지는 은유를 모르고는 ‘도천(滔天)’의 의미를 온전하게 파악할 수 없다. ‘옥루(屋漏)’가 <중용>에 인용된 <시경> 구절에서 비롯되어 신독과 연관되어 쓰여 온 어휘이고, 작가가 이를 문학적으로 변주함으로써 다시 생명력을 부여했다는 점 역시 번역과 평가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번역에도 텍스트와 독자에 따라 다양한 결이 존재한다. 정보 전달을 위주로 하는 동시대 언어의 번역인가, 문학적 감수성과 문화사적 맥락을 깊이 고려해야 하는 고전의 번역인가에 따라 접근의 태도와 속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번역의 질을 높이고 더 많은 이들이 혜택을 누리도록 노력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각 분야에서 인공지능의 능력을 더 높이고 바로잡기 위한 전문가의 기여가 더욱 필요하다. 대결이 아니라 진정한 협업이 필요한 시대다. 그리고 그 지속성을 위해 후속 전문가 양성에 대한 사회적 대책 마련에 시급히 머리를 맞대야 할 때이기도 하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더보기|이 뉴스,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 점선면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