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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24 (화)

    트럼프도 푸틴도… 헝가리 오르반 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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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달 총선… 野에 지지율 뒤져 위기

    조선일보

    21일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가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보수정치행동회의(CPAC)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미국 보수 진영의 대표적 정치 행사인 CPAC는 헝가리를 비롯해 호주·브라질·일본 등 세계 각국에서도 열린다. 총선을 앞두고 오르반이 CPAC에 참석하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영상 메시지를 보내 “꼭 크게 이겨야 한다”고 격려했다.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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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과 러시아가 다음 달 12일 총선을 치르는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를 위해 ‘지원 사격’에 나서고 있다. 러시아는 오르반을 겨냥한 암살 시도를 꾸며내 지지율을 반등시키는 구상을 마련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고위급 인사를 잇따라 헝가리에 보내 공개적으로 지지를 표현하고 있다.

    러시아 입장에서 유럽연합(EU)이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 엇박자를 내온 오르반은 유럽의 결속을 흔들 수 있는 ‘X맨’에 해당한다. 미국 역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코드’가 통하는 오르반을 유럽의 핵심 우군으로 본다. 이에 헝가리 총선을 둘러싸고 미·러가 맞붙는 이례적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미 워싱턴포스트는 21일 유럽 정보기관이 확보한 러시아 정보 당국 문건을 입수, 러시아가 헝가리 총선을 앞두고 오르반을 표적으로 하는 암살 미수극을 기획했다고 보도했다. ‘게임체인저’로 명명된 이 작전의 의도는 선거의 핵심 쟁점을 경제에서 안보로 바꾸는 데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2024년 미국 대선 과정에서 트럼프가 유세 중 총격을 받은 이후 지지율이 상승한 데서 착안한 것으로 보인다. 1998~2002년 총리를 지낸 뒤 2010년 재집권한 오르반은 만성적 경기 침체, 에너지 가격 상승, 부패 논란 등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오르반이 이끄는 여당 ‘피데스’는 친유럽·중도 성향 야당 ‘티서’에 9%포인트 가량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 당국과 연계된 여론 조작 업체는 오르반을 ‘주권의 수호자’로, 야당을 ‘EU의 꼭두각시’로 묘사하는 소셜미디어 캠페인도 준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업체는 2024년 서방 언론을 사칭한 가짜 뉴스 사이트를 운영하다 미 법무부 제재를 받은 곳이다.

    미국은 공개적인 방식으로 개입하고 있다. 시야르토 페테르 헝가리 외무장관은 JD 밴스 미국 부통령이 다음 달 초 헝가리를 방문한다고 밝혔다. 로이터는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밴스가 대부분 여론조사에서 페테르 머저르 티서 대표에게 뒤처지고 있는 오르반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기 위해 헝가리를 찾을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지난달에는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이 부다페스트를 찾아 “당신(오르반)의 성공이 우리의 성공”이라고 말했다. 수세에 몰린 오르반을 위해 사실상 선거운동을 해준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트럼프는 루비오의 방문에 앞서 소셜미디어에서 오르반을 “나의 진정한 친구”로 부르며 “완전하고 전적인 지지”를 선언했다. 지난해 11월 오르반이 백악관을 방문했을 땐 러시아산 석유·가스에 대한 제재를 1년 면제하기도 했다. 헝가리가 내륙 국가여서 러시아산 에너지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오르반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미국과 러시아의 이런 움직임은 오르반의 전략적 가치 때문으로 풀이된다. 헝가리는 EU와 나토 회원국이지만, 오르반이 이끄는 현 정권은 다른 회원국들과 번번이 엇박자를 내 왔다. 예컨대 헝가리는 지난 19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정상회의에서 우크라이나에 900억유로(약 156조원) 긴급 대출을 지원하려던 계획을 저지시켰다. 서방 정보당국은 시야르토 헝가리 외무장관이 EU 회의 때마다 러시아에 ‘실시간 보고’를 해왔다고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입장에서 오르반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유럽의 지원을 약화시키고, 유럽의 단결을 저해할 수 있는 카드에 해당한다.

    미국의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에서도 오르반을 이념적 동지이자 전략적 파트너로 본다. 폴리티코는 “매가 지지자들에게 오르반은 영감의 원천”이라면서 “이민에 대해 강경한 입장, ‘깨어 있는’ 문화 기관과의 투쟁, EU에 대한 반감, 우크라이나에 회의적인 태도는 오랫동안 미국 보수주의자들에게 통치 모델로 여겨져 왔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상호 관세 부과, 그린란드 영유권 논란 등으로 유럽에서 트럼프에 대한 반감이 높아지는 상황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헝가리가 친EU 정권으로 교체되면 트럼프와 매가 입장에서는 확실한 우군을 잃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빅토르 오르반 총리

    1963년생. 민주화 운동가 출신으로 초기에 개혁적 면모를 보였으나 총리 재집권 이후 우파 민족주의 성향으로 돌아섰다. 친(親)러시아 성향으로 분류되지만, 강경한 반이민 정책과 우크라이나 지원에 회의적인 모습 등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일맥상통한다는 평가도 있다.

    [안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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