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단 “강제집행보다 우선 화해 제안할 것”
일제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미쓰비시중공업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 대법원 판결에서 승소한 피해자 김성주 할머니가 29일 서울 서초구 서울변호사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이재문기자 |
일제 근로정신대 피해자인 김성주(89) 할머니는 근로정신대와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준 대법원 확정 판결에 대해 “20년 넘게 저희들을 도와준 (한국과 일본의 변호사, 단체 등) 선생님들께 정말로 감사하다”면서도 일본 정부에 진정한 사과와 보상을 촉구했다.
김 할머니는 29일 서울 서초구 서울변호사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일본에 갔다 왔다는 이유만으로 남편한테 ‘일본군위안부’란 말을 들으며 ‘거짓말을 한다’고 맞기도 많이 맞았다”고 굴곡진 세월을 회상했다.
김 할머니를 비롯한 피해자들은 “일본에 가면 상급 학교에 갈 수 있고 돈도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1944 ~ 1945년 미쓰비시의 나고야항공기 제작소 도토쿠 공장에서 강제 노동에 시달렸다. 김 할머니는 절단기에 손가락이 잘리는 상해를 입고도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강제징용 피해자 유족들은 감격과 회한이 교차했다. 히로시마의 미쓰비시 기계 제작소, 조선소 등에 끌려간 이들 피해자는 호흡 곤란과 피부 질환 등 피폭 후유증이란 이중고를 겪었다.
2011년 숨진 고 이근목씨의 아들 이길훈(73)씨는 “기쁘다”면서 “이 기쁨을 돌아가신 아버지님께 꼭 전해 드리겠다”고 말했다. 이씨는 대법원에도 감사를 표했다.
2001년 숨진 고 박창환씨 아들 박재훈(72)씨는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날”이라면서 “한 분이라도 살아 계셨을 때 이런 결과가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다 작고하셔서 참담하다”고 소감을 말했다.
일제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미쓰비시중공업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 대법원 판결에서 승소한 피해자 김성주 할머니가 29일 서울 서초구 서울변호사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이재문기자 |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의 소송을 대리한 이상갑 변호사도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는 법언을 환기하며 “만시지탄”이라고 유감을 표명했다. 이 변호사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2000년 5월1일 부산지법에 소장을 낸 지 18년여 만에 이번 판결이 나왔는데 그 사이 당사자들은 숨졌다”면서 “이에 대해 대법원이 판결 주문과는 별도로 입장을 밝혔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지적했다.
이희자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공동대표는 2000년 9월27일 부산지법에서 열린 첫 재판에 참석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생전 모습을 찍은 사진을 든 채 “피해자들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가져왔다”면서 목이 메어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미쓰비시중공업(구 미쓰비시)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이번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까지는 일본의 변호사와 지식인, 시민 단체들의 노력이 있었다.
이치바 준코 ‘한국원폭피해자들을 돕는 시민모임’ 회장은 “원고들 말고도 피해자들이 많다”면서 “승소하면 문제가 다 해결될 줄 알았는데 (위자료를 받기 위해 미쓰비시중공업과) 또 싸워야 하니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힘을 합쳐 끝까지 싸우겠다”고 밝혔다.
일제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미쓰비시중공업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 대법원 판결에서 승소한 피해자 김성주 할머니가 29일 서울 서초구 서울변호사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닦고 있다.이재문기자 |
다카하시 마코토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 지원회’ 공동대표도 “지금 아베 신조 정권 아래서는 미쓰비시중공업에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이행하라고 하는 데 태산 같은 벽이 있는 것 같다”면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그 벽을 향해 달걀을 던지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이번 대법원 판결로 피해자들은 1인당 8000만∼1억5000만원의 위자료를 배상 받을 수 있게 됐지만 험난한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상갑 변호사는 “피해자들이나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단체, 변호사들이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라는 건 이치에 맞지 않고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면서 정부에 적극적인 대응과 외교적 노력을 주문했다. 중국의 피해자들은 일본에서 똑같이 패소 확정 판결을 받고도 일본 기업으로부터 배상을 받았는데, 이는 한국 정부와 중국 정부의 태도 차이 때문이란 설명이다.
다만 이 변호사는 “2012년까지 2년간 미쓰비시중공업과 화해를 위한 협상을 17차례에 걸쳐 하다가 미쓰비시중공업이 성의 없는 태도를 반복해 무산됐는데, 그때와 상황이 달라졌으니 피해자들과 화해하길 소망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화해가) 여의치 않다면 제삼국에서의 강제집행 등 또 다른 방법을 모색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소송을 대리한 최봉태 변호사도 “(2013년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부산고법의 판결 주문에 가집행을 할 수 있다고 돼있는데) 그간 가집행을 하지 않은 건 집단적으로 화해해야 할 사건인데 모양새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라면서 미쓰비시중공업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를 기대했다.
박진영 기자 jy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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