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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29 (일)

    가상자산거래소 규제, 가장 센 칼부터 꺼내선 안 된다[김현아의 IT세상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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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헌법재판관 “사후적 지분 제한은 위험”

    대주주 적격성 심사·내부통제가 먼저

    금융안정 우려 이해되지만

    지분 규제는 최후수단

    강한 규제보다 정교한 통제가 해법

    [이데일리 김현아 기자] “이미 적법하게 운영돼 온 민간 기업과 개인에 대해, 사후적으로 지분을 제한하고 자유를 박탈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최근 한국헌법학회 이슈 세미나에서 나온 이영진 전 헌법재판관의 이 지적은 지금의 가상자산거래소 규제 논란의 본질을 찌른다. 이 문제는 업계 반발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공익을 이유로 어디까지 민간의 재산권과 경영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지 묻는 사안이다.

    금융시장 안정과 이용자 보호는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그런 공익만으로 기존 거래소 대주주의 지분을 사후적으로 강제 제한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헌법 질서에서 강한 규제는 마지막 수단이어야 한다. 덜 침해적인 대안이 있는데도 가장 센 규제부터 꺼내 들면 비례성과 최소침해 원칙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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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의 우려는 이해되지만, 결론은 성급하다

    정부의 고민도 이해할만 하다.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달러 기반 코인과 맞물리면 자본 유출과 환율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문제가 생겼을 때 누가 책임지고 누가 통제할지도 불분명하다. 은행은 감독 수단이 분명하지만, 가상자산 사업자는 해외 법인으로 빠지거나 책임 소재가 흐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우려가 크다고 해법까지 자동으로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리스크가 크니 지분부터 자르자는 식이라면, 정교한 규제가 아니라 성급한 규제다.

    강제적 지분 제한은 가장 강한 규제다. 그렇다면 먼저 물어야 한다. 그 전에 할 수 있는 조치를 정말 다 해봤는가. 답은 아직 아니다.

    오는 8월부터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강화하는 특정금융정보법 개정안이 시행된다. 먼저 그 실효성부터 확인해야 한다. 대주주의 평판, 재무건전성, 이해상충 가능성, 자금 출처, 내부자 통제 능력을 촘촘히 보는 것이 우선이다. 지분율 숫자를 자르는 것보다 실제 위험 행위를 더 직접 겨냥하면서도 침해는 덜하다.

    해외도 비슷하다. 가장 엄격하다고 알려진, 미국 뉴욕주의 비트라이선스는 주요 주주에 대한 지문채취까지 요구하지만 지분 상한을 규제하진 않는다. 유럽연합의 MiCA도 10% 이상 적격지분 보유자에 대한 평판·재무건전성 평가를 두고 있다. 일본 역시 거래소 등록·감독은 엄격하지만 주요 주주 지분율 상한 규정은 없다. 해외가 안 하니 우리도 못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지분 제한이 유일하거나 선행돼야 할 수단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통제다

    더 중요한 것은 지분율 숫자가 아니라, 그 지분이 어떻게 행사되고 통제되느냐다. 대주주 리스크의 본질은 숫자보다 권한의 행사 방식에 있다. 그렇다면 규제의 초점도 숫자가 아니라 행위에 맞춰져야 한다.

    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거래 공시, 이용자 예치금과 가상자산 보관 현황 공시, 상장 심의 절차의 독립성 확보, 대주주에 대한 신용공여 제한, 일정 규모 이상 지분 변동과 경영권 이전 시 승인, 주기적 적격성 유지 심사 같은 장치가 더 직접적이다. “얼마까지 가질 수 있느냐”보다 “가진 힘을 어떻게 쓰지 못하게 막을 것이냐”가 더 중요하다.

    사외이사 선임, 감사위원회 설치, 지배구조 내부규범 제정도 같은 맥락이다. 위험한 것은 대주주 그 자체가 아니라, 대주주를 견제할 장치가 없는 구조다.

    업계도 “혁신을 막는다”, “벤처를 죽인다”는 말만 반복해선 설득력이 약하다. 정부가 금융안정과 책임소재를 걱정한다면, 업계도 대주주 적격성 심사 강화, 내부통제 명문화, 특수관계인 거래 제한, 공시 확대, 이사회 독립성 강화, 이용자 자산 보호 장치 같은 대안을 내놔야 한다.

    소유 분산이 필요하다면 IPO나 전략적 투자 유치를 통해 성장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지분을 분산시키는 방법도 있다. 실제로 코인베이스도 상장 이후 창업자·초기 투자자 중심 구조에서 기관투자가 비중이 커지는 방향으로 분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강한 규제가 아니라 정확한 규제다

    가상자산 시장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가장 센 규제부터 들이밀어도 되는 예외지대는 아니다. 강제적 대주주 지분 제한은 출발점이 아니라 마지막 카드여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누가 얼마나 가질 수 있느냐”를 먼저 자르는 정치가 아니다. “어떻게 통제하고 어떻게 책임지게 할 것인가”를 설계하는 정책이다. 순서를 거꾸로 세우면 규제는 명분을 잃고, 시장은 신뢰를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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