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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조태진의 실전기업법무] 숨고르기에 들어간 즉시연금 논란 : 결국 약관해석이 승부를 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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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믹리뷰

생명보험사들을 대표하는 삼성생명과 금감원 입장을 대변하는 보험계약자 간의 즉시연금 미지급금에 관한 ‘채무부존재확인’ 소송은 소송당사자인 보험계약자의 ‘민원 취하’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였다. 지난 13일 삼성생명은 ‘만기지급형 즉시연금’이 지나치게 적게 지급되었다며 금감원에 민원을 제기한 보험계약자를 상대로 ‘삼성생명이 해석한 약관내용에 따라 지급하기로 한 범위를 넘어서는 금액에 대해서는 삼성생명이 이를 보험계약자에게 지급할 의무가 없음을 확인한다.’는 취지의 ‘채무부존재확인’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관련기사☞삼성생명, 즉시연금 민원인 상대 민사소송 제기…금감원과 정면충돌).

만약 소송이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면 소송을 당한 피고는 금감원의 소송지원을 받아 ‘보험계약자에게 지급하라고 금감원이 삼성생명에게 명한 범위의 금액을 지급하라’는 취지로 반소를 제기하였을 것이고, 피고가 승소하였다면 금감원은 이번 소송을 근거 삼아 모든 생명보험사들을 상대로 같은 처지의 다른 보험계약자들도 ‘일괄구제’하라는 방침을 강행했을 것이다.

그러나 소송의 당사자인 보험계약자는 사실상 생명보험사들과 금감원 사이의 대리전 양상을 보이고 있는 이번 소송으로 인해 자신의 존재가 언론에 노출되는 것에 부담을 느껴 금감원에 제기한 삼성생명에 대한 민원을 취하하였다. 이 경우 삼성생명은 더 이상 보험계약자를 상대로 ‘채무부존재확인’ 소송을 이어가기 어렵다. ‘채무부존재확인’ 소송은 소송을 제기한 원고가 직면한 불안이나 위험을 제거하기 위하여 그 권리ㆍ의무 관계의 존부를 조기에 확정해야 할 법률상의 이익이나 필요성이 있을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형태의 소송인데, 보험계약자가 삼성생명에 대한 민원을 취하한 이상 원고인 삼성생명으로서는 더 이상 제거해야 할 불안이나 위험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이른바 ‘확인의 이익’이 없어 소송을 유지할 실익도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일촉즉발의 위기상황까지 갔던 이번 소송은 보험계약자의 민원 취하와 삼성생명의 소 취하로 일단 일단락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금감원이 다음 달부터 홈페이지에 즉시연금 분쟁을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는 간편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한 만큼 금감원을 통한 민원 제기는 늘어날 것으로 보이고, 민원을 제기한 보험계약자에 대해서는 ‘채무부존재확인’ 소송을 통해 적극적으로 다툰다는 것이 삼성생명의 입장인 만큼 생명보험사들과 금감원의 즉시연금 관련 논란은 오히려 이제부터 시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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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헌 금융감독원장.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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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진 대로 이번 논란의 쟁점은 ‘만기지급형 즉시연금’의 약관에 보험료에서 공제하는 사업비와 위험보험료에 대한 언급이 없고 연금월액을 어떤 식으로 계산하는지에 대한 내용도 빠져 있어 연금액 계산 시 만기보험금 지급 재원을 차감할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삼성생명 측은 해당 약관 별표1에서 “「연금계약 적립액」은 이 보험의 ‘보험료 및 책임준비금 산출방법서’에서 정한 바에 따라 계산 한 금액으로 합니다.”라고 명시까지 한 마당에 단지 약관 자체에 구체적인 산식이 드러나 있지 않다는 이유로 약관 자체를 무효로 보는 것은 과한 해석이라는 주장이다.

이 같은 논란은 언뜻 2년 전 생명보험사들을 충격으로 내몰았던 이른바 ‘자살보험금’ 사태를 연상하게 한다. 당시 생명보험사들은 2003년부터 2010년까지 판매한 ‘재해사망특약’ 약관에 기재되어 있었던 ‘2년이라는 면책기간이 지나면 자살 사망자에 대해서도 보험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의 규정은 약관 제정 과정에서 부주의하게 들어간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했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엄연히 존재하는 특정 약관조항에 대하여 약관해석에 의하여 이를 무의미한 규정이라고 하기 위하여는 평균적인 고객의 이해가능성을 기준으로 그러한 점이 명백하여야 하는데, 위 조항은 자살의 경우 원칙적으로 우발성이 결여되어 보험사고인 재해에 해당하지 않지만, 예외적으로 책임개시일로부터 2년이 경과된 후에 자살한 경우 이를 보험사고에 포함시켜 보험금 지급사유로 본다는 취지로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약관 해석에 관한 작성자 불이익의 원칙에도 부합한다는 취지로 판단하였다(대법원 2016. 5. 12. 선고 2015다243347 판결 참조).

만약 같은 잣대를 이번 사건에도 적용해 본다면, 삼성생명 등 생명보험사들은 연금계약 적립액 산정방식 등 ‘만기지급형 즉시연금’에서 중요한 사항으로 평가될 수 있는 요소에 대해서는 만연히 이를 “보험료 및 책임준비금 산출방법서“를 참고하라며 구체적인 설명을 생략하기 보다는 약관만 보더라도 상품의 특성이 파악되고 보험소비자가 추후 지급받을 수 있는 보험금액이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능한 정도에 이르렀어야 했을 것이다. 앞서 대법원 판결도 언급했다시피 해당 약관이 약관으로서의 충분한 역할을 다하였느냐의 기준은 평균적인 고객의 이해가능성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이다. 취임 일성으로 ‘만기지급형 즉시연금’ 과소지급을 지적한 윤석헌 신임 금감원장이 과연 이번 논란을 성공적으로 해결해 금융소비자보호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조태진 법조전문기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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