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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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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깊이보기]탐 루앙 동굴의 난민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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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너희들 모두 몇 명이니?” “13명이에요.” “훌륭하구나.”

태국 ‘야생 멧돼지’ 유소년 축구팀 13명의 기적 같은 생환 스토리는 이 짧은 대화에서 시작했다. 조난 열흘째인 지난 2일 영국인 구조대원 릭 스탠턴과 존 볼랜던이 처음으로 실종된 아이들과 코치를 발견했다. 두 사람은 태국어를 할 줄 몰랐다.

축구팀의 14세 아둘 삼온이 나섰다. 그는 스탠턴과 볼랜던에게 먹을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신들이 얼마나 오래 갇혔는지도 설명했다. 동굴에 갇힌 13명 중 아둘 혼자 영어회화가 가능했다.

■구조 희망 밝힌 14세 아둘

“저는 아둘이에요. 건강은 괜찮습니다.” 소년은 차분한 목소리로 스탠턴과 볼랜던을 안심시켰다. 조용히 합장하며 인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상대방에게 존경을 표시하는 태국 전통 인사법 ‘와이’였다.

아둘을 가르친 한 교사는 AFP통신 인터뷰에서 “아둘하면 그의 예의바른 태도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면서 “그 아이는 학교 복도에서 마주치는 모든 교사들에게 와이로 인사했다. 매번 그랬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아둘이 그가 다니는 반위앙판학교 최고 우등생이었다고 소개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아둘이 피아노와 기타,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배구와 풋살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고 전했다. 호주 매체 뉴스닷컴은 아둘이 영어와 태국어, 중국어 등 5개 국어를 할 줄 안다고 보도했다.

예의바른 우등생 아둘은 침착한 태도와 유창한 영어실력으로 구조작전에 크게 기여했다. 동굴 속 아이들은 아둘을 통해 처음으로 외부세계와 접촉할 수 있었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희망을 얻었다. 이들의 생환을 기원하던 수많은 태국 국민들도 아둘의 목소리에 용기를 냈다.

아둘은 태국의 영웅이 됐다. 그러나 그는 태국인이 아니다. 세계 어디에도 그의 나라는 없다. 아둘은 신분증이나 여권을 발급받을 수 없는 무국적자다. 어른이 돼도 법적으로 결혼을 인정받지 못하고, 은행 계좌도 개설할 수 없다. 투표권도 가질 수 없다. 아둘은 프로 축구 선수가 되고 싶어하지만 장담할 수 없다. 태국 국가대표 유니폼도 입을 수 없다. 아둘은 미얀마에서 넘어 온 난민소년이다.

■마약의 땅 피해 왔지만

아둘은 미얀마 산간 소수민족인 와족 출신이다. 와족은 미얀마 북동부 ‘와’ 자치주에 집단 거주한다. 1989년 미얀마 정부와 평화협정을 맺어 자치권을 얻었다. 와족 무장세력인 연합와주군(UWSA)은 자치권을 얻기 위해 수십년 동안 군사정부와 싸웠다. 자치권을 얻은 연합와주군은 아편 재배로 돈을 벌었다. 1990년대에는 지역 마약패권을 두고 다른 마약조직과 전쟁을 벌였다. 와주는 세계 최대 마약산지로 악명 높았던 ‘골든트라이앵글’의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와주에서 나오는 마약은 국경을 접하는 태국을 비롯해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아둘의 부모는 8년 전 어린 자식을 데리고 태국으로 넘어왔다. 폭력과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향땅 와를 등졌다. 아이만큼은 더 나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결단이었다.

와주는 지금도 미얀마 최대의 마약 산지로 분류된다. 최근 들어 아편과 헤로인 생산은 줄었지만 대신 필로폰 생산이 크게 늘었다. 마약의 땅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인신매매 같은 범죄도 횡행했다. 와주의 소년들은 게릴라 군대에 끌려갈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아둘의 부모는 국경을 넘어 태국 치앙라이주 매사이에 자리 잡았다. 지역 침례교회에 아둘을 맡겼다. 목사 부부가 부모 대신 아둘을 교육시켰다. 와주와 국경을 접하는 매사이에서 이런 사례는 드물지 않다. 매사이 반위앙판학교 교장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학생들 중 20%가 아둘 같은 무국적자”라고 말했다. 호주 언론인 짐 폴라드는 현지 일간지 퍼스나우에 “와주의 가난한 부모들이 몰래 국경을 넘어와 매사이에 자식을 버리고 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적었다.

■국적 없는 코치와 아이들

코치 에카폰 찬타웡(25)도 미얀마에서 넘어온 무국적자다. 에카폰은 고향 마을을 덮친 감염병으로 10세 때 고아가 됐다. 12세 때 불교 사원에 들어가 수도승으로 살다가 3년 전 매사이로 넘어왔다. 병든 할머니를 돌보기 위해서였다. 이곳에서 그는 축구팀 아이들을 만났다.

야생 멧돼지 축구팀 사람들은 “에카폰이 그 자신보다 더 아이들을 사랑했다”고 증언했다. 에카폰이 자기 때문에 아이들까지 동굴에 갇혔다며 사죄했을 때 부모들은 “우리는 절대 그를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에카폰이 동굴에서 나오면 우리는 그의 상처 입은 마음을 보듬어야 한다”고 답했다. 현지 매체들은 축구팀 아이들이 에카폰을 우상처럼 떠받들었다고 보도했다.

에카폰은 모두의 사랑과 신뢰를 받는 사람이었지만 정식 코치는 되지 못했다. 국적이 없어 코치 자격증을 취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야생 멧돼지 축구팀을 세운 노파랏 칸타봉은 AFP통신 인터뷰에서 “에카폰에게는 국적도 나라도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노파랏은 아둘과 에카폰을 포함해 동굴에 갇힌 13명 중 4명이 무국적자라고 말했다. 그 신분 탓에 아이들은 치앙라이주 바깥에서 벌어지는 축구 대회에 참가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무국적자는 마음대로 여행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제축구연맹(FIFA)는 멧돼지팀 아이들을 월드컵 결승전에 초대하겠다고 했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맨체스터유나이티드는 다음시즌 홈구장 올드트래퍼드 경기에 아이들을 부르겠다고 했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아이들은 초대에 응할 수 없다. 여권이 없어 나라 바깥으로 나갈 수도 없기 때문이다. 태국 무국적자 문제에 천착해온 폴라드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월드컵 티켓이 아니라 여권과 신분증”이라고 지적했다.

아둘이나 에카폰 같은 태국 내 무국적자는 44만명에 달한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이들까지 포함하면 최대 35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태국 정부는 2024년까지 무국적자들에게 국적을 부여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한나 맥도널드 유엔난민기구(UNHCR) 대변인은 AFP통신에 “조금씩 진전이 이뤄지고 있지만 태국 무국적자들은 여전히 기본적인 권리를 제한받고 있다”고 말했다.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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