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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0 (토)

이슈 예비타당성조사 대상 사업 선정

親文 의원들이 우려했던 ‘예타 무력화’ 현실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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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야당이던 민주당, 예타 면제 개정안에 비판
정권 바뀌자 "지역균형발전" 명목 23개 사업 추진
시민단체·교수 "합리적 재정 투입원칙 훼손 우려"

"다음 페이지 보면 10호(국가재정법 38조 2항의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대상)입니다. 논란이 많이 되었는데, 지역 균형발전이라든지 긴급한 경제․사회적 상황 대응을 위해서 국가정책적으로 필요한 사업, 여기에 대해서 그동안 현행은 기재부장관이 정할 수 있도록 재량을 주었습니다."(류환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수석 전문위원)

"이것은 꽉 막아놔도 아무 상관이 없어요. 악용의 소지가 있는 법은 만들 필요가 없는 거지요. ‘지역 균형발전’ 이런 것은 준비를 안 해서 시급하다고 주장할 수 있어도 이것은 국가 백년지대계 차원에서 다뤄야 되는 것 아니에요? 도대체 지역 균형발전에서 시급한 게 뭐가 있나 모르겠어요."(최재성 의원)
"10호를 삭제하면 논란의 여지가 없잖아요. 10호 적용에 4년 간 유예를 두는 건 어떻습니까."(김현미 의원·현 국토부 장관)
"그러면 정부가 죽으려고 그러겠지."(이인영 의원)

조선비즈

지난 2013년 19대 국회 당시 김현미 의원(현 국토부 장관), 변재일 의원, 최재성 의원(왼쪽부터)이 예산 관련 회의에 참석한 모습이다. 당시 국가재정법 개정안에 예산타당성조사 면제 요건에 지역균형발전을 넣겠다는 정부와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의 방안에 이들은 악용 소지가 있다며 반대했었다. /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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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3년 12월 1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원회에서는 정부와 여당(새누리당)의 국가재정법 개정안 내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 대상 개정안에 대한 민주당 의원들의 지적이 잇따랐다. 당시 정부와 여당은 예타 면제 대상이 국가재정법 시행령으로 규정돼 행정부의 자의적인 집행이 우려된다는 지적에 면제 요건을 법률안 본문에 명문화하려고 했다.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여기서 "지역 균형 발전, 긴급한 경제·사회적 상황 대응"을 위해 예타 면제가 가능하도록 규정한 것을 집중적으로 문제 삼았다. ‘지방 균형발전’이란 근거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으로 해석될 수 있어서 예타 면제를 악용할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친문(親文) 핵심 중진인 최재성 의원을 비롯해서 현 국토교통부 장관인 김현미 의원, 제1기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을 역임했던 이인영 의원이 이러한 비판에 모두 가세했다. 당시 민주당 의원 중에서 "우리도 집권하면 이것 필요해"라며 해당 조항을 남겨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은 동교동계인 설훈 의원 한 명 뿐이었다.

그리고 5년 2개월 뒤인 29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총 24조1000억원 규모의 사업을 ‘2019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로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수십조원 규모의 대규모 도로·철도·공항 건설 사업이 ‘지역 균형 발전’을 이유로 예타를 면제받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홍 부총리는 예타가 무력화된 것 아니냐는 지적을 의식해 "금번의 예타 면제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가 심화되고 있는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국가재정법에서 정한 범위에서 제한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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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전문가들과 시민단체는 문재인 정부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필요한 경우 언제든지 예타를 피해갈 수 있는 길을 열었다고 평가한다. 고길곤 서울대 교수(행정대학원)는 "국가재정법상 예타 면제 요건을 명문화한 입법 취지는 정부의 자의적인 면제 조치를 최소화하자는 것"이라며 "합리적인 재정 투입이라는 원칙을 훼손하는 조치"라고 말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발표 직후 낸 성명에서 "문재인 정부가 과거 자신들이 토건 적폐로 비판했던 이명박 정부의 예타 면제 확대를 악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규모 국책 사업의 우선순위를 평가하는 예타의 기능이 형해화(形骸化)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국가 재정 배분 차원에서 예타는 각각의 사업들이 경제성, 정책 효과, 지역균형발전 등에서 어떤 영향을 주는 지 알려주고 사업 간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게 만드는 제도"라며 "재정 투입에 예타 통과가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손쉽게 우회할 수 있다고 볼 순 없다"고 말했다. 한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예산 배정은 여러 대안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과정"이라며 "정부가 여러 차례 재정 투입 대비 효과를 고려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주고 있는 상황이라 앞으로도 예타 면제나 그에 준하는 제도적 ‘꼼수’가 줄을 이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재부는 현재 예타 평가 가운데 25~35%를 차지하는 ‘지역균형발전’의 비중을 높이고 새로 ‘균형발전지수’를 도입하겠다는 계획이다. 홍 부총리는 "현재 예타는 경제성 평가의 비중이 커서 지방이나 낙후지역이 예타를 통과하기 어려운데, 이를 개선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용 대비 편익이 낮은 SOC 사업을 추진하기 쉽게 절차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현재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4대강 사업으로 설치된 토목 건축물들을 어떻게 처리할 지 조사하는 ‘4대강 조사 평가 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홍종호 서울대 교수(환경대학원)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경제성 평가는 해당 사업이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 가능성이 있는지 확인하고, 소요되는 비용이 편익보다 현저히 많을 것으로 나오면 어떤 방식으로 사업을 변경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찾아보는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어떤 이유로든 사업의 시급성을 구실로 사업을 강행하는 것보다 (경제성 분석 등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바람직하다"며 "그것이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사업이 주는 가장 큰 역사적 교훈"이라고 지적했다.

세종=조귀동 기자(ca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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