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04 (수)

이슈 강제징용 피해자와 소송

대법 "강제징용 피해자, 일본 기업이 배상해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일본 기업이 일제 때 강제징용됐던 피해자들에 대해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첫 확정판결이 나왔다. 고(故) 여운택씨 등이 일본 기업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낸 지 13년 8개월 만에 대법원의 판단이 나온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30일 오후 여씨 등 4명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재상고심에서 신일철주금이 여씨 등에게 각 1억원씩 배상하도록 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인해 여씨 등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됐는지였다. 대법관 다수는 이에 대해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기업에 대한 위자료 청구권"이라며 "청구권 협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봤다. 김재형·김선수 대법관은 "다수 의견의 입장이 조약 해석의 일반 원칙에 비춰 타당하다"는 보충 의견을 냈다.

이기택 대법관은 "2012년 대법원의 판결에서 이미 손해배상 청구권이 한·일 청구권 협정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며 "해당 판결의 기속력에 의해 재상고심인 이 사건에서도 같은 판단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취지의 별개 의견을 냈다.

또 김소영·이동원·노정희 대법관은 "여씨 등의 손해배상 청구권도 한·일 청구권 협정의 적용 대상에는 포함되지만,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이 포기된 것에 불과하다"며 "여씨 등은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우리나라에서 손해배상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취지의 별개 의견을 냈다.

반면 권순일·조재연 대법관은 "여씨 등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한·일 청구권 협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되고,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만이 포기된 것이 아니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여씨 등의 권리 행사도 제한되는 것"이라는 취지의 반대의견을 제시했다.

이 사건은 21년 전인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씨와 신천수씨가 그해 12월 24일 일본 오사카지방재판소에 신일철주금과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2001년 원고 패소 판결이 내려졌고, 이 판결은 항소심을 거쳐 2003년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확정됐다.

여씨 등은 2005년 서울중앙지법에 같은 취지의 소송을 냈다. 1심과 항소심은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도 불구하고 개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존재하지만, 배상시효가 지났다는 판단이다. 또 일본제철과 신일본제철이 같은 회사가 아니라고 봤다. 같은 사안에 대한 일본 법원의 판결 효력이 국내에도 적용된다는 것도 기각 판단의 근거가 됐다.

판결은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2012년 대법원 1부(당시 주심 김능환 대법관)는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환송했다. 여씨 등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되지 않았고, 시효도 지나지 않았다는 판단이다. 또 일본 법원의 판결은 '일제강점기의 강제동원은 불법'이라고 보고 있는 우리 헌법의 핵심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어서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봤다.

파기환송심은 대법원 판결 취지대로 배상 책임을 인정해 신일철주금이 여씨 등 4명에게 각각 1억원씩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에 신일철주금이 불복하며 대법원이 다시 사건을 심리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대법원의 2012년 판결 이후 학계 등에서 찬반을 둘러싸고 여러 논의가 있었다"며 "이번 판결은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 청구권은 한·일 청구권 협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경묵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