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연설서 “철저히 배척·무시”
靑 “평화 공존 도움 안되는 언사”
북한 최룡해 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지난 23일 최고인민회의 제15기 제1차회의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고 있다. /조선중앙T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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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3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한국을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공인하고 가장 명백한 언사와 행동으로 철저히 배척하고 무시하면서 다루어 나가겠다”고 했다.
노동신문 등 북한 매체들은 24일 김정은이 전날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5기 제1차 2일 회의에서 “핵 보유국 지위를 절대불퇴로 계속 공고히 다지며 적대 세력들의 온갖 반공화국 도발 책동을 짓부수기 위한 대적(對敵) 투쟁을 공세적으로 벌일 것”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고 전했다.
이날 김정은은 미국이 “세계 도처에서 국가 테러와 침략 행위를 자행하고 있다”며 “적대 세력들은 핵을 포기하는 그 무슨 대가를 설교하며 우리에게 다른 것을 기대했지만 오늘의 현실은 적들의 감언이설을 배격하고 핵 보유를 되돌릴 수 없게 영구화한 전략적 선택과 결단이 얼마나 정당한가를 엄연히 실증해주고 있다”고 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미국이 베네수엘라와 이란을 공습한 것을 김정은과 북한 지도부가 매우 심각하게 인식하고 자신들의 핵무기 고도화 선택이 옳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적 보상이나 대북 제재 해제를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유도하는 협상은 더욱 어려워졌다는 전망이 나온다.
청와대는 이날 김정은의 시정 연설에 대해 “정부는 적대적 언사가 지속되는 것은 평화 공존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라며 “정부는 긴 시야를 갖고 한반도 평화 공존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김정은, 美·이란 전쟁 언급하며 “핵 보유가 정당하다는 실증”
이번 최고인민회의에서 국무위원장에 재추대되며 ‘집권 3기’를 연 김정은은 23일 시정 연설에서 “예측 불가능성은 오늘의 세상에서 우리가 유일하게 예측할 수 있는 정세 전망”이라며 “예측 가능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절대로 변할 수 없는 제국주의의 침략적 본성뿐”이라고 했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전쟁을 그만큼 민감하게 보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러면서도 김정은은 이란과 달리 ‘핵무기’를 보유한 상태에서 경제 발전을 추진 중이라는 자신감을 드러냈다. 연설 앞부분에서 김정은은 “핵 포기가 없으면 번영이 없을 것이라던 적대 세력들의 억지스러운 요설과 궤변을 과학적인 현실로 여지없이 분쇄했다”며 자력 갱생과 핵 보유를 함께 추진한 것이 “매우 정당했다”고 말했다. 김정은은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우리 국가의 주변에 핵 전략 자산들을 상시적으로 끌어들이며 지역의 안전 근간을 흔들고 있지만 사실상 이것은 우리에게 별로 새로운 일이 아니다”라면서 “더 이상 우리 국가는 위협을 당하는 나라가 아니며 필요하다면 위협을 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연설 후반부에서 김정은은 ‘핵무력 강화’와 ‘외교’를 모두 추진할 뜻을 보였다. 김정은은 트럼프 미 대통령을 직접 비난하지 않았다. 또 북한이 “지금까지 평화를 거절해 본 적이 결코 없다”며 “적수들이 대결을 선택하든, 평화적 공존을 선택하든 그것은 그들이 택할 몫이고 우리는 그 어떤 선택에도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했다. 대미 대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김정은은 “국가의 안전과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담보하는 데서 가장 확실하고 영구적이며 믿음직한 선택안은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최강의 힘의 수단을 틀어쥐는 것”이라며 “자위적 핵 억제력을 더욱 확대 진화”시키겠다고 했다. ‘핵 보유국’ 지위를 인정받는 것을 전제로 대외 정책을 해나가겠다는 것이다.
북한이 비서구권 국가들과 다각적 외교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김정은은 이날 “다극(多極) 세계 건설은 더욱 힘 있게 추동될 것”이라며 “지난 시기의 낡은 기준, 낡은 잣대에 맞춰졌던 외교 관행에서 벗어나 새로운 국격과 국위에 상응한 외교 전술과 대외 활동 방식을 구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은은 지난해 9월 중국 전승절 80주년 기념 열병식에 참석하며 처음으로 다자(多者) 외교 무대에 데뷔했고, 베트남·라오스 등 전통적 사회주의 우방국과도 적극적 외교를 했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도 25~26일 북한을 첫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이번 회의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 헌법’이란 명칭 중 ‘사회주의’를 삭제했는데, ‘정상 국가’로 행세하며 외교 활동 폭을 넓히기 위해서란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남북 관계에 대해 김정은은 “우리 공화국을 건드리는 한국의 행위에 대해서는 추호의 고려나 사소한 주춤도 없이 무자비하게 그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며 단절 상태를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남북 교류가 북한 정권의 안정에 도움이 안 된다는 확고한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정은은 “사회주의 생활양식에 배치되는 이색적이고 불건전한 요소들이 우리 인민들과 새 세대들을 오염시킬 수 없게 행정적·법적으로 강한 보호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고, 북한 사회의 최소 구성 단위인 인민반 규모 개편과 경찰 제도 도입도 지시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강화된 법 집행을 통해 내부 불만 세력을 철저히 통제하겠다는 포석”이라고 했다. 경찰 제도를 신설하고 ‘국가보위성’을 ‘국가정보국’으로 변경한 것 등은 사회 통제를 세분화·전문화하는 동시에 ‘정상 국가’로 보이려는 시도라는 분석도 있다.
북한은 이번 최고인민회의에서 헌법 개정이 논의됐다면서도 그 내용은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았다. “한국을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공인”한다는 김정은의 발언이 헌법에 반영됐을지를 두고는 의견이 엇갈린다. 임 교수는 “헌법에 한국을 명실상부한 ‘제1의 주적’으로 반영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반면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 석좌교수는 “적대적 두 국가를 헌법 조항으로 명문화했다면 그에 대한 언급이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김민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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