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광장의 역사
2026년 3월 21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방탄소년단(BTS) 컴백 공연이 열리고 있다. 이날 BTS는 정규 5집 ‘아리랑’의 타이틀곡 ‘SWIM’을 비롯한 신곡 무대를 선보였다. 미디어파사드 조명이 비친 광화문과 경복궁, 무대 위 BTS, 세종대왕 동상이 한 화면에 담겼다. / 고운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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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광화문광장은 방탄소년단(BTS)의 무료 컴백 공연으로 세계의 시선을 끌어모았다. 넷플릭스를 통해 생중계된 ‘BTS 컴백 라이브: 아리랑’은 공개 직후 77개국 넷플릭스 영화 부문 1위에 올랐다. 26만 명 운집 전망은 빗나갔지만, 권력과 투쟁의 상징이던 광화문이 전 세계 대중이 동시에 접속하는 K-컬처의 무대로 변모할 수 있음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광화문은 한국 현대사의 주요 장면이 축척된 공간이다. 경복궁 정문 앞에서 세종대로로 이어지는 이 일대는 오랫동안 권력과 민주주의 상징으로 기능해 왔다. 조선시대에는 궁궐의 위엄을 드러내는 축선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총독부 건물이 들어서며 상징 체계가 훼손됐다. 이후 복원과 재정비를 거치며 역사성과 시민성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재구성됐다.
하지만 광화문의 성격을 바꿔온 것은 설계나 명칭만이 아니었다. 그때마다 이곳을 채운 군중이 광장의 의미를 새로 써왔다. 같은 장소가 어떤 날은 애도의 공간이 되고, 어떤 날은 민주주의의 광장이 되며, 어떤 날은 통제의 현장이 되고, 또 어떤 날은 축제의 무대로 변한다는 점에서 광화문은 한국 사회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공공의 장소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둔 2015년 4월 16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범국민 추모문화제’ 이후, 청와대를 향하던 시민들이 경찰 차벽에 가로막힌 가운데 일부 시민들이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 설치된 세월호 분향소 천막에 모여있다. / 고운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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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16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범국민 추모문화제’ 뒤 시민들은 청와대를 향해 행진에 나섰지만, 경찰은 세종대로 일대에 차벽을 세워 길을 막았다. 광화문으로 향하던 추모 행렬은 곳곳에서 가로막혔고, 결국 청계천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했다. 애도의 동선이 우회와 대치로 바뀐 날, 광화문은 추모의 공간에서 투쟁의 공간으로 급격히 전환됐다.
2016년 11월 12일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항의하고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민중총궐기 참가 시민들이 서울광장과 세종대로, 광화문 일대를 가득 메우고 있다. / 고운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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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말부터 2017년 봄까지 이어진 국정농단 촛불집회는 광화문의 상징성을 다시 바꿔놓았다. 촛불집회는 2016년 10월 29일부터 2017년 4월 29일까지 23차례 이어졌고, 전국 누적 참가 인원은 약 1700만 명으로 집계됐다. 그 정치적 귀결은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결정이었다. 이 시기 광화문은 분노의 현장이면서도 연대와 가족 단위 참여가 공존한 민주주의의 광장으로 기록됐다.
2020년 10월 9일 한글날,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서울 도심 대규모 집회가 금지된 가운데 서울 광화문 일대에 경찰 차벽과 펜스가 설치돼 있다. 개천절에 이어 불법 집회 가능성에 대비한 통제로 도심은 이례적으로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고운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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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9일 한글날, 광화문은 코로나19 시대 통제의 풍경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서울시와 경찰은 서울 도심 집회에 금지 조치를 내렸고, 광화문 일대에는 차벽과 펜스, 검문과 통제선이 다시 등장했다. 개천절에 이어 반복된 봉쇄 조치는 국가가 펜데믹 시기에 공공 공간과 시민의 이동, 집회의 자유를 어떻게 관리하는지 보여주는 상징적 현장임을 드러냈다.
2022년 8월 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재개장을 하루 앞두고 막바지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광화문광장은 1년 9개월간의 재구조화 공사를 거쳐 다음 날인 8월 6일 총면적 4만300㎡ 규모의 공원형 광장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드론 비행 및 촬영은 사전 허가를 받아 진행했다. / 고운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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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청와대 개방은 광화문의 기록 환경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윤석열 정부 출범일인 2022년 5월 10일 0시, 청와대를 중심으로 한 P-73 비행금지구역이 일시 해제됐고, 같은 날 정오 청와대는 74년 만에 일반에 개방됐다. 이로써 허가를 전제로 청와대·경복궁·광화문 일대를 상공에서 조망하고 드론으로 기록할 수 있는 하늘길도 한동안 열렸다. 오랫동안 지상에서만 보던 권력의 공간과 도심의 축선을 한 프레임에 담을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이는 단순한 개방을 넘어 기록 방식의 변화를 뜻했다. 다만 이 공역은 이재명 대통령의 청와대 복귀가 공식화된 2025년 12월 말 이후 다시 조정됐고, 서울시는 2026년 3월 변경된 P-73 내용을 별도로 공지했다.
2025년 3월 1일 서울 광화문 세종대로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가 열리고 있다. 106주년 3·1절을 맞아 열린 이날 집회에서 참가자들은 탄핵 기각을 촉구했고, 경찰은 찬반 집회 분리를 위해 경찰버스와 경력을 배치했다. / 고운호 기자 |
광화문은 2025년 다시 격렬한 정치의 무대가 됐다. 출발점은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당시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였다. 이후 탄핵 정국 속에서 서울 도심은 장기간 집회의 공간이 됐고, 특히 2025년 3월 1일에는 광화문과 여의도 일대에서 탄핵 찬반 집회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렸다. 경찰 비공식 추산으로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는 최대 12만 명에 달했다. 같은 장소가 서로 다른 구호와 군중으로 채워졌다는 사실은 광화문이 특정 진영의 전유물이 아니라 여론의 균열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장소임을 보여준다.
2026년 3월 2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BTS의 무료 컴백 공연 ‘아리랑’이 열리고 있다. 정치 집회의 무대였던 광화문은 이날 전 세계가 주목한 K-컬처 플랫폼으로 변모했고, 강화된 안전 관리 속에서 축제와 통제가 겹쳐지는 동시대 도시 광장의 풍경을 보여줬다. 파노라마로 촬영했다. / 고운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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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올해 3월, 광화문은 BTS 공연 무대로 탈바꿈했다. 과거 이 공간을 규정한 것이 청와대를 향한 행진과 차벽, 촛불과 태극기, 방역 통제와 대치의 이미지였다면, 이제는 글로벌 팬덤과 대형 공연, 미디어 생중계와 도시형 이벤트가 같은 장소를 채우고 있다. 이태원 참사 이후 밀집 사고에 대한 경계가 일상이 된 시대에, 이번 공연이 공권력의 통제와 강도 높은 안전관리 속에서 운영됐다는 사실은 오늘의 광장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광화문광장의 본질은 고정돼 있지 않다. 바로 그 가변성 때문에 특별하다. 광화문은 한국 현대사를 가장 선명하게 비추는 거울이자, 이곳을 점유하는 사람들에 따라 끊임없이 색을 바꾸는 카멜레온 같은 만인의 광장이다.
[고운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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